[천자칼럼] 난민 출신 마라토너의 위대한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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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구를 하고 싶었지만 돈이 들었고 수영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육상은 무료였다.”
이번 파리올림픽 여자 마라톤에서 우승한 시판 하산(네덜란드)의 말이다. 1993년 에티오피아에서 태어나 2008년 난민 신분으로 네덜란드에 정착한 그에게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그는 “네덜란드 역시 돈 없는 난민에게 모든 문이 닫혀 있는 듯했다”고 회상했다. 그를 향해 유일하게 열려 있는 문은 육상이었다. 돈 없이 시작할 수 있다는 말에 그해 바로 육상에 입문했다. 엘리트 선수로는 늦은 15세의 나이였지만 유망주로 성장했고, 5년 뒤인 2013년 네덜란드 국적을 취득했다.세계 육상선수권 대회에서 상위권이던 그가 본격적으로 주목받은 것은 2021년 열린 2020 도쿄올림픽이었다. 1500m에서 동메달을 딴 데 이어 5000m, 1만m에선 1위에 올랐다. 올림픽 중거리(1500m)와 장거리 종목에서 동시에 메달을 딴 건 초유의 일이었다. 스피드와 지구력을 겸비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신인류’라는 별명이 붙었다.
하산은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올림픽 최초로 5000m와 1만m, 마라톤을 동시에 나가기로 결심했다. 그는 이번 올림픽에서 5000m와 1만m에서 동메달을 목에 건 뒤 올림픽 마지막 종목으로 열린 마라톤에서 올림픽 신기록으로 우승했다. 1만m 결승이 열린 지 35시간 만에 출전한 경기였고 생애 세 번째 마라톤 풀코스(42.195㎞) 완주였다.
잘 달리는 난민 마라토너는 하산뿐만이 아니다. 도쿄올림픽 남자 마라톤에서 각각 2위, 3위에 오른 네덜란드의 아비드 나게예와 벨기에의 바시르 아브디는 소말리아 난민 출신이다. 당시 나게예가 다리에 쥐가 나 뒤처진 아브디에게 오른팔을 흔들며 계속 뛰라고 격려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부터는 다른 나라 국적을 얻지 못한 난민도 올림픽에 출전할 길이 열렸다. 파리올림픽엔 난민 올림픽팀(ROT·Refugee Olympic Team)이라는 이름으로 역대 가장 많은 37명의 난민 선수가 나왔다. ‘나라’는 없어도 ‘나’는 열심히 뛰겠다는 마음이 그들에겐 위대한 올림픽 정신이었다.
정인설 논설위원 surisuri@hankyung.com
이번 파리올림픽 여자 마라톤에서 우승한 시판 하산(네덜란드)의 말이다. 1993년 에티오피아에서 태어나 2008년 난민 신분으로 네덜란드에 정착한 그에게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그는 “네덜란드 역시 돈 없는 난민에게 모든 문이 닫혀 있는 듯했다”고 회상했다. 그를 향해 유일하게 열려 있는 문은 육상이었다. 돈 없이 시작할 수 있다는 말에 그해 바로 육상에 입문했다. 엘리트 선수로는 늦은 15세의 나이였지만 유망주로 성장했고, 5년 뒤인 2013년 네덜란드 국적을 취득했다.세계 육상선수권 대회에서 상위권이던 그가 본격적으로 주목받은 것은 2021년 열린 2020 도쿄올림픽이었다. 1500m에서 동메달을 딴 데 이어 5000m, 1만m에선 1위에 올랐다. 올림픽 중거리(1500m)와 장거리 종목에서 동시에 메달을 딴 건 초유의 일이었다. 스피드와 지구력을 겸비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신인류’라는 별명이 붙었다.
하산은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올림픽 최초로 5000m와 1만m, 마라톤을 동시에 나가기로 결심했다. 그는 이번 올림픽에서 5000m와 1만m에서 동메달을 목에 건 뒤 올림픽 마지막 종목으로 열린 마라톤에서 올림픽 신기록으로 우승했다. 1만m 결승이 열린 지 35시간 만에 출전한 경기였고 생애 세 번째 마라톤 풀코스(42.195㎞) 완주였다.
잘 달리는 난민 마라토너는 하산뿐만이 아니다. 도쿄올림픽 남자 마라톤에서 각각 2위, 3위에 오른 네덜란드의 아비드 나게예와 벨기에의 바시르 아브디는 소말리아 난민 출신이다. 당시 나게예가 다리에 쥐가 나 뒤처진 아브디에게 오른팔을 흔들며 계속 뛰라고 격려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부터는 다른 나라 국적을 얻지 못한 난민도 올림픽에 출전할 길이 열렸다. 파리올림픽엔 난민 올림픽팀(ROT·Refugee Olympic Team)이라는 이름으로 역대 가장 많은 37명의 난민 선수가 나왔다. ‘나라’는 없어도 ‘나’는 열심히 뛰겠다는 마음이 그들에겐 위대한 올림픽 정신이었다.
정인설 논설위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