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공무원 한 명이 1300건 처리…소액은 확인 못하고 그대로 환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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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稅환급 '신청 폭탄'“(세금 환급 신고) 패싱한 직원 감사해야 한다.” “그냥 둬라. 200만원 받고 일하는데 뭘 그렇게 많이 요구함?” “몇천 개 신고서를 물리적으로 다 검토하는 건 불가능하다.”
소득세 담당 공무원 3000명인데
삼쩜삼 등 환급 대행 플랫폼 통한
5월 한달간 신고 건수 400만건
'오류보다 감사받는게 더 무섭다'
신청액 100만원 미만의 금액은
중복공제 여부 등 검토 없이 처리
국세청 "플랫폼이 정보 오류 방치
과다 환급 확인땐 가산세도 추징"
최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서비스 블라인드의 국세청 게시판에서 세금 환급 신고 업무를 두고 세무공무원들이 나눈 대화 내용이다.
잇단 ‘묻지마 세금 환급’
12일 일선 세무서에 따르면 올 들어 담당 세무공무원이 납세자의 세금 환급 신고 내용을 확인하지 않고 요청한 금액을 되돌려준 사례가 부쩍 늘었다. 서울 한 세무서의 A조사관은 “관련 업무를 주말을 포함해 종일 해도 마무리할 수 없어 세금 환급 신고서를 일괄 결의로 처리했다”고 했다. 일괄 결의는 수십 건의 환급 신고 등을 한번에 처리하는 것을 뜻한다.블라인드 국세청 게시판에도 최근 ‘기한 후 신고(환급 신고 종류 중 하나) 전산 자료 생성되자마자 바로 환급했다’ ‘기한 후 신고 50건씩 올리는데 피곤하다’ 등 세금 환급 신고 내용이 맞는지 검토하지 않고 바로 환급 처리했다는 게시글이 계속 올라오고 있다.일부 세무공무원의 일탈에도 핑계는 있다. 최근 삼쩜삼, 토스 세이브잇 등 세금 환급 대행 서비스가 지난 5월 종합소득세 정기 신고 기간에 국세청에 한 세금 환급 신고는 400만 건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가 5월 초 세무 서비스업체 등 대규모 트래픽이 발생하는 곳의 국세청 홈택스 접속을 차단해 논란이 될 정도로 관련 신고가 급증했다.
이 때문에 요즘 일선 세무서는 ‘불난 호떡집’이다. 조사관 1인당 평균 1300여 건, 인구가 많은 지역 세무서는 3000건 이상의 소득세 환급 신청서를 들여다보고 있다. B조사관은 “납세자 인적공제, 다른 가족 이중 공제 여부 등을 확인하는 데 적어도 한 시간은 걸린다”며 “법정 기한 내 처리하려면 부득이 신청 내용 그대로 결재를 올릴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국세기본법에 따르면 관할 세무서는 세금 환급 신고 중 기한 후 신고는 3개월, 경정청구는 2개월 내 처리해야 한다. 환급 신고 1300건(건당 한 시간 기준)을 하루 여덟 시간 업무로 처리하면 주말에 일해도 5개월 이상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세금 환급 대란 불가피
앞서 국세청이 행정업무 환경을 바꾼 것도 ‘묻지마 환급’의 배경이 됐다는 분석이다. 국세청은 2021년 기한 후 신고에 대해 환급 신청액 100만원 미만은 일괄 결의를 허용했다. 신고 내용을 개별 검토 후 최대 50건씩 편하게 처리할 수 있는 기능이다. 하지만 일부는 신고 내용을 그대로 결재 처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는 경정청구 환급 신청액 30만원 미만에 대해 같은 기능을 적용했다.세무 전문가들은 조사관의 편의적인 업무 처리로 최소 수백억원의 세금이 잘못 환급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서울지역 세무서 C조사관은 “환급 대행 서비스가 납세자의 세금 공제 정보 기재 오류를 방치해 부당 신청 규모가 작지 않다”고 지적했다.
국세청도 줄줄 새는 세금을 줄이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국세청 관계자는 “세금 신고가 적절한지를 다양한 방법으로 검증하고 있다”며 “과다 환급 사실이 확인되면 세법 절차에 따라 사후 환수한다”고 설명했다.국세청이 부당하게 환급한 세금을 사후에 환수하는 것도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 플랫폼을 이용한 잘못밖에 없는 소비자는 뜻하지 않게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이들은 부당 환급액을 토해내야 하고, 탈세 혐의로 가산세까지 추징당한다. 플랫폼이 가산세를 대신 내주진 않는다는 얘기다.
세무 플랫폼 업계에도 파장이 예상된다. 미리 뗀 수수료를 되돌려주는 과정에서 이용자와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높다. 영세 플랫폼은 수수료 환불이 일시에 몰리면 자금난에 빠질 수 있다. 세금 환급 대행 수수료는 환급액의 10~30%이며, 환급 후가 아니라 신청 단계에서 수수료를 떼 간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