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드폰을 타고 귓가로 흐른다… '록'의 뜨거운 열기가!

[arte] 이봉호의 원픽! 라이브 앨범

'록'하면 빠질 수 없는 천재 뮤지션
지미 헨드릭스의 음반 'Band of Gypsys'

히피들의 놀이터
'우드스탁 페스티벌(Woodstock Festival)'의
라이브 앨범 'Woodstock'
아침에는 지미 헨드릭스를 생각하는 것이 좋다.

라이브 앨범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 먼저 공연장의 열기를 날 것 그대로 레코드에 담아냈다는 사실이다. 다음으로 장시간의 즉흥 연주를 감상할 수 있다는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스튜디오와 라이브 음반을 비교 청취하는 즐거움이다. 때문에 음반 수집가는 라이브 앨범으로 뮤지션의 음악적 역량을 다시 접할 수 있다. 결과는 만족스러울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그레이트풀 데드의 리더 제르 가르시아는 스튜디오 음반은 돈벌이를 위한 차선책이라고 평가절하한다. 진정한 음악은 공연장에서 펼쳐진다는 발언이었다. 반대로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는 전성기였던 32세부터 모든 콘서트를 취소하고 스튜디오 앨범 작업에 집중했다. 자신이 무대에 서면 보드빌 배우처럼 초라해 보인다는 것이 이유였다. 음반과 음원을 함께 취하는 필자는 매체에 상관없이 앨범 단위로 음악을 감상한다.

라이브 앨범은 대부분의 뮤지션이 통과해야 할 관문이다. 무대에서 벌어지는 해프닝과 실수도 음악으로 승화시켜야만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다. 어설픈 공연으로 스튜디오용 음악가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인물도 있다. 헬스 엔젤스라는 보디가드의 과잉 진압으로 관람객이 사망한 롤링 스톤즈 공연이 떠오른다. 살인 위협을 무릅쓰고 공연장으로 향한 레게의 전설 밥 말리 또한 생각난다.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2001년 개봉작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임순례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우선적으로 언급해야 하는 영화다. 비록 흥행작은 아니었지만, 작품에 출연한 황정민, 류승범, 박원상, 박해일, 오광록 등은 연기파 배우의 입지를 다져나간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주인공 성우(한얼 역) 기타 선생의 독백이다. 그는 영화에서 지미 헨드릭스의 연주곡을 들으며 음악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낸다.
지미 헨드릭스 /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지미 헨드릭스는 록을 언급할 때 특별한 위치에 있는 인물이다. 기타 연주에서 흘러나오는 잡음까지 연주의 일부로 흡수해버리는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우드스탁 페스티벌에서 연주한 ‘Star Spangled Banner’는 베트남전의 참극을 기타 하울링으로 표현하는 경지를 보여준다. 왜 그가 가장 높은 페스티벌 출연료를 받았는지를 확인해주는 부분이다.

'Band Of Gypsys'는 지미 헨드릭스, 버디 마일스, 빌리 콕스 3인방 체제로 발표한 앨범이다. 이 음반에서는 펑크과 리듬 앤 블루스 사운드를 도입하여 과거보다 연성화된 연주를 들려준다. 버디 마일스의 드럼 연주와 백킹 보컬이 빛을 발하는 ‘Who Knows’와 반전곡 ‘Machine Gun’은 지미 헨드릭스 음악사의 필청 트랙으로 남아 있다.

[지미 헨드릭스의 앨범 'Band of Gypsys'에 수록된 'Who Knows' 듣기]
[지미 헨드릭스의 앨범 'Band of Gypsys'에 수록된 'Machine Gun' 듣기]



그들은 왜 미국 베델 평원으로 몰려들었을까?

1990년대 신촌은 대중음악의 메카였다. 목마레코드, 향레코드를 포함한 여러 레코드점과 레드 제플린, 롤링 스톤즈 등의 뮤직 바가 포진하던 대중음악의 성지였다. 필자는 생맥주를 팔면서 클래식 음악을 틀어주는 지하 호프집에 자주 방문했다. 1992년에 신촌을 대표하는 공간이 불쑥 등장한다. 이름하여 신촌 우드스탁이었다. 대중문화라는 용어가 점화하던 시기에 맞물려 등장한 엘피 바였다.신촌 엘피 바의 상징인 우드스탁은 지금도 변함없이 영업 중이다. 이후 홍대, 강남, 신림 등지에서 같은 명칭의 엘피 바가 등장한다. 2020년 출간 도서인 <신촌 우드스탁과 홍대 곱창전골>은 서울 엘피 바의 문화를 설명해주는 흥미로운 책이다. 신촌 우드스탁은 자리에 앉는 순간 주변 손님과 자연스럽게 술친구가 된다. 자신의 신청곡이 나오면 주변인과 함께 떼창을 부르기도 한다.
1969년, 우드스탁 페스티벌
록 역사를 통틀어 가장 놀라운 사건인 우드스탁 페스티벌은 뉴욕주의 베델 평원에서 3일간 펼쳐진 문화예술행사였다. 처음에는 입장권을 받는 원칙을 고수했지만 예상외로 몰려드는 인파로 운영 자체가 어려워지는 상황에 직면한다. 게다가 부족한 배수 시설과 악천후로 관객들은 불편함을 감수해야만 했다. 그럼에도 관객 간의 협조와 이해로 뜨거운 공연 분위기를 창출한다.

공연명은 우드스탁이지만 장소는 맥스 야스거가 운영하던 농장 부지였다. 이는 페스티벌을 반대하는 여론에 밀려 선택한 대안이었다. 자유, 사랑, 평화라는 기치로 준비한 페스티벌은 미국을 포함한 세계 젊은이들의 지대한 관심을 받는다. 행사를 기획한 마이클 랭은 이후에도 우드스톡 1994와 우드스톡 1999를 준비하며 전문 공연기획자라는 명성을 얻는다.
1969년 8월, 당시 우드스탁 페스티벌 현장에 관한 기사 /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3장의 엘피로 제작한 'Woodstock'에는 지미 헨드릭스를 비롯한 기라성 같은 뮤지션이 등장한다. 가장 적은 개런티로 참여한 카를로스 산타나는 연주곡 ‘Soul Sacrifie’로 우드스탁 페스티벌 최고의 록스타로 떠오른다. 이후 2장의 엘피로 출시한 'Woodstock Two'에서는 미공개 음원을 만날 수 있다. 2009년에는 이안 감독이 연출한 '테이킹 우드스탁'이라는 영화가 개봉한다.

우드스탁 페스티벌이 한국에서 열린다는 뉴스가 등장한 적이 있다. 2010년 8월 파주시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에서 국내외 록스타가 참여한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관계자였던 아티 콘벨트는 트위터로 ‘2010 우드스탁 코리아’가 열릴 예정이라는 희소식을 전한다. 위 행사는 페스티벌을 불과 일주일 앞두고 취소를 통보한다. 한국판 우드스탁 페스티벌이라는 기대감이 산화해버린 사건이었다.[1969년 우드스탁 페스티벌, 카를로스 산타나가 연주하는 'Soul Sacrifice' 라이브 영상]


이봉호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