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필이 세계 지휘 거장들을 줄세우는 이맘때 이곳 [여기는 잘츠부르크]

[이진섭의 음(音)미하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1)

클래식 애호가들의 버킷리스트,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호프만스탈 탄생 150주년과
브루크너 탄생 200주년을 동시에 기념해

모차르트의 고향답게
오페라 ‘돈 조반니’, ‘티토 황제의 자비’ 공연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분위기가 한참 무르익은 8월 10일. 성수기에 비싼 비행기와 비용을 감수하고, 그동안 모아둔 연차를 한 번에 끌어 써서 잘츠부르크로 향했다. 솔직히 말하면, 이 페스티벌을 위해 올해 3월부터 (재정적, 정신적, 시간적) 준비를 했다. ‘살면서 꼭 한번 잘츠부르크’라고 할 만큼 이 축제는 클래식 애호가들의 버킷리스트다.

매년 7월 중순부터 8월 말까지 5~6주 동안 펼쳐지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Salzburger Festspiele)’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케스트라와 지휘자, 연주자, 성악가, 연기자들이 모여 연극, 오페라, 관현악, 실내악 공연을 펼치는 ‘종합 예술 축제’다. (세계 최대의 클래식 음악 축제로 잘 알려졌지만, 이 페스티벌은 음악, 연극, 오페라가 3개의 중심축이다.)잘츠부르크에 도착한 8월 10일. 크지 않은 도시 전체가 들떠있는 게 느껴졌다. 막스 라인하르트 광장 주변은 도이치 그라모폰 Stage+ 제작팀이 안드리스 넬손스(Andris Nelsons)와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협연하는 <말러 교향곡 9번(Symphony No. 9 in D major)>을 실황으로 중계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관객들은 한여름 뜨거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로로피아나 원단의 블랙타이와 화이트타이 복장으로 104주년을 맞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게 예의를 갖추는 듯 했고, 샴페인을 마시면서 축제 분위기를 즐겼다.
[차례대로]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대축제극장 앞의 낮과 밤 / 사진. ©이진섭
올해는 후고 폰 호프만스탈(Hugo von Hofmannsthal) 탄생 150주년을 기려 그의 연극 <예더만(Jedermann)>의 공연 횟수도 예년에 비해 늘어났다. 1920년 극작가 후고 폰 호프만스탈, 연출·기획자 막스 라인하르트,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무대 디자이너 알프레드 롤러 그리고 지휘자 프란츠 샬크 등이 중심이 되어 음악제 협회를 조직하고, 잘츠부르크 대성당 앞 돔 광장에서 <예더만>을 공연한 것이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시초다. <예더만>은 모든 사람, 평범한 사람을 일컫는 단어이며, 돈을 숭상하는 주인공이 갑작스럽게 닥쳐온 죽음 앞에서 어떤 결정과 여정을 펼쳐가는 내용이다. 매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시작을 연극 <예더만>으로 시작하는 것은 페스티벌이 비싼 공연과 사치스러운 고급의 문화를 향유하는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호프만스탈 연극을 통해 우리 모두는 ‘평범한 사람’임을 잊지 말자는 기본 정신을 담았다.
[차례대로] 대축제극장 앞에 붙은 연극 &lt;예더만&gt; 포스터와 잘츠부르크 대성당 앞 무대 / 사진. ©이진섭
모차르트와 카라얀의 고향이 보여주는 음악적 권위와 명성
안드리스 넬손스, 리카드로 무티 등 세계적인 지휘자들을 줄 세우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위력 페스티벌은 잘츠부르크 중앙역을 기준으로 잘차흐강 남동쪽에 위치한 대축제극장, 모차르트 회관(Haus für Mozart : 구 소축제극장), 대성당, 성당 광장, 대학 강당, 성 페테 성당 그리고, 대주교 궁전이었던 레지던츠 등에서 펼쳐진다. 공식적인 프로그램 말고 구도시 곳곳에서 열리는 공연들도 축제의 흥을 돋운다.

이 중에서도 메인 이벤트라고 할 수 있는 오페라 공연과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콘서트가 대축제극장에서 열린다. 묀히스베르크 산의 암벽을 뚫어 건축한 이 극장은 카라얀 주도하에 건축가 클레멘스 홀츠마이스터(Clemens Holzmeister) 설계했는데, 거대한 역암질의 산이 공연장을 품고 있는 모양새가 마치 클래식 음악의 성전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약 100m 정도 가로로 길게 늘어진 무대와 2,179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이 극장은 세계 곳곳의 연주자와 지휘자들에게 꿈의 무대다.
오페라 공연이 열리는 대축제극장 내부 / 사진. ©이진섭
올해는 지휘자 안드리스 넬손스, 구스타보 두다멜, 야닉 네제 세겐, 그리고 리카드로 무티가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한다. 이 중에서도 안드리스 넬손스가 지휘하는 <말러 교향곡 9번>과 구스타보 두다멜(Gustavo Dudamel)이 소프라노 아스믹 그리고리안(Asmik Grigorian)과 공연하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의 <네 개의 마지막 노래(Vier letzte Lieder)>가 기대작으로 이곳을 찾은 관객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렸다.
&lt;말러 교향곡 9번&gt; 연주를 마친 안드리스 넬손스와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 사진. ©이진섭
특히, 올해는 안톤 브루크너(Anton Bruckner)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지휘자 리카르도 무티가 빈 필과 손잡고 <브루크너 교향곡 8번(Bruckner Symphony No.8 in C minor WAB 108)>을 공연하고, 게스트 오케스트라로 초청된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브루크너 교향곡 5번(Symphony No. 5 in B-flat major WAB 105)>을 공연한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해마다 한 명의 음악가를 정해 집중 조명하는 'Zeit Mit ...'이란 시간을 갖는데, 올해는 쇤베르크(Arnold Schönberg)가 선정되어 현악 6중주 <정화된 밤(Verklärte Nacht)>을 포함해 페스티벌 기간 내내 다양한 작품들이 공연된다.

모차르트의 고향답게 이 페스티벌의 하이라이트인 오페라다. 올해는 <돈 조반니>와 <티토 황제의 자비>가 무대에 오른다. 이외에도 바인베르크의 오페라 <백치 (Der Idiot: 도스도예프스키의 소설 원작)>와 프로코피예프의 오페라 <도박사(Der Spieler)>는 잘츠부르크 역사상 처음으로 공연된다.
[차례대로] 가장 파격적인 무대라고 평가 받는 로메오 카스텔루치 연출의 오페라 &lt;돈 조반니&gt; 포스터와 커튼콜 / 사진. ©이진섭
매년 잘츠부르크를 찾을 수밖에 없는 예술적 핑곗거리

올해에도 롤렉스와 아우디가 메인 스폰서로 참여했고, 초호화판 의전에 명사들의 방문과 시니어 관객이 주를 이뤄 100년 이상 된 페스티벌의 명성과 자존심을 극명하게 보여준 느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스티벌의 고유성을 지키면서도 작품과 무대에 끊임없이 변주를 주는 점과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마치 세계 최정상급 지휘자들을 줄 세우듯, 다양한 레퍼토리를 통해 자신들의 음악적 가치를 매년 풍부하게 만들어 나가는 점만으로도 매년 이맘때 잘츠부르크를 찾아야 하는 ‘예술적 핑곗거리’를 만들어 줄 것 같다.

글·사진 | 이진섭

전기차 서비스를 기획하고 만드는 일을 합니다. 네이버캐스트에 [팝의 역사]를 연재했고, 음악 에세이 <살면서 꼭 한번 아이슬란드>도 출판했습니다. 음악과 미술로 여행하고, 탐미하며 가치를 발견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