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소니의 스타 박재홍, 데카 신보 첫 곡만 200번 넘게 녹음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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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소니 우승자' 피아니스트 박재홍"라흐마니노프를 연주하다보면 잔인하리만큼 아름다운 순간이 많아요. 그 향에 취해버릴 때가 있죠. 그런 '함정'에 빠지지 않고 페이스를 지키며 연주하려고 해요."(피아니스트 박재홍)
데카 신보 '스크리아빈·라흐마니노프' 발매
"두 작곡가들의 덜 알려진 명곡들 수록"
이탈리아 부소니 콩쿠르에서 무려 5관왕(2021)을 차지하며 세계적인 클래식 스타 반열에 오른 피아니스트 박재홍(25). 클래식 레이블 데카(DECCA)에서 발매한 그의 독집 앨범 '스크리아빈·라흐마니노프'가 13일 공개됐다. 박재홍은 같은날 서울 여의도동 신영체임버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예전부터 라흐마니노프 소나타 1번을 꼭 연주해보고 싶었다"며 "준비가 안됐다고 생각해 미루다가 도저히 참지 못해서 연주를 하게됐고, 좋은 기회로 음반도 내게됐다"고 말했다. "어릴 때부터 라흐마니노프 소나타 1번의 아름다움에 매료됐어요. 이 곡은 서사가 두텁고 흐름이 길어요. 이 곡을 메인디쉬로 생각하고 같이 뭘 치면 좋을지 고민하다가 스크리아빈의 프렐류드를 생각하게 됐습니다. 스크리아빈의 프렐류드는 각각 개별적인데, 그 안에서 이어지는 흐름을 찾을 수 있어요. "
스크리아빈과 라흐마니노프는 각기 다른 음악 세계를 구축한 작곡가들이지만, 러시아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같은 스승에게 배운 동급생이기도 하다. 이번 음반에는 두 동급생 작곡가들의 작품중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소나타 1번, 스크리아빈 프렐류드 전곡을 수록했다. 이에 박재홍은 "낯익은 곡들은 아니지만 다른 유명한 곡에 견줄만큼 명곡들"이라며 "작곡가들이 남긴 작품들이 골고루 사랑받도록 연주하는 게 (연주자의) 의무라고 생각한다"며 큐레이팅에 대한 취지를 밝혔다.
"저는 이 작품으로 작곡가를 새로 보게 됐어요. 라흐마니노프는 아름다운 선율, '킬링 프레이즈'를 잘 쓰는 음악가로 생각했죠. 라흐마니노프 음악 특유의 확 올라오는 감정, 카타르시스를 즐겼어요. 근데 소나타 1번을 보면 선율 뿐 아니라 베토벤 소나타처럼 구조적이에요. 마치 말하는 것 같죠. 그의 다른 작품에도 몰랐을 뿐이지 그런 특징이 다 녹아있더라고요. 비슷한 시기에 썼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과도 유사점이 많고요."라흐마니노프 소나타 1번은 총 3악장으로 구성돼 있다. 괴테의 '파우스트'를 모티브로 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으며 각 악장이 파우스트, 그레첸, 메피스토펠레스 등 문학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표현하는 식. 하지만 라흐마니노프는 결국 파우스트와의 연관성을 없애고, 소나타로만 출판했다. 박재홍은 이런 이유에서 "표제에 갇히기보다는 절대음악을 대하듯이 하려고 했다"고.
"캐릭터를 구현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진 않으려해요. 오히려 절대음악처럼 해석하려고 합니다. 표제 음악의 위험성은 표제 외에 다른 걸 생각하기 어렵다는 점 같아요. 다양한 다른 가능성이 없어지는 건 큰 희생이 될 수 있잖아요. 라흐마니노프가 파우스트와 연계해 곡을 썼지만, 그냥 소나타로 출판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봐요."녹음은 지난 1월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작업했다. 특히, 첫 곡인 스크리아빈 프렐류드 1번의 경우 3시간 넘는 시간 동안 200번 넘게 테이크를 이어갔다고. 박재홍은 스크리아빈의 즉흥성과 개성을 살리기 위해 타협하지 않고 최고의 버전을 선택했다고 전했다."스크리아빈은 즉흥적인 요소가 많아요. 획일화해서 치는 건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어요. 그러다보니 추구하는게 몇 초마다 달라져서 계속 녹음했어요. 그중 최고의 테이크를 고르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죠. 사실 스크리아빈은 지금도 해석이 계속 바뀌는 것 같아요"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의 국내파 피아니스트 박재홍은 187㎝의 장신과 12도를 가뿐히 짚는 큰 손으로도 유명하다. 건장한 체격에서 오는 풍성한 소리와 탁월한 표현력으로 평단의 호평을 받아왔다. 그는 올 가을부터 베를린으로 건너가 바렌보임 사이드 아카데미에서 '피아니스트의 피아니스트'로 불리는 안드라스 쉬프 경(70)의 가르침을 받는다.
박재홍은 이번 음반 발매를 비롯해 영국 위그모어홀, 독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도쿄 산토리홀 등에서 활발한 연주를 하며 글로벌 연주자로 도약하고 있다. 박재홍은 "음악을 사랑하는 초심을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무대에 있는 시간이 점점 행복하고, 좋은 부담이 늘고 있어서 긍정적인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행복하게 오랫동안 연주하고 싶기에 이 마음을 잃지 않으려해요"그는 음반 수록곡들과 스크리아빈의 '판타지'를 더한 프로그램으로 통영국제음악당(8월 25일), 서울 예술의전당(9월 1일), 울주문화회관(9월 6일), 대구 수성아트피아(9월 21일), 경남문화예술회관(9월 26일)에서 연주 투어를 이어간다.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