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AI시대, 과감한 대학 투자 없인 '미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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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혁 고려대 연구부총장·컴퓨터학과 교수한국은 교육의 힘으로 성장한 나라다. 식민지에서 해방되자마자 전쟁을 겪었다. 그 폐허의 나라를 지금 세계는 선진국이라고 부른다. 경제 규모는 세계 10위권이다. 한류는 지구촌 곳곳에서 일렁인다. 영토가 크지도 않고 자원이 풍부하지도 않지만, 세계 어디서도 통할 수 있는 지식과 기술을 갖춘 인재를 양성했다. 대학 교육을 통해 탁월한 엘리트 집단을 길러냈다. 그들이 선진화와 국제화, 번영을 이끌었다.
이제 우리는 지금의 번영이 다음 세대로 이어질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한다. 미국이 세계 최강의 지위를 오랫동안 유지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미국에 세계적인 대학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 대학들은 탄탄한 재정적 기반을 바탕으로 교육과 연구에 투자한다. 거기서 최고의 교육을 받고 최고의 연구를 한 인재들이 기업에 들어가고 창업을 하며 미국 사회를 강하고 역동적으로 만들어준다. 세계 인재들이 강하고 안정된 재정을 바탕으로 연구자를 키워주는 미국 대학으로 모여드는 것은 당연하다.우리 대학 상황은 어떠한가. 대학 등록금은 16년째 동결됐다. 올해 연구개발(R&D) 예산은 작년 대비 대폭 삭감됐고, 내년 예산은 작년 수준으로 돌아간 정도다. 여기에 의과대학 증원으로 이공계 인재들이 대거 빠져나가는 추세다. ‘인구 절벽’은 이미 현실이다. 이렇다 보니 올해 QS세계대학평가에서 100위권에 든 국내 대학은 다섯 곳에 불과하다.
급속히 변화하는 인공지능(AI) 시대에, 다음 세대에 국가적인 번영을 넘겨주기 위해서는 세계를 선도하는 기술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것이 절실하다. 한국은 박사 인력의 40%가 대학에 근무하고 있다. 대학이 세계적인 기술을 연구하고 개발하도록 하는 것이 긴요하다. 그런데 우리 대학의 경쟁력은 국가 경쟁력에 비해 현저히 낮다. 미국 대학과 달리 충분한 자체 재원을 확보하고 있지 못해서다.
우리 대학이 세계적인 기술을 연구하고 개발할 수 있도록 국가 차원의 과감한 투자가 있어야 한다. 민간기업이 대학에 대규모 투자를 하는 것은 쉽지 않을 뿐 아니라 기업의 역할도 아니다. 정부가 정책적으로 우리나라 대학들이 세계적인 반열에 오를 수 있도록 투자할 수밖에 없다. 일본에서는 ‘국제탁월대학’이라는 이름 아래 정부가 대학에 직접적인 대규모 투자에 나서고 있다.
투자에는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다. 모든 분야와 모든 대학이 세계 최고의 연구력을 갖출 수는 없다. 몇 개 분야를 정해 몇 개 대학에 집중해서 투자해야 그 분야 최고의 기술과 연구가 나올 수 있다. 강한 연구력을 갖출 수 있는 대학을 선별해 세계적인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육성해야 한다. 때를 놓쳐서도 안 된다. 지금 하지 않으면 대학이 경쟁력을 잃어버리고, 다음 세대에 우리가 누리고 있는 번영을 넘겨주지 못한다. 대학에 투자하는 것이 대한민국이 지속해서 번영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