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유전자의 70% 가진 '제브라피쉬'…암·대사질환·희귀질환 연구에 큰 도움

생명硏 리포트
조현주 마이크로바이옴융합연구센터 박사

번식 쉬워 많은 개체수 확보
대규모 약물 스크리닝에 유용

신경전달물질 등도 잘 보존
치매 등 뇌질환 연구도 주목
조현주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박사가 실험실에서 제브라피쉬를 관찰하고 있다. /생명연 제공
제브라피쉬 또는 제브라 다니오는 잉어과에 속하는 아열대성 물고기이다. 이 물고기엔 인간 유전자의 70% 이상이 보존돼 있고 인간과 유사한 뇌와 장 등의 주요 조직을 잘 갖추고 있으며, 대사 활동, 신경 및 면역 시스템 등의 주요 생리 작용 등도 잘 보존돼 있음이 증명되고 있다.

제브라피쉬는 1970년대 조지 스트레이싱어와 동료들의 선견지명과 열정 덕분에 오늘날 모델 생물로서의 자리를 확립하게 됐다. 간단한 발달 과정 연구뿐만 아니라 복잡한 인간 질병 모델링에도 사용되고 있으며, 이와 관련해 전 세계에서 매년 수천 편 이상의 연구 논문들이 출간되고 있다. 제브라피쉬는 실험실과 같은 작은 공간에서 적절한 먹이와 온도만 유지하면 쉽게 키울 수 있으며 비용도 적게 든다. 암컷은 평균적으로 한 번에 100 마리 이상의 알을 낳아 번식이 쉽고 많은 개체수를 확보할 수 있다.이러한 특성 덕분에 제브라피쉬는 대규모 약물 스크리닝 실험에 매우 유용하다. 약물 스크리닝은 약물 후보를 선별하기 위해 수천 개에서 수만 개의 약물을 테스트하기도 하며 이때 많은 개체수를 필요로 한다. 환경 오염 물질의 위험성과 새로 개발된 약물의 효능 및 독성을 평가하기 위한 연구에서도 제브라피쉬는 매우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다.

제브라피쉬는 체외수정을 하고, 초기 발달이 빠르게 진행돼 수정후 2~3일이면 발달이 거의 완성된다. 배아가 투명하기 때문에 발생과정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고, 유전자 변형이나 약물 처리 등의 다양한 조건에서 표현형 관찰이 용이하다. 유전자 편집 기술과 분자생물학 실험, 그리고 이미지 분석 장비 등의 발전으로 별다른 처리 과정 없이 살아 있는 상태에서 세포와 조직의 상태를 관찰 할 수 있다. 여러 색의 형광 분자를 도입해 형형색색의 다양한 세포들이 형성하는 네트워크의 관찰도 가능하다. 이렇게 축적된 실험 방법을 바탕으로 암, 대사질환, 희귀질환 등 다양한 인간 질환들을 제브라피쉬를 통해 연구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제브라피쉬를 활용한 뇌 연구가 주목받고 있다.

제브라피쉬의 뇌는 인간의 중요한 신경세포, 신경전달물질, 신호전달 기능을 잘 보존하고 있어 복잡한 인간의 뇌를 연구하는 데 적합한 모델 생물이다. 또한 뇌의 기능과 신경 시스템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행동 분석이 필수적인데, 인간의 불안, 우울, 과잉행동, 사회성 결여 그리고 공격적 행동 등 약 190여가지의 행동 패턴도 제브라피쉬를 통해 분석할 수 있다. 이러한 특성 덕분에 제브라피쉬는 치매, 파킨슨병, 자폐증과 같은 인간의 뇌 신경 질환 연구에 중요한 도구로 활용된다.최근에는 인간의 뇌 질환과 장내 미생물 간의 상관관계, 즉 마이크로바이옴-장-뇌 축 연결을 밝히기 위한 연구에서도 제브라피쉬가 훌륭한 모델 생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특정 종에 의존하는 연구 결과는 종종 과장되거나 단순화될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특히 뇌신경 활동과 행동 패턴 연구처럼 종별 특성이 민감하게 작용하는 분야에서는 더욱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제브라피쉬는 다양한 생물 모델과의 상호보완적 연구를 통해 인간에게 적용 가능성이 높은 실험 결과를 도출하고, 중요한 생물학적 질문들을 탐구하는 데 유용한 모델 생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