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자민당 총재 선거 불출마"…총리 연임 포기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내달 하순께 치러지는 집권 자민당 총재 선거에 불출마한다는 의향을 보였다고 교도통신이 14일 보도했다. ‘포스트 기시다’ 자리를 놓고 자민당 내 유력 주자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질 전망이다. 내각제인 일본에서는 다수당 대표가 총리가 된다.

기시다 총리는 지난해 연말 자민당 ‘비자금 스캔들’이 불거진 이후 내각 지지율이 ‘퇴진 위기’ 수준인 10∼20%대에 머물자 당 안팎에서 퇴진 압박을 받아왔다. 기시다 총리는 그동안 총재 선거 출마 여부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았으나, 저조한 내각 지지율에 결국 불출마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기시다 내각 지지율은 ‘마이 넘버 카드’ 파동으로 지난해 6월부터 하락세로 돌아섰다. ‘아날로그 문화’에 머물러 있던 일본이 디지털 사회로 전환하겠다며 주민등록에 공인인증, 향후 건강보험까지 합칠 수 있도록 만든 신분증인데, 오류가 속출하면서 원성을 샀다.

자민당의 ‘비자금 스캔들’도 기름을 부었다. 자민당은 스캔들과 관련, 자체 조사한 결과 2018~2022년 전·현직 의원 85명이 정치자금 수지 보고서를 부실 기재했으며 관련 금액이 5억7949만엔(약 52억원)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비자금 스캔들’ 이후 치러진 지난 4월 중의원 보궐선거 3개 선거구에서 자민당은 모두 패배했다. 당시 일본 총리로는 9년 만에 미국을 국빈 방문해 미·일 동맹이 공고하다는 점을 재확인하는 ‘성과’를 거뒀음에도 비자금 문제에 발목이 잡혔다.현지에선 기시다 내각 지지율 추락의 근본 원인을 ‘경제 정책’에 희망이 사라진 지지층의 이탈로 보고 있다. 특히 기시다 총리가 힘을 쏟고 있는 저출산, 고물가 관련 대책에 크게 실망했다는 것이 현지 평가다.

일본 정부는 연초 저출산 대책 예산 마련을 위해 모든 국민에게 매달 500엔(약 4500원)씩 걷겠다고 밝혔다가 ‘증세 아니냐’는 반발에 부딪혔다. 기시다 총리는 앞서 방위비 증액의 재원으로 증세를 내세우면서 ‘안경 쓴 총리가 세금을 더 걷으려 한다’는 의미의 ‘증세 안경’이란 별명까지 얻은 터다.

물가는 뛰는데 임금은 못 따라가는 것도 국민들의 마음을 돌아서게 했다. 지난해 일본 물가는 41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올랐지만, 물가를 반영한 실질임금은 2.6% 감소했다. 이 같은 흐름은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자민당은 9월 총재 선거를 통해 ‘간판’을 바꾸고 내년 중의원 총선거를 준비할 것으로 보인다. ‘포스트 기시다’로는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 다카이치 사나에 경제안보담당상, 가미카와 요코 외무상 등이 거론된다.

현지 여론조사에서 차기 총리에 적합한 인물로는 이시바 전 간사장이 가장 많이 꼽힌다. 자민당에 있으면서도 내각에 거침없이 쓴소리하며 대중적 인기를 얻은 인물이다. 자민당 내 극우파의 지지를 받는 다카이치 경제안보담당상도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최근 국제무대에서 주목받고 있는 가미카와 외무상도 눈에 띈다.

도쿄=김일규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