넬손스 X 빈 필의 말러 9번, 발레리나 발걸음에 말발굽 소리까지 들렸다 [여기는 잘츠부르크]

[이진섭의 음(音)미하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2)

안드리스 넬손스와 빈 필이 선사하는 '말러 교향곡 9번'

발레리나의 발걸음과 전차부대의 말발굽 소리가 공존하는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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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하는 지휘자, 안드리스 넬손스유쾌하면서도 푸근한 인상의 라트비아 출신 지휘자 안드리스 넬손스(Andris Nelsons). 현재 그는 보스턴 심포니(Boston Symphony Orchestra)와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Leipzig Gewandhaus Orchestra)의 음악감독을 동시에 맡고 있으면서, 세계적인 클래식 음악 페스티벌에서 서로 초청하고 싶어 하는 가장 인기 있는 지휘자다. 2023년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와 내한해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함께 협연했고, 최근 태권도 검은띠 2단 유단자로 수련의 시간을 쌓으면서 한국 클래식 음악 팬들과도 문화적 연결고리를 이어가고 있다.
지휘자 안드리스 넬손스 ⓒMarco Borggreve / 출처. 안드리스 넬손스 공식홈페이지
안드리스 넬손스의 지휘는 간결 명료하면서도, 음악적 맥락을 정확히 짚어내는 게 특징이다. 넬손스 자신이 꾸준히 다져진 음악적 익숙함과 악보에 기반한 충실한 해석, 그리고 함께 연주하는 단원들과 호흡을 가장 중요시 여긴다. 때문에 그의 지휘를 보고 있으면,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내내 넬손스 자신도 지휘봉으로 함께 연주하는 인상을 받는다.

이번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행사의 터줏대감인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말러 교향곡 9번(Mahler Symphony No. 9 in D major)>을 협연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 에너지를 고스란히 느껴보고 싶어 8월 11일 아침 일찍 대축제극장으로 향했다. 관객들은 저녁 공연에 비해 가벼운 옷차림이었지만, 비즈니스·캐주얼 정장 정도의 차림새는 갖추고 있었다. 간간이 한국 관람객도 눈에 띄었다. 대축제극장은 한자리도 빈 곳 없었고, 실황 중계를 위해 Stage+ 촬영팀도 공연장 곳곳에 자리 잡고 있어 꽉 찬 느낌이었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대축제극장 내부 / 사진. ©이진섭
말러의 마지막 교향곡

<말러 교향곡 9번>은 말러 생전에 공연되지 못했고, 1912년 6월 26일 빈에서 말러의 제자이자, 격렬한 추종자였던 지휘자 브루노 발터(Bruno Walter)가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초연한 곡이다. 이 곡을 작곡할 1909~1910년 즈음 말러는 심각한 심장병으로 고통받고 있었고, 아내인 알마와의 결혼 생활에 위기를 겪고 있었으며, (프로이트에게) 심리 상담을 받을 정도로 불안한 상태였다.

<말러 교향곡 9번>은 1911년 5월 18일 말러가 하늘나라로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완성한 교향곡이면서, 말러 말년의 이야기들이 더해지면서 ‘죽음의 교향곡’으로 전해졌다. 이 교향곡의 악보에는 “오! 젊음이여! 사라졌구나! 오 사랑이여! 가버렸구나! (O Jugendzeit! Entschwundene!O Liebe! Verwehte!)”, “안녕! 안녕! (Leb'wol!Leb'wol!)” 등 수수께끼 같은 글귀들이 틈틈이 쓰여 있는데, 이 부분들은 곡을 해석하는 지휘자나 청자들이 다르게 해석하고, 호기심을 자극하게 한다. 발레리나의 발소리와 전차군단의 말발굽 소리가 공존했던 <말러 교향곡 9번>

안드리스 넬손스와 빈 필은 1악장부터 명료한 연주로 <말러 교향곡 9번>의 전체 뼈대를 잡아갔다. 1악장 전반에 툭툭 튀어나오는 반복되는 모티브와 음계들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극적인 인상을 표현한 에드바르 뭉크나 반 고흐의 짙은 붓 자국처럼 점묘하듯 연주되었다.

2악장은 조금 느린 랜틀러(Ländler, 오스트리아 고지대에서 추던 춤곡으로 모차르트와 베토벤, 슈베르트, 말러 등의 작품에 자주 나타남)와 빠른 왈츠가 교대되는 식의 구성인데, 넬손스는 빈 필 연주자들의 모든 소리들을 섬세하고 거대하게 끄집어냈다. 마치 춤추는 죽음이 인간에게 변조와 변덕으로 갑자기 다가오듯 넬손스는 연주자들과 끊임없이 사인을 주고받으며, 이 곡의 멋과 격을 살렸다.3악장은 해학극이라는 부제를 지닌 론도로서, 불협화음으로 가득 찬 선율들로 가득해 흐름을 어떻게 이끌어갈지가 관건인 곡이다. 넬손스와 빈 필은 과장해야 할 부분을 확실하게 부피감을 키워내 소리를 확장했고, 해학적인 골계미를 추구해야 하는 파트에서는 힘을 빼면서 부드럽게 흐름을 이어갔다.

4악장 교향곡 전체의 피날레이자, 말러의 음악적 소멸이 고스란히 표현되는 것 같았다. 죽음과 슬픔의 기운이 몸과 정신을 때리고 갔는지, 눈에 물방울이 맺혔다. 4악장의 도입부가 한바탕 휘몰아친 후 2층 상열에 자리 잡은 노인 여성 중 한 분은 갑작스러운 쇼크로 구급대에 실려 나갔다. 2층 객석 전반이 들썩여 수석 바이올린도 객석을 힐끗 바라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러의 ‘죽음의 교향곡’은 끝을 향하고 있었다. 4악장 악보에 맨 마지막에 쓰여진 특별한 지시어 ‘죽어가듯이... ersterbend‘까지 모든 악기들이 하나둘씩 마지막 숨을 쉬는 인간처럼 작은 존재감을 드러내다 침묵으로 수렴했다. 넬손스와 빈 필은 협연을 마치고 관객과 함께 25초 정도의 침묵을 갖고 연주를 마쳤다. (9번 교향곡이 끝나고 1분 내외의 침묵을 갖는 것이 관례다. 지휘자 故 클라우디아 아바도는 이 침묵의 순간이 곧 관객이 말러를 기리는 정신의 정도라고 표현했다.)
&lt;말러 교향곡 9번&gt; 연주를 마친 안드리스 넬손스와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 사진. ©이진섭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 오기 전까지 여러 버전의 <말러 교향곡 9번>을 듣고 또 들었지만, 이번 공연은 확실히 다른 차원의 소리 경험이었다. 말러 교향곡 9번을 초연한 교향악단답게 빈 필은 전차군단의 말발굽 소리와 발레리나의 발걸음을 동시에 들려주었다. 이들의 소리에는 공간이 확장하고 축소하는 환상도, 장례식 같은 엄숙함도, 카니발 같은 축제의 환희도 담겨 있었다.

한없이 한계에 도전하고, 질서에 맞서고, 규율과 정형화에 도전하고, 끊임없이 나 자신과 맞서는 행위. 이 모든 것이 말러가 생전에 표현한 '낭만주의 정신'이라 생각한다. 이런 면에서 안드리스 넬손스와 빈 필이 협연한 <말러 교향곡 9번>은 충분히 '낭만적'이었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 안드리스 넬손스와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lt;말러 교향곡 9번&gt; 공연 입장권 / 사진. ©이진섭
글·사진 | 이진섭

전기차 서비스를 기획하고 만드는 일을 합니다. 네이버캐스트에 [팝의 역사]를 연재했고, 음악 에세이 <살면서 꼭 한번 아이슬란드>도 출판했습니다. 음악과 미술로 여행하고, 탐미하며 가치를 발견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