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일제강점기 병약한 女탐정…부산의 미제사건 추적한다

최지인의 탐나는 책

마담 흑조는 곤란한 이야기를 청한다

무경 지음 / 나비클럽
292쪽|1만5000원
일제강점기 이야기라고 하면 흔히 경성을 떠올린다. 민족의 비극과 동시에 찾아온 근대화의 물결, 전차가 드나들고 백화점에 사람이 몰리는 낯선 신세계. 친일과 반일, 민족주의자와 공산주의자가 속이고 다투는 많은 소설이 경성을 배경으로 쓰였고 지금도 꾸준히 나온다. 하지만 경성만이 문제 도시였을까. 항구 도시로서 물자와 인력 수송을 위해 다양한 인종과 민족이 모여들었던 또 다른 핵심 도시가 있었으니, 바로 부산이다.

1928년 부산을 배경으로 병약한 여성 탐정과 비밀스러운 조수들이 미궁에 빠진 사건을 척척 풀어가는 이야기, 바로 소설가 무경의 <마담 흑조는 곤란한 이야기를 청한다: 1928, 부산>이 이 덥고 습한 계절에 등장했다. 지역과 시대에 관한 정확하고 세밀한 정보가 제공돼 리얼리티를 높였고, 앞에서 흩뿌려진 단서들은 이 재치 있는 탐정의 설계에 따라 완벽하게 회수돼 범인이 지목되는 순간 흥분이 제대로 터진다. 올여름 많은 미스터리 애독자를 설레게 한 작품이 아닐 수 없다.작가의 전작 <1929년 은일당 사건의 기록>(전 2권)의 스핀오프로, 소설 속 경성 다방 ‘흑조’에서 사건 이야기를 듣던 천연주가 이 책에서는 주인공 탐정으로 등장한다. 천연주는 요양을 위해 부산에서 지내는 열흘간 세 가지 사건을 만나게 된다.

‘곶감’ ‘귤’ ‘중산모’처럼 평범하고 작은 실마리에서 기발한 연관을 찾아내는 것이 흥미로웠고, 아무리 작중 인물일 뿐이라고 해도 서사의 흥미를 더하기 위해 쉽게 죽이는 선택을 하지 않으려는 작가의 의지가 엿보인다는 것 또한 읽는 내내 좋은 인상으로 남았다. 시대 사회의 격변상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너무 압도되지 않는 균형감을 갖고 있어 인물 각각의 개성과 사연이 생생하게 살아 있다.

핑계일 수도 있겠으나, 이 소설을 읽고 부산에 다녀왔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동래의 온천장과 과거의 경찰청, 부산역과 부산항 인근을 걸었다. 시대물을 읽으면 내가 살아가는 현재에 역사가 겹쳐져 세계가 입체감 있게 느껴진다. 무경의 <마담 흑조는 곤란한 이야기를 청한다>는 이런 효과를 무척이나 잘 살려서 여운이 많이 남는 이야기였고, 작가가 앞으로 써나갈 매혹적인 탐정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최지인 인플루엔셜 래빗홀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