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방글라데시 독립유공자들의 특권 놀음

방글라데시 사태는 국가 몰락의 전형적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기득권을 등에 업은 세력이 권력과 이익 독점을 위해 극단적 분열과 대결을 부추기고 경제는 파탄에 빠지는 경로다. 사태를 촉발한 건 독립유공자 공직 할당제다. 방글라데시에서 공무원은 각종 복지혜택을 받아 안정적인 데다 ‘부패 천국’에서 뇌물까지 보장된 ‘꿈의 직업’이다. 매년 대학 졸업생 40만 명에 공직은 고작 3000개. 그런 자리를 파키스탄 지배 시절 독립운동을 한 유공자 후손에게 30%를 강제 할당한다고 하니 청년들이 가만있을 리 만무하다.

시위 학생들은 독립유공자 후손인 셰이크 하시나 총리(인도로 도피) 정권이 자신들의 후손을 공직에 ‘꽂기’ 위해 할당제를 부활시켰다고 보고 있다. 독립유공자 자녀 할당제라는 허울을 쓴, 실제론 기득권 대물림이라는 것이다. 하시나는 ‘방가반두’(벵골의 친구)로 불리는 방글라데시의 국부 셰이크 무지부르 라만의 장녀다. 그와 더불어 방글라데시 독립운동사의 양대 산맥이 독립군 총사령관을 지낸 지아우르 라만 전 대통령이고, 그의 부인이 하시나 이전에 총리를 지낸 칼레다 지아다. 두 가문은 같은 하늘에서 살 수 없는 원수지간이다. 서로 집권 때마다 피의 보복이 자행됐고, 칼레다 지아는 정적인 하시나 축출 하루만에 가택연금에서 해제됐다.총 500여 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이번 사태에서는 대학생 간 집단 난투극도 있었다. 할당제를 놓고 찬반 양측이 충돌했는데, 경찰이 반대 학생들만 강경 진압한 게 사태를 키웠다.

이번 사태로 방글라데시 총수출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의류 제조업이 흔들리고 있다. H&M, 자라, 유니클로 등이 공장을 폐쇄하거나 캄보디아 등 인근 국가로 주문을 돌리고 있다는 것이다. 방글라데시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688달러(2022년)로 한국과 비교가 안 된다. 그러나 사회 통합 측면에선 우리가 우위라고 자신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하시나는 독립유공자들이 공무원 자리를 갖지 않으면 과거 파키스탄에 부역한 배신자들이 차지할 것이라고 했다. 독립기념관장 임명을 둘러싼 논란에서 나온 반일 몰이와 유사한 논리다.

윤성민 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