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피의 보복'하면 한국군·일본 자위대 출동하나 [원자재 이슈탐구]

전 세계 에너지·해운 기업, 금융사들
"어찌되든 페르시아만 석유 흐름 못 막는다"에 배팅
이란이 극한 상황 몰리지 않는다는 전제
이란이 이스라엘을 상대로 '피의 보복'을 공언한 지 20일 가까이 지났으나 비교적 잠잠한 상황이다. 외신들은 '이란이 마지막 평화 협상을 기다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물러서지 않는다는 것은 자명하다. 오히려 이스라엘이 이번 기회에 미국까지 끌어들여 이란 혁명수비대와 헤즈볼라를 재기 불능 상태로 만들거나, 이란 핵 시설을 파괴할 기회를 노린다는 인상도 풍긴다. 이스라엘은 지난달 31일 레바논 근교에 있던 고위급 헤즈볼라 사령관 푸아드 슈크르를 공습으로 제거했다. 몇 시간 후 테헤란에 있던 이스마일 하니예 하마스 정치 지도자도 암살됐다.

수모를 당한 이란은 최고 지도자 알리 하메네이의 체면을 세우면서 미국과의 전쟁에는 휘말리지 않을 방법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해 브랜트유 가격은 배럴당 78.37달러로 지난달 말보다 오히려 1.78%내린 상태다. 전세계 에너지 기업과 금융사 등도 이란이 복수는 하더라도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같은 극단적인 수를 쓰지 않을 것이란 데 베팅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유를 정리해봤다.
니미츠급 항공모함 USS 에이브러햄링컨 / 사진=AFP(미 해군 제공)

① 지난 4월과 달리 미 공군 F-22까지 왔다

외신들은 이란이 대규모 공격에 나서지 못한 이유는 미군의 억지력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이번 임기를 끝으로 물러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후계자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대선 승리를 위해 뛰고 있다. 이란이 전쟁을 확대한다면, 해리스 부통령에게 재를 뿌리는 셈이다.

미 국방부는 이란에 "경거망동할 경우 가만두지 않겠다"는 강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홍해와 지중해에 항공모함 USS시어도어루즈벨트호를 비롯해 다수의 구축함과 순양함이 대기 중이며 알레스카 기지에서 날아온 공군 F-22 편대도 중동에 도착했다. F-35C 함재기를 실은 USS에이브러햄링컨도 페르시아만으로 가는 중이다. 지난 4월 이스라엘이 시리아 주재 이란 영사관을 폭격했을 때 보다 더 많은 전력을 동원했다.F-22 전투기는 공중전에서 무적이며, 전자전기 EA-18G, F-35 등과 함께 적 방공망 제압 작전(SEAD)에 투입될 수 있는 기체다. 상황에 따라 이스라엘이 마음껏 이란 영토를 폭격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줄 수 있다는 얘기다. 핵추진 잠수함 USS 조지아호도 중동으로 출항했다. 직접 이란을 때리거나, 이란 함선을 수장시킬 수 있다는 경고다.
지난 2일 이스라엘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는 자리에 모인 레바논 베이루트의 무장대원들 / 사진=EPA

②이란 혁명수비대는 헤즈볼라·하마스 때문에 목숨 안 건다

이란의 혁명 수비대는 중국, 북한의 공산당 조직과 비슷한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대원 규모는 15만~19만명으로 추정되며 석유 밀수 등의 자체 수입원을 보유하고 있는 '국가 안의 국가'로 평가된다. 존 알트만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부대표는 외교 전문지 포린어페어스를 통해 "이란 혁명수비대는 강력한 제재를 받는 이란 경제 상황에서 수십억 달러의 밀수 수입을 내고 있어 다른 어떤 파벌보다 국제적 고립에서 이익을 얻는다"며 "그 돈으로 이른바 '저항의 축'을 형성하는 중동 전역의 대리인을 지원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혁명 수비대는 이란 주민들을 희생시켜 일부 선택된 자들의 권력만 유지하는 복잡한 폰지 사기를 이어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혁명수비대가 이름처럼 이슬람 원리주의 강경파 집단이 아닌 실리적으로 움직이는 집단이란 뜻이다. 지난 수 십년간 국민들의 저항을 눌렀듯, 마수드 페제시키안 신임 이란 대통령의 개혁 노선을 저지하는 정도면 된다는 얘기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는 게 중요하지, 미국 이스라엘과 이기지도 못할 싸움을 할 가능성은 적다는 얘기다.

헤즈볼라가 이스라엘과 싸울 가능성도 있으나 이는 국제 유가엔 영향이 적을 것으로 예상된다. 헤즈볼라도 잃을 게 많아 쉽게 나서지 못한다는 분석도 있다. 이스라엘의 표적 공습과 암살 작전도 부담스럽고, 나락으로 떨어진 레바논 경제가 더 악화될 수 있어서다. 헤즈볼라의 수장 하산 나스랄라는 지난 7일 연설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대응은 확실히 할 것이며 과거 암살에 대한 대응보다 더 가혹할 것"이라면서도 "용감하게 행동할 것이지만 그 행동이 충동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③석유 운송 막으면 '중동의 북한' 전락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우려는 중동 정세가 불안해질 때마다 나오는 얘기다. 전 세계 원유의 30%가 너비 50㎞에 불과한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수송된다. 각 방향 해상교통로의 너비는 3.2㎞에 불과하다. 수심이 비교적 얕아 선박이 기뢰에 취약하고, 육지와 가까워 지나는 선박이 해안의 미사일 공격이나 순찰선, 헬기 공격 등에 노출되기 쉽다. 예멘의 친이란 후티 반군이 홍해의 입구인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틀어막은 것처럼 손쉽게 항로를 막을 수 있다. 이란은 1980년대 이라크와 전쟁을 벌이며 당시 호르무즈 해협을 사실상 봉쇄한 적이 있고, 최근까지도 간헐적으로 해상오염, 해상 교통사고 등을 빌미로 상선을 나포하고 있다. 2021년엔 떼인 돈을 받겠다고 한국 화물선을 나포하기도 했다.
사진=게티이미지
그러나 이란이 미국과 이스라엘로부터 대규모 공습을 당하는 등의 극한 상황이 아니라면 선제적으로 유조선을 인질로 잡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길목을 막을 경우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카타르 등 주변국들과 관계가 더욱 악화될 수 있어서다. 해협을 막아봐야 미국과 이스라엘엔 타격을 못주고 아시아의 큰손 고객만 잃을 수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대부분의 석유는 아시아로 향하므로 해협 폐쇄는 서방의 이스라엘 지원국들에겐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고 경계 태세인 미 함대와 충돌이 빚어질 수 있다는 것도 큰 위험 요소다.

이란이 국제적 왕따로 전락할 위험도 높다. 2019년에도 핵 협정을 파기당한 이란이 항로를 위협하자 미국의 주도로 영국, 사우디 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바레인 등 10개국이 이란을 상대로 이른바 '센티널 작전'을 벌였다.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은 “중국은 해협(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원유의 91%를, 일본은 62%를 들여온다”며 “우리가 왜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면서 이 항로를 보호하고 있는가. 이런 나라는 자신들의 배를 스스로 보호해야 한다”며 한국과 일본 등을 압박하기도 했다. 일본은 센티널 작전에는 참여하지 않았으나 결국 호위함과 P3C 초계기를 파견했다. 한국은 군함을 파견하지 않았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