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가 쇠락해도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할 수 있다

[arte] 유창선의 오십부터 예술
늙어서도 ‘아름다운 날들’은 가능할까
포도뮤지엄 전시회 ‘어쩌면 아름다운 날들’
그림이든 음악이든, 우리가 예술 작품을 접할 때 가장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은 작가 혹은 연주자가 나의 마음을 이미 알고 있다는 느낌이 올 때이다. 세상 누구도 알아주지 못할 것만 같던 내 마음이 작품에 담겨있음을 발견하는 순간, 외로웠던 마음은 치유받고 나 혼자가 아니라는 연대의 힘이 생겨나게 된다. 아! 당신도 그랬구나! 그런 위안이야말로 바로 예술이 갖는 치유의 힘의 바탕일 것이다.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에 있는 포도뮤지엄에서는 ‘어쩌면 아름다운 날들 (PERHAPS SUNNY DAYS)' 전시가 열리고 있다. 이미 3월부터 하고 있던 이 전시를 이제야 보게 됐으니, 늘 볼 것은 많고 시간은 모자라다.▶▶▶[관련 리뷰] 황혼의 치매가 예술이 될 때…'어쩌면 가장 아름다운 날들'

이 전시를 주도한 김희영 총괄 디렉터는 “노년의 삶을 대하는 우리의 시선에 온기를 더하고 세대 간의 공감을 모색하고자 마련했다”고 소개하고 있다. 노년의 삶이란 누구도 원하지 않지만,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길이다. 인간에게 노화는 단지 육체의 쇠퇴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신과 삶 전체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런데 ‘어쩌면 아름다운 날들’ 전시는 나이 들어간다는 것이 피해 가고 싶은 쇠락의 늪이 아니라, 여전히 ‘나’로 아름답게 살아가는 시간일 수 있음을 보여주려 한다.

그래서 전시에 참여한 열 명의 작가는 노화 가운데에서도 특히 인지저하증을 통해 한 사람이 직면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고독의 순간을 예술적 시선으로 집중한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아티스트들은 알란 벨처, 루이스 부르주아, 쉐릴 세인트 온지, 정연두, 민예은, 로버트 테리엔, 더 케어테이커 & 이반 실, 데이비스 벅스, 시오타 치하루, 천경우이다. 여기에 테마 공간 ‘Forget Me Not’을 영상으로 관람하게 된다.
알란 벨처 <바탕화면> / 사진. ©유창선
전시장에서 제일 처음 마주하는 알란 벨처의 ‘바탕화면’은 JPEG라는 이미지 파일의 확장자가 벽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런데 그 이미지 파일들은 확인이 불가능하다. 기억하고 추억으로 남기고 싶은 순간들이 이제는 열어볼 수도 없고 기억해낼 수 없는 단순한 기호로만 남아있다. 기억하고 싶은 시간으로 돌아갈 수 없는 나는 무력해질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그런 불안을 뒤집어 놓는 것은 사진 작가 쉐릴 세인트 온지의 ‘새들을 집으로 부르며’였다. 그녀의 어머니는 2015년에 혈관성 치매 진단을 받았고, 수십 년간 함께 살아온 모녀의 추억과 감정은 어머니의 기억과 함께 점점 상실되어 가는 듯했다. 어머니 때문에 몇 년 간 활동을 중단했던 작가는 햇살이 창에 스며드는 어느 오후 문득 어머니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어머니의 삶 속에서 가볍고도 명랑한 순간들을 포착하기로 결심하고 손에 닿는 모든 카메라로 어머니의 모습을 2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기록했다.

어머니는 사진을 찍으러 나가는 순간, 사진을 찍기 위해 앉아있는 시간을 무척 즐거워했다. 치매에 걸린 사진 속 어머니는 아이처럼 거품 방울 풍선을 불고 있기도 하고, 음식 접시를 바닥까지 핥아먹고 있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어머니는 꽃향기와 햇살을 즐기고 있다.비록 기억은 사라져 가고 있지만, 어머니는 그렇게 살아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평생 새를 조각하고 연구하던 학자였던 작가의 어머니는 혈관성 치매 판정을 받은 후에도 새에게 지극한 관심을 보였다. 지금의 어머니는 그 시절의 어머니와 같은 사람이 맞다.
쉐릴 세인트 온지 <새들을 집으로 부르며> / 사진. ©유창선
작가 쉐릴은 이렇게 말한다. “이 사진들은 어머니와 제가 우리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찍은 것이었습니다.” 김희영 총괄 디렉터는 작가 쉐릴이 포도뮤지엄에 설치된 자신의 전시장에 도착했을 때의 상황을 기억하고 있었다.

“쉐릴은 방을 돌아보며 오래 울었다.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붉어진 눈가에서, 미소에서, 나를 안아주는 손길에서 너무 진하게 전해져 나도 같이 울었다. 쉐릴은 나를 꼭 안아주며 고맙다고 몇 번이고 말했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는 모든 과정을 통틀어 가장 가슴 벅찼던 순간이다.” (기획자 노트)어머니에 대한 쉐릴의 사진 기록들이 우리 마음에 울림을 가져온 것은 그 모습 하나하나가 우리 어머니들의 모습이었고, 언젠가는 내게 찾아올지 모르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시오타 치하루 <끝없는 선> / 사진. ©유창선
시오타 치하루의 ‘끝없는 선’은 인간의 혈관을 형상화한 실타래를 전시 공간 전체에 교체해 설치한 작업을 해놓은 특별한 공간이다. 마치 검은 연기 같은 수많은 선들이 길게 늘어져 있는 공간에 혼자 덩그러니 놓인 책상 위로 여러 문자들이 공중에 부유하고 있다. 한 사람의 삶을 구성해온 무한한 텍스트들이 구조를 잃고 해체되면 무엇이 남을까. 흩어진 실은 망각이고 덩그러니 남은 책상은 기억의 보존자이다. 우리는 망각의 시간을 피할 수 없지만 어떻게든 기억을 보존함으로써 나를 확인하고 싶어 한다.

여기서 모든 전시 공간을 다 설명할 여유는 없다. 하지만 관람에 가장 긴 시간을 보냈던 테마 공간인 ‘Forget Me Not’을 빼놓을 수는 없다. 이 공간에서는 100년을 살다가 생을 마감한 배롱나무가 포도뮤지엄과 조경회사 ‘수무’의 공동작업으로 전시장 안에서 다시 태어난다.

생명의 기운을 머금어 싹을 틔우고, 녹음이 무성해지고, 초여름부터 늦가을까지 백일 동안 화려하게 꽃을 피우던 이 나무는 모든 여정을 마치고 쓸쓸한 별이 되어 우주로 돌아가는 듯하다. 그러나 오케스트라의 현들이 일제히 조화롭게 튜닝을 시작하면서 다시금 새롭게 발아하는 생명의 순환성이 암시된다.

생명은 시간 속에 죽어갈 수밖에 없지만 길게 보면 생명은 순환하고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내 개인은 늙고 병들어 쓸쓸하게 죽어가지만, 그럼으로써 지구의 생명은 순환하게 되니 내가 늙어서 겪는 고통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닐 수 있다. 생물학적으로 볼 때 인간은 번식의 임무를 수행하고 수명을 다하면 죽는 존재이다. 인간으로서의 탄생 기회는 나만 누릴 수는 없는 것이요, 번식을 했으면 언젠가는 내가 죽어야 인간 생명의 순환이 가능하다. 그러니 내 삶의 유한성이 비극적 서사만은 아니다.
테마 공간 <Forget Me Not> / 사진. ©유창선
배롱나무가 죽어가다가 다시 생명을 얻는 사이 사이에 ‘추억의 비디오 공모전’에 참여한 많은 사람들이 영상으로 나온다. 태어나고, 아이가 되고, 어른이 되는 우리들의 지나온 모습들이 배롱나무 주변에 띄워진다. 나의 30년 전, 40년 전을 떠올리게 한다. 기억을 하고 추억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내가 ‘나’로 살아있음을 의미하기에 이 시간이 소중하다.

전시 공간들을 다 관람한 줄 알고 마지막 커튼을 걷고 나오는데 2층으로 올라가라고 안내받는다. 2층의 전시는 천경우 작가의 ‘가장 아름다운’이라고 되어있는데 이 공간에서 관람객들은 특별한 각자의 경험을 하게 된다. 밀실 안의 조그마한 책상에 앉아 눈을 감고 자기에게 가장 아름답고 그리운 한 사람의 형상을 떠올리며 그리는 일이다. 내게 가장 아름답고 그리운 그 사람은 바로 떠오를 수도 있고 혹은 끝내 아무도 떠오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니 ‘그 사람’이 아니라 나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이 된다.

그렇게 즉흥적으로 그려진 그림들이 공간 사방에 가득히 게시되어 있다. 이렇게 마지막으로 관객이 직접 자신의 화양연화 기억을 보존하게 하면서 전시는 끝난다.
천경우 <가장 아름다운> / 사진. ©유창선
전시회의 타이틀에 굳이 ‘어쩌면’이라는 말이 붙은 데는 우리 인생이 무조건 아름다울 것이라는 장밋빛 환상과는 거리를 둔 것이라고 나는 받아들였다. 누구에게나 ‘아름다운 날들’이 가능하다는 것은 현실과는 유리된 거짓말이 아닌가. 자신의 존재를 아름답게 만들고자 의식하며 노력했던 사람에게만 인생은 아름다운 날들이 될 수 있다는 뜻이 담겨있는 것만 같았다.

인생 전체를 아우르는 서사로 잘 짜여져있는 전시회다. 무엇보다 ‘느낌’과 ‘울림’이 있는 전시이다. 기획의 탄탄함이 돋보이고 준비에 많은 노력과 공이 들어갔음을 발견할 수 있다. 내년 3월 20일까지 전시가 계속되니 제주에 가는 분들은 관람하시기를 권해드린다.

포도뮤지엄에서 나오기 전에 도록 <어쩌면 아름다운 날들>을 구입했다. ‘기획자 노트’에 이런 말이 있었다. “좋은 전시란 미술관을 방문했다가 나올 때 예술가의 시각을 통해 내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조금이라도 달라졌는지, 혹은 나와 상관없었던 타인의 신발을 신고 몇 걸음이라도 걸어본 듯한 경험을 제공해 주는 전시이다.”

그 말대로라면 ‘어쩌면 아름다운 날들’은 좋은 전시일 게다. 늙어서 육체가 쇠락하더라도 우리는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할 수 있음을 아티스트들의 시선을 통해 발견했으니 말이다.

전시장을 떠나면서 평소 기억하던 독일 철학자 빌헬름 슈미트의 말이 떠올랐다. “나는 나이 듦에 맞서 싸우느라 모든 힘을 낭비하는 대신, 주름살에 새겨진 삶을 자신 있게 내 앞으로 가져오고 싶다.” 그런 좋은 기억들을 젊은 시절부터 차곡차곡 쌓아가는 것이 장차 ‘어쩌면 아름다운 날들’을 만들기 위한 길이 될 것임을 믿는다.* 참고문헌: 포도뮤지엄, <어쩌면 아름다운 날들>, 2024.

유창선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