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단순한 것이 모든 걸 담는다"…이교준의 '덜어냄의 미학'
입력
수정
피비갤러리 이교준 개인전그의 작품은 단순하다. 창호지를 붙인 한옥 문짝에서 은은한 빛이 흘러나오는 게 전부인 것같은 작품도 있다. 단순한 그림으로 진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가는 이교준. 이교준 작가는 “가장 단순한 것이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현재 ‘한국 2세대 기하추상회화 작가 가운데 유일하게 남은 작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Beyond the canvas'
1955년생인 이 작가가 단순하고 고요한 작품에 매력을 느낀 것은 20여년 전이다. 스무 살 무렵 실험적 설치 작업으로 미술계에 발을 들였다가 1990년대에 접어들며 회화와 재료를 본격적으로 탐구했다. 알루미늄, 금속판, 납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한 평면 작업이 시작된 것도 이때부터다. 도형과 점, 선, 면 등 기하학의 요소들을 바탕으로 한 평면 작업에 몰두했다. 그러다 2000년대 이교준은 '덜어냄의 미학'을 깨닫게 된다. 최소한의 형태와 구성, 색채만으로도 회화의 본질을 표현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면서다. 화려함, 다채로움 대신 단순함만을 추구하는 그의 작업 신념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왔다. 이교준이 추구해 온 '단순함의 세계'를 느낄 수 있는 전시가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서울 종로구 피비갤러리에서 열리는 그의 개인전 'Beyond the canvas'에서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작품도 모두 단순하고 깔끔하다. 기성 캔버스 틀을 쓰는 대신 직접 작품의 틀을 짠다. 그 위에 알루미늄 지지대를 설치하고 얇은 섬유인 린넨을 가져다 댄다. 린넨이라는 소재가 가진 얇은 두께 때문에 알루미늄 지지대가 그대로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 특징이다. 이 과정을 모두 거친 후에야 비로소 붓을 가져다 댄다. 하얀색 물감을 사용해 가로와 세로 직선을 긋는다. 때때로 노란색 물감을 사용해 변주를 주기도 했다.'단순함이 모든 것을 담는다'라는 그는 그림을 통해 정보의 늪에서 부유하는 현대인들에게 덜어냄에 대한 메시지를 전한다. 인공지능(AI) 등 점점 더 빠르고 새로운 것만을 찾고자 하는 현대 미술계를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그가 평면에 선을 그려넣는 이유 또한 그의 '수행자 정신'이 바탕이 됐다. 평면을 분할하면서 '본질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기 때문이다. 선과 면을 나누며 그는 인간들이 당연시 여기는 것들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고찰하는 마치 수행자와도 같은 시간을 보낸다.
피비갤러리에서의 개인전은 9월 28일까지 이어진다. 이교준의 작업을 피비갤러리 밖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9월 2~9일까지 서울 북촌의 한옥 '호호재'에서도 작품들을 소개한다. 오는 29일부터 개막하는 서울시립미술아카이브 소장품 기획전에서도 그의 신작과 구컬렉션이 함께 전시될 예정이다.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