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 제조기' 푸치니의 비극적인 사랑, 오묘한 조화

[arte]강성곤의 아리아 아모레

푸치니 오페라 中
'오묘한 조화'
푸치니는 야구로 치면 ‘안타 제조기’ 같은 작곡가다. 10개 남짓 오페라만으로 이토록 큰 명성을 얻은 이는 흔치 않다. 사람들이 무엇에 관심을 갖는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그즈음의 트렌드는 무엇인지에 대한 촉이 남달랐던 게 큰 몫이다.
자코모 푸치니(Giacomo Puccini,1858~1924) / 사진출처. LIFE photo collection
때는 1896년, 38세의 푸치니는 1900년에 100주년이 되는 이벤트가 뭐가 있을까 궁리하다 무릎을 친다. 1800년 6월 이탈리아 북부 마렝고(Marengo)서 펼쳐진 피의 전투를 떠올렸다. 프랑스 나폴레옹 혁명군과 오스트리아⸱이탈리아 연합군의 혈투 끝에 프랑스가 승리한 사건.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깔고,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분투하는 인물들을 씨줄⸱날줄로 엮으면 흥미로우리라 생각했다. 당시 이탈리아는 나폴레옹을 지지하는 공화파와 군주제를 지키려는 왕당파가 뒤섞여 큰 혼란의 와중이었다. 오페라 <토스카>는 이런 시대성에서 탄생한 셈이다.푸치니의 전작(前作) <라보엠>은 자유로운 영혼들의 사랑놀이가, 후작(後作) <나비부인>은 불편한 오리엔탈리즘이 어른거리는 데 반해 토스카는 사랑⸱욕망⸱운명⸱음모⸱죽음 등이 격동의 역사와 짜임을 이루어 단연 빛난다. 더욱이 하루라는 시간 안에 일어난 일을 다루기에 구성이 알차고 탄탄하다.
푸치니 오페라 &lt;토스카&gt; 포스터 / 사진출처. 구글 이미지
자유 정신에 충만한 화가 카바라도시(Cavaradossi)는 예쁘고 발랄한 가수 토스카와 사랑하는 사이. 한데 그즈음 수배 중이던 정치범 안젤로티(Angelotti)가 쫓기는 신세가 되자 의협심을 발휘해 숨겨준다. 로마의 왕당파 경감 스카르피아(Scarpia)는 토스카를 이용해 카바라도시를 붙잡고 그녀에게까지 흑심을 품고 있다. “부하들이 당신 애인에게 공포탄을 쏠 테니 걱정하지 마시오. 여기 통행증도 주겠소. 그러니 어서 내게로 와요.” 그러나 토스카에게는 가소로운 수작일 뿐. 그녀는 포옹하는 척하다가 과도를 꺼내 들어 “이게 네놈에게 보내는 나의 키스다”라며 경감의 목에 칼을 꽂고는 감옥 속 애인에게 달려간다. “카바라도시, 당신은 죽은 척하세요. 일이 되게끔 해놨어요. 우리는 오렌지꽃 피는 치비타베키아 항구로 탈출할 수 있어요.” 그러나 총알이 없다는 건 사악한 스카르피아의 거짓말. 카바라도시는 결국 죽고 뒤늦게 달려온 경찰 잔당들이 들이닥치자 토스카는 절망한 나머지 안젤로 성벽에서 몸을 던진다.
토스카와 카바라도시 그리고 아타반티의 초상화 / 사진출처. 구글이미지
푸치니는 영리하게도 막마다 한 개씩 기막힌 아리아를 배치했다. 1막엔 ‘오묘한 조화’, 2막은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그리고 3막 막판에 ‘별은 빛나건만’을 배치했다. ‘오묘한 조화(Recondita Armonia)’는 성 안드리에 델라 발레 성당에서 막달라 마리아 초상을 그리고 있는 카바라도시가 부르는 노래. 경건히 기도하는 여성은 아타반티(Attavanti)이지만 그는 이름을 모른다(사실 아타반티는 안젤로티의 여동생. 운명이다! 가사 속 플로리아(Floria)는 토스카의 이름. ‘꽃’이라는 뜻).“오묘한 조화로구나/똑같이 아름답지만/내 사랑 플로리아/그녀는 검은 머리지/누군지 모를 그림 속 여인은 금발에/거기다 푸른 눈이잖은가/토스카는 눈동자도 검은색이라네/신비로운 예술의 품 안에서/아름다움은 모두 일치된다고나 할까/이 여인 그림을 그린다만/내가 떠올리는 대상은 오직 토스카, 당신뿐”
(왼쪽) 토스카 DVD 표지 속 소프라노 '힐데가르트 베렌스' 사진출처 yes24 (오른쪽) 테너 '프랑코 코렐리' / 사진출처. Franco Corelli photo album 페이스북
파바로티가 등장하기 전 쟁쟁한 이탈리아 테너 셋이 있었다. 주세페 디 스테파노(Giuseppe Di Stefano,1921~2008), 마리오 델 모나코(Mario Del Monaco,1915~1982), 그리고 프랑코 코렐리(Franco Corelli,1921~2003)다. 이 중 프랑코 코렐리야말로 지존(至尊)이요 본좌(本座)다. 누구도 그처럼 노래할 순 없다. 큰 키에 미끈한 미남에 상남자. 수컷 본능을 바탕으로 거침없이 내지르는 동물적 고음(高音) 소리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1956년 나온 오페라 영화 <토스카>에서 그는 카바라도시의 정점을 찍는다.

전체적인 라인업을 따질 경우, 명반으로는 1953년 판인 마리아 칼라스, 주세페 디 스테파노, 티토 곱비 주인공에 빅토르 데 사바타 지휘 라 스칼라 가극장 관현악단 라인업과 1962년 녹음으로 레온타인 프라이스, 주세페 디 스테파노, 주세페 타데이 주역, 카라얀이 이끈 빈 필 것을 친다. 하나 더 보태면, 레나타 테발디, 마리오 델 모나코, 조지 런던 3역에 지휘엔 프란체스코 몰리나리-프라델리, 산타 체칠리아 아카데미 오케스트라의 1959년 음반이다.[프랑코 코렐리의 '오묘한 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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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곤 음악 칼럼니스트⸱전 KBS아나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