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혁신·포용…양궁서도 빛난 정의선 '3대 경영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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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om In지난 11일 폐막한 파리올림픽에서 가장 주목받은 한국인 중 한 명은 운동선수가 아니라 기업인이다. 주인공은 ‘전 종목 석권’(금메달 5개)이란 성과를 낸 정의선 대한양궁협회장(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정 회장의 리더십은 “현대차그룹을 글로벌 3위 자동차회사로 이끈 경영방식을 고스란히 양궁협회에 이식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경영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금빛 양궁' 키워낸 현대車 경영 DNA
車충돌시험 공개 '투명성 철학'
과녁 점수로만 대표 선발 이어져
로봇사업 진출한 '파괴적 혁신'
양궁 훈련에 車첨단 기술 접목
직원들과 격의없는 타운홀 미팅
20년간 대회 동행 '스킨십 경영'
19일 경영학계에 따르면 ‘정의선 리더십’을 기업 경영과 묶어 재조명하는 움직임이 산업계는 물론 학계에서도 일고 있다. 이들이 찾은 정의선 리더십의 키워드는 △공정 △혁신 △포용 등 세 가지다.첫 번째는 원칙을 지키는 공정하고 투명한 시스템. 양궁협회는 지연, 학연을 고려하지 않고 과녁에 꽂힌 점수로만 국가대표를 선발한다. 그래서 파벌 하나 없다. 정 회장은 2019년 현대차그룹의 신입 공채를 폐지했다. 이력서가 아니라 능력으로 직원을 뽑기 위해서다. 이 원칙은 제품을 개발할 때도 적용된다. 현대차는 미국 판매 모델이 한국 모델보다 내구성이 좋다는 의혹이 확산하자 2015년 10억원을 들여 실제 충돌시험을 진행해 두 모델이 다르지 않다는 걸 투명하게 보여줬다. 정 회장은 투명성과 공정성만 확보되면 나머지는 양궁협회에 맡겼다. 현대차그룹을 경영할 때처럼 해당 분야를 가장 잘 아는 전문가에게 자율성을 준 것이다.
양궁협회가 2013년 유소년대표선수단(초등부)을 신설한 것도 정 회장의 경영 스타일을 엿볼 수 있는 사례로 꼽힌다. 세계를 제패하려면 먼저 선수층을 넓힌 뒤 체계적으로 훈련시켜야 한다는 평소 경영철학이 반영됐다는 이유에서다. ‘유소년대표-청소년대표-후보선수-대표상비군-국가대표’에 이르는 선수 육성 시스템을 체계화한 덕분에 대한민국이 양궁을 제패한 것처럼 현대차그룹도 단단한 인재 양성 시스템에 힘입어 세계 3대 자동차 업체로 올라섰다. 작년 8월 서울대에 미래자동차모빌리티학과를 설립한 것이나 같은 해 미국 조지아공대(9월), 베트남 하노이국립대(7월) 등과 손잡은 게 대표적 인재 육성 사례로 꼽힌다.
두 번째는 혁신. 2012년 런던올림픽 직후 정 회장은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자동차 연구개발(R&D) 기술을 선수 훈련과 장비에 적용할 수 있는지 알아보자고 한 것이다. 양궁협회 회장사인 현대차그룹은 협회와 협의해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을 앞두고 기술 지원을 시작했다. 여기에 정 회장이 입에 달고 다니는 ‘미리미리’ 정신을 더해 실전에서 나올 수 있는 온갖 변수를 감안한 훈련법을 도입했다.모든 변수에 대비하면서도 혁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건 정 회장의 현대차그룹 운영 방식과 맥을 같이한다. 정 회장은 자동차업계에서 ‘파괴적 혁신가’(미국 뉴스위크 선정)로 불린다. 제네시스를 단독 브랜드로 독립시킨 것이나, 보스턴다이내믹스를 1조원에 인수해 로봇사업에 진출한 것이나, 자율주행 시대에 대비해 모셔널과 포티투닷 등 기술 기업에 투자하는 것 모두 정 회장이 주도했다. 업계 관계자는 “정 회장이 평소 임직원들에게 혁신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았다면 자동차업계에 변곡점이 왔을 때 현대차그룹이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 키워드는 포용이다. 정 회장은 경영 현장과 소통을 중시한다. 정 회장은 2019년 일반 직원들과 만나 격의 없이 대화하는 타운홀 미팅을 도입하기도 했다. 정 회장은 거의 매달 출장길에 오를 정도로 현장 경영 및 임직원과의 소통을 중시한다. 양궁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난 20년간 주요 국제대회에 모두 동행해 선수들을 격려했다. 현장 스킨십뿐 아니라 선수들이 마음껏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세심한 부분까지 배려한다. “디테일이 살아 있는 정 회장 리더십에 여러 번 감동했다”(장영술 양궁협회 부회장)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정 회장이 양궁협회에 ‘운동장의 빛이 안 드는 곳에 계신 분까지 모두 챙기라’고 한 건 빈말이 아니다”며 “평소 회사를 경영할 때도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신정은 기자 newyear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