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로열오페라 명성이 오롯이 담겨진 '오텔로'

오텔로

키스 워너 연출 베르디 오페라
세계 최고 수준 완성도 선보여

바센츠·바살로 등 출중한 연기
이용훈은 고음으로 객석 장악
베테랑 지휘자 리치도 인상적
지난 18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주세페 베르디의 오페라 ‘오텔로’가 베일을 벗었다. ‘오텔로’는 영국 런던 로열오페라하우스의 최근 프로덕션으로, 키스 워너가 연출한 작품이다. 예술의전당 제공
첫 막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사랑의 2중창’에서 두 주인공의 노래가 끝나고 후주가 흐르고 있는데 객석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러자 지휘자 카를로 리치가 객석을 향해 몸을 돌리고 관객들을 향해 모종의 제스처를 취했다. 이내 박수는 잦아들었고 관객들은 의미심장한 2중창의 섬세한 여운을 음미할 수 있었다. 현존하는 세계 정상급 오페라 지휘자로 평가받는 리치의 면모를 엿볼 수 있어 인상 깊은 장면이었다.

베르디의 마지막 비극 오페라 ‘오텔로’가 지난 18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막을 올렸다. 예술의전당이 올해 야심 차게 선보이고 있는 ‘오페라하우스 기획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오페라 극장 중 하나인 영국 런던 로열오페라하우스의 최근 프로덕션을 가져왔다. 영국의 저명한 연출가 키스 워너의 작품이다. 독일 테너 요나스 카우프만의 배역 데뷔 당시 공연 실황을 담은 영상물로 오페라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잘 알려진 무대다.이번 공연에서는 독일 연출가 카타리나 카스트닝이 리바이벌 연출을 맡았다. 셰익스피어의 <오셀로>를 원작으로 하는 오페라는 무어인 용병 출신 오텔로 장군이 부하 이아고의 계략에 빠져 사랑하는 아내 데스데모나를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까지 버리는 비극을 담고 있다.

베르디의 ‘오텔로’는 ‘바그너 악극에 대한 이탈리아의 응답’으로 규정될 만큼 음악과 드라마의 융합, 성악과 관현악의 균형 잡힌 조화가 관건인 작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세기 이탈리아 오페라를 대표하는 베르디의 작품인 만큼 노래의 존재감이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 그중에서도 ‘주역 3인’ 오텔로, 이아고, 데스데모나가 부르는 노래들은 상징적인 동시에 절대적이다.

우선 ‘파멸로 치닫는 무어인 영웅’ 오텔로로 분한 테너 이용훈의 노래에는 부침이 있었다. 특유의 힘차고 단단하게 뻗어 나오는 고음과 진심 어린 연기는 무대와 객석을 충분히 장악했지만 썩 좋은 컨디션은 아니었던 듯 중저음과 약음을 내는 데 애를 먹는 모습이었다. 데스데모나와 함께 부른 ‘사랑의 2중창’이 아쉬웠다.다만 그의 노래는 막을 거듭할수록 점점 나아졌고, 종막에서는 거의 손색없는 노래로 컨디션 난조를 극복해내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 과정은 극 중 배역이 겪어내는 여정과는 정반대였지만, 관객 입장에서는 뉴욕 메트폴리탄 오페라를 비롯한 국제 무대에서 주역으로 활약해 온 그의 관록과 의지를 다른 관점에서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다. 아마 차후 공연들에서는 한결 좋은 모습을 보여주리라 기대된다.

이아고로 분한 이탈리아 바리톤 프랑코 바살로의 노래와 연기는 매우 노련하고 출중했다. 그는 이 비극의 조종자, 설계자인 이아고를 다분히 유연하고 능청스러운 모습으로 형상화해 악마적 카리스마보다는 블랙 유머와 아이러니를 좀 더 부각시켰다.

데스데모나로 분한 아르메니아 소프라노 흐라추히 바센츠도 빼어난 노래와 자연스러운 연기를 선보였다. 수정처럼 청신한 음색과 유려한 프레이징이 돋보여 데스데모나의 비련과 종교적 아우라를 전달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그런데 그 모든 노래는 이탈리아 지휘자 카를로 리치의 조율이 있었기에 더욱 빛날 수 있었다. 리치는 무대 위 가수들을 리드하고 배려하는 동시에 무대 아래의 오케스트라도 빈틈없이 단속하고 독려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무대와 음악을 훌륭한 완성도로 만날 수 있는 이번 공연은 오페라 애호가라면 결코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베르디의 가장 강렬하고 신랄하며 처절하기 이를 데 없는 최고 걸작을 온전히 마주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25일까지 4회 공연이 남았다. 주역은 더블캐스팅이지만 어떤 공연을 선택해도 후회는 없을 듯싶다.

황장원 음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