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비엔날레 '65일 대장정' 시작… 주제는 '어둠에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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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에서 보기' 주제로 개막부산 중구 초량동의 한 골목. 높이 솟은 아파트와 상가를 굽이굽이 지나자 현대적인 주변 풍경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양옥집이 등장한다. 이곳은 '초량재'. 1950년대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가옥으로, 근대 역사를 느껴볼 수 있어 부산의 명소로 자리잡은 곳이다. 좁은 마당을 지나면 펼쳐지는 2층짜리 가옥이 지금 작은 미술관으로 변했다. 국내 작가들과 팔레스타인,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 다양한 국적의 작가들의 작품이 옥상, 바닥, 벽면을 가득 채웠다.
36개국 78명 349점 작품 전시
지금 부산은 미술 축제로 물들었다. 2024 부산비엔날레가 '어둠에서 보기'라는 주제로 지난 17일 개막하면서다. 1981년 시작해 2년마다 관객을 만나는 국제 미술제다. 올해는 유럽을 무대로 활동하는 베라 메이, 필리프 피로트가 전시 감독을 맡았다. 36개국에서 부산을 찾은 작가 78팀이 선보이는 349여 점의 작품을 전시한다.부산 사하구 부산현대미술관, 중구 한성1918, 초량재, 그리고 부산근현대역사관이 비엔날레 무대가 됐다. 옛 은행 금고를 미술관으로 만든 부산근현대역사관 금고미술관, 양옥 초량재 등 지역의 흔적을 그대로 담은 곳을 전시장으로 만들었다. '감각의 틀에서 벗어난 전시'를 보여주기 위해서 전시 공간부터 새롭게 바꿨다.
비엔날레의 매력, 흔히 만나볼 수 없는 작품 가득두 감독은 미국의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의 책 '해적 계몽주의'에서 전시 영감을 얻었다. 18세기 폭력적으로 여겨지는 해적 공동체가 평화와 민주주의를 가장 잘 실천한 집단이었다는 아이러니가 이들의 마음을 움직였다.특히 바다 위에서 돌풍과 태풍 등 예기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문제를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는 인물이 리더가 됐다는 해적 사회의 유연성에 주목했다. 유연성이라는 주제 의식에 맞춰 국적, 성별을 불문하고 다문화적이며 다양한 주제를 가진 작품들을 선별했다.
작품 거래가 이뤄지는 아트페어, 갤러리 전시와 달리 비엔날레는 전시 감독이 주제를 가지고 작품을 골라 선보이는 행사다. 이번 부산비엔날레에서도 흔히 만나보기 어려운 작가들의 작업을 만나볼 수 있다. 마치 '해적처럼'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며 작가가 된 이들의 작품을 모았다.
부산현대미술관 1층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작품이 대표적이다. 경남 양산 통도사성보박물관장을 지낸 송천 스님이 대형 불화를 내걸었다. 그 높이가 무려 8m, 폭은 2m에 달한다. 대형 불화벽에는 '진실의 눈'이라는 제목으로 눈알 네 개를 그려넣었다. 타원형의 눈은 마치 관객의 움직임을 따라가는 듯하다. 송천 스님은 "언제나 진리의 시선은 내 곁에 있다는 의미로 이 눈을 그려넣었다"고 말했다.한 전시장에 들어서면 건어물 냄새로 가득하다. 냄새의 근원지는 태국 작가 소라윗 송사티야가 선보이는 설치작이다. 작가가 직접 부산 자갈치시장을 찾아 버려지는 어패류 껍데기와 말린 멸치 등을 구입해 고향에서 가져 온 얇은 등나무 덩굴로 엮었다. 어촌 마을에서 자랐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부산이라는 지역적 특징과 연결했다.
인도에서 온 라즈야쉬리 구디는 현대미술관 바닥에 도자기 그릇 수십 개를 엎어놓았다. 그릇은 모두 부산에서 수집했다. 불교의 승탑을 해체해 바닥에 내려놓은 작품이다. 작가가 비엔날레 기간동안 현장을 찾아 그릇을 뒤집는 수행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유명 작가 대신 다양한 이력을 가진 작가들을 모은 이유에 대해 박수지 부산비엔날레 큐레이터는 "해적처럼 억압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해방구를 구축한 작가를 발굴하고자 했다"고 말했다."불친절한 비엔날레" … 아쉬운 목소리도2024 부산비엔날레에는 아쉬운 부분도 존재한다. 공모를 통해 뽑힌 두 감독이 네 곳의 전시장에서 주제 의식을 분명히 전달하는 데 어려움을 겪으면서다. 개막일 현장에서는 "각 공간마다 어떤 공통점을 가지고 작가들을 모았는지에 대해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다. 같은 건물에서 작품을 감상하는데도 각 공간마다 작품이 가진 주제의식이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 이유다.
무엇보다 전시 전반에 걸쳐 관객에게 친절하지 않다는 것이 가장 큰 아쉬운 지점이다. 대부분의 전시에선 일반 관객이 현재 관람하고 있는 작품의 제목, 작가 정보와 이력 등을 설명하기 위해서 벽이나 바닥에 안내를 붙여놓는다. 특히 여러 국가의 작가가 모여 다양한 형태의 작업을 한꺼번에 내놓는 비엔날레의 특성상 작가와 작업에 대한 설명은 관객의 이해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다.하지만 이번 부산비엔날레에서는 "작품 설명을 관객이 쉽게 찾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왔다. 실제 개막일 넓은 공간에 여러 작품이 설치된 경우 작품 설명을 찾아 헤매는 관객들도 많았다. 각 관이나 건물별로 주제를 나눈 것이 아니라 모두 섞어 설치한 두 감독의 전시 방식도 관객의 혼란을 불렀다.2024 부산비엔날레는 65일간 펼쳐진다. 입장료가 1만6000원인 부산현대미술관을 제외한 모든 전시관은 무료로 관람이 가능하다. 올해 부산비엔날레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는 '2024 대한민국 미술 축제'에 동참한다. 오는 9월 개막하는 광주비엔날레의 입장권을 가진 관객에게는 2000원의 할인도 제공한다. 전시는 올해 10월 20일까지다.
부산=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