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필버그 세상은 영화도 인간만큼, 인간도 영화만큼 아름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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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김효정의 세기의 영화감독[1부에 이어서]
스티븐 스필버그 [2부]
데뷔 50주년, '아메리칸 시네마의 아버지' 스티븐 스필버그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기록을 가진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1부] 스필버그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주의 감독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또 다른 작품은 바로 <쉰들러 리스트> (1993)다. 지인의 권유로 참여했던 <컬러 퍼플>과는 달리 <쉰들러 리스트>는 오랜 시간 동안 스필버그 본인이 꿈꿨던 일종의 ‘숙원사업’이었다.
이 작품이 10여년 동안 실현되지 못하고 숙원사업으로 남아 있었던 이유는 (스필버그 자신에게 있어) 간단했다. 그가 1100명의 유대인을 구한 독일인 쉰들러의 이야기, 다시 말해 홀로코스트를 감당하기에는 육체적으로나 정서적으로, 그리고 아티스트로서도 너무 어리다고 느꼈던 것이다. 스필버그는 첫아들이 태어나고 나서야 처음으로 이 프로젝트를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이는 한 생명의 아버지가 된 스필버그의 결의이기도 했고, 유대인으로서의 유산을 기리겠다는 다짐이기도 했다.<쉰들러 리스트>는 러닝 타임의 반 정도가 핸드헬드 (Hand-Held)로 촬영되어 다큐멘터리적 리얼리즘을 극대화했다. 또한 영화는 흑백으로 촬영되었는데 영화의 후반에서 학살당하는 소녀가 입은 빨간 코트만 컬러로 설정되어 참상의 비극을 상징화했다.돌이켜보면 유대인 스필버그가 만든 <쉰들러 리스트>는 그가 이루어 온 것을 위태롭게 할 수 있었던 위험한 프로젝트가 분명하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지만 표면적으로 영화에서 유대인들을 구하는 영웅, 쉰들러는 엄연히 독일인이고, 나치 옹호자였기 때문이다.이는 분명 유대인 사회에서 문제적인 상업영화로 낙인찍힐 만한 소지가 다분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스필버그는 오히려 그를 휴머니즘의 상징, 즉, 히틀러가 묵살했던 인류의 가장 기본적인 가치를 수호하고자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버린 지극히 인간적인 인물로 재현함으로써,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영웅이 아니라 ‘인간’임을 역설했다.
주제 의식 그리고 영화의 재현 모드에 있어서 <쉰들러 리스트>는 분명 무겁고, 쉽지 않은 영화였지만 대중과 평단은 엄청난 호평으로 그에게 화답했다. 이 작품으로 스필버그는 흥행뿐 아니라 아카데미에서 첫 감독상을 받음으로써 명실공히 할리우드의 거장으로 떠오르게 된다.이후 연출직에서 잠시 물러난 스필버그는 제프리 카첸버그, 데이비드 게펜과 함께 그의 첫 영화사인 ‘드림웍스’(1994)를 설립하고 플로리다에 위치한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쥬라기 공원을 디자인하는 등 사업가적인 활약에 집중한다. 그러나 지독한 시네필인 스필버그가 다시 영화 연출로 돌아오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가 복귀하고 연출한 <쥬라기 공원 시리즈>의 후속편, <로스트 월드>와 <아미스타드>는 무려 같은 해에 개봉하며 스필버그의 화려한 귀환을 알렸다. 그럼에도 이 시기에 잉태된 작품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이라면 바로 그의 첫 전쟁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 (1998)가 될 것이다.전쟁 영화 (war epic), 특히 제2차 세계대전을 중심으로 하는 전쟁 영화는 거장들의 대표작에서 빠지지 않는 아이템이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지옥의 묵시록> (1979), 마이클 치미노의 <디어 헌터> (1979), 올리버 스톤의 <플래툰> (1987) 등 수많은 전쟁 걸작의 반열에 스필버그는 비교적 늦게 합세했다고 할 수 있다.전쟁으로 삼형제 모두를 전장으로 보낸 한 가정을 위해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라이언 일병’을 찾아 나서는 군인들의 이야기,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스필버그의 전매특허인 휴머니즘, 즉, 전쟁이라는 거대 담론을 소시민적 영웅주의와 이야기로 접근하는 영화다. 앞서 언급한 전쟁 걸작들과 마찬가지로 역시 전쟁의 참상 (특히 전반 30분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재현)과 그 거대악을 조명하고 있지만 영화는 스필버그 특유의 인간을 향한 따뜻한 시선과 낙관적인 신념에 더 무게를 둔다.참으로 다양하고도 많은 영화를 만들었던 스필버그 영화의 중심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인간’이다. 그리고 스크린은 스필버그가 인간을 바라보는 ‘눈’이다. 그의 최근작 <파벨만스>는 영화에 미쳐 있는 소년이자 스필버그 자신인 ‘새미’라는 인물이 바라보는 (세상과) 사람들의 기록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영화라는 매체가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을 기록한 작품이기도 하다.어떤 방향이 중심이든 간에 스필버그의 세상에서는 영화도 인간만큼, 혹은 인간도 영화만큼이나 아름다운 존재다. 데뷔 50주년을 맞는 스필버그는 그의 다음 영화에서 이 두 세계를 어떻게 중첩시킬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