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건 갖춰 법무장관 허락"…창업 가로막는 '리걸테크법'

입법 레이더

자본금·시설·장비 기준까지 둬
소형 신생업체 진입장벽 높아
로톡 등 선두업체만 허가 가능성

업계 "이대로면 한두곳만 생존"
더불어민주당이 ‘로톡’ 같은 법률 서비스 플랫폼을 육성하겠다며 ‘리걸테크 진흥법’ 제정에 나섰다. 하지만 여기에는 초강력 규제 내용이 담겨 관련 스타트업들은 실제 시행 시 줄줄이 사업을 접어야 할 수 있다는 우려를 쏟아내고 있다. 리걸테크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변호사를 두고, 법률이 정하는 자본금과 시설·장비를 갖춰 정부의 허가까지 받으라는 내용의 독소조항도 포함됐다.

20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 법안을 대표 발의한 권칠승 민주당 의원은 22일 국회에서 입법공청회를 열고 법안 추진에 드라이브를 걸 예정이다. 5선 중진 박지원 의원 등도 공동 주최자로 이름을 올렸다.공청회에서는 권 의원이 지난달 발의한 ‘리걸테크 산업진흥 및 이용 촉진에 관한 법률안’을 논의한다. 권 의원은 “벤처기업이 인공지능(AI)을 법률 분야에 적용해 리걸테크 서비스를 제공할 경우 어떤 규제를 적용받을지 불분명한 ‘그레이존’에서 사업하는 상황”이라며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구체적 자격과 산업을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제정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리걸테크 스타트업은 해당 법안이 발의되자 크게 반발하고 있다. 권 의원안은 리걸테크의 정의를 △법률 종사자 정보 제공 △자동화된 법률 자문 △법률 사건 결과 예측 △법률 문서 작성 △판례·법령 제공 등으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자는 ‘법무부 장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조항을 만들었다.

법무부 장관의 허가를 위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금액 이상의 자본금 보유 △변호사 등 전문인력과 시설·장비 구비 등을 요건으로 달았다. 구체적인 자본금 규모와 필요한 장비 등은 명시하지 않았지만, 상당수 소규모 스타트업은 ‘허가제’에 대한 우려를 내놓고 있다.한 스타트업 대표는 “제공하는 서비스와 관련 없는 거액의 장비나 시스템이 필요하게 될까 걱정된다”며 “자본금 규정은 이미 자리 잡은 업계 선두 기업에만 유리한 것”이라고 말했다. 법안에선 법률 자문, 결과 예측 등 기업이 변호사를 반드시 고용하도록 했지만, 서비스 형태에 따라 변호사가 필요 없는 리걸테크 기업도 상당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권 의원은 해당 법안을 21대 국회에서도 발의하려다 업계 반발에 접은 바 있다. 리걸테크산업협의회 소속 스타트업 대다수는 권 의원 측에 익명으로 반대 의견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리걸테크 업체 관계자는 “권 의원이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지낸 데다 법안이 이제 논의 단계라 강하게 반대 목소리를 냈다가 미운털이 박힐까 봐 업체들이 떨고 있다”며 “이대로 제정되면 선두 업체 한두 곳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고사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