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클' 현대음악 작곡가 김택수 "현대인의 고독에서 영감 얻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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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음악 작곡가 김택수 인터뷰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오케스트라….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만한 미국 명문 악단들이 잇따라 작품을 무대에 올리고, 앙상블 모데른(독일) 같은 최정상급 현대음악 단체에서 작품을 새로 위촉할 정도로 세계의 주목을 받는 한국계 작곡가가 있다. 2021년 국제적 권위의 버를로우 작곡상(Barlow Prize)의 수상자로도 선정되며 존재감을 과시한 현대음악 작곡가 김택수(44) 얘기다.
24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신곡 'with/out' 아시아 초연
미국·독일 오케스트라 악장들 참여
'현시대의 사회적 거리' 주제 조명
"한국에서의 추억, 신선한 아이디어의 원천"
"거창한 꿈보단 스스로 떳떳한 작품 남기고파"
그가 한국을 찾았다. 올해 7회를 맞은 힉엣눙크! 뮤직 페스티벌에서 신곡 ‘네 대의 바이올린과 타악기를 위한 협주곡(with/out)’ 아시아 초연을 올리기 위해서다. 오는 24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이번 공연엔 뉴욕 필하모닉의 악장 프랭크 황,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의 악장 데이비드 챈, 함부르크 필하모닉의 악장 다니엘 조, 몬트리올 심포니의 악장 앤드류 완 등이 참여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실내악단인 세종솔로이스츠가 김택수에게 위촉한 작품으로 지난 5월 미국 뉴욕 카네기홀에서 세계 초연됐다.지난 20일 서울 서대문구의 한 호텔에서 김택수를 만났다. 그는 “이번 작품은 코로나 팬데믹 당시 한 건물(아파트)에 모여 살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이 철저히 고립되어있는 모습에서 영감을 얻은 곡”이라며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전보다 많은 사람과 가깝게 연결되어 있으나 더 강한 고독감을 느끼는 현대인의 모습과 매우 닮았다고 느꼈다”고 했다. 김택수는 이번 작품에서 세 개의 악장을 통해 ‘현시대의 사회적 거리’에 대한 고찰을 담아냈다.
그는 “1악장에선 군중 속에서의 고독을, 2악장에선 한 가지 목표를 향해 달리는 집단과 정해진 틀을 벗어나려는 개인 간의 갈등, 긴밀한 소통 없이 각자 하고 싶은 말만 늘어놓는 집단적 독백 등 사회집단에서 발견할 수 있는 다양한 거리감을 표현했다”고 했다. “현대사회에서 존재하는 ‘외로움’이 비단 나에게만 찾아오는 불편한 감정이 아니라, 모두에게 올 수 있는 보편적인 감정임을 느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누군가에겐 그런 교감 자체가 큰 힘이 된다고 믿거든요.”지금껏 이룬 성과만 보면 어렸을 때부터 줄곧 음악을 전공했을 것이라 짐작하기 쉽지만, 그는 과학 영재 출신의 작곡가다. 1998년 국제화학올림피아드에 한국 대표로 참가해 은메달을 목에 걸었고, 서울과학고와 서울대 화학과에서 공부했다. 음악은 네 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고, 일곱 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시작한 것, 몇몇 동아리 활동에 참여한 게 전부였다. 그랬던 그가 진로를 다시 생각하게 된 건 대학 4학년 때 일이다.
김택수는 “화학을 공부할 땐 아무리 고민해도 이를 가지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비전이 없었는데, 음악을 할 때만큼은 앞으로 하고 싶은 일들이 쉼 없이 떠올랐다”며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작곡과 수업을 하나둘 청강했고, 서울대 작곡과로 편입하면서 ‘작곡가의 길을 걸어봐도 되겠다’는 확신을 얻었다”고 했다. 동 대학원에서 작곡 전공으로 졸업한 그는 2011년 미국으로 건너가 인디애나 음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김택수는 현재 샌디에이고 주립대 교수로 후학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현대음악은 보통 난해하고 어렵다는 인식이 강하지만, 그의 작품은 듣기 어렵지 않다. 일상에서 소재를 찾고, 유머러스한 요소를 충실히 활용한다. 한국 특유의 정서를 담은 작품도 여러 개다. “찹쌀떡!” “메밀묵!” 같은 정겨운 소리가 그대로 등장하는 합창곡 ‘찹쌀떡’, 옛날 국민체조 구령과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선율이 녹아있는 ‘초등학교 환상곡’ 등이 대표적이다. 국악과 클래식의 융합도 김택수의 작품에선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김택수는 “영감이 대단한 경험에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며 “특별한 것 없는 일상에서 마주하는 소리 한음, 생각 한 줄에서 나의 아이디어는 시작된다”고 했다. 이어 그는 “같은 일상이라도 남들과 조금은 다른, 외국인들에게 신선하게 느껴질 만한 경험이 무엇일까 끊임없이 고민했는데, 언제나 그에 대한 답은 ‘한국에서의 추억’이었다”며 “한국에서의 소중한 경험들, 호소력 짙은 국악에 대한 끝없는 궁금증은 앞으로도 영감의 귀중한 원천이 될 것”이라고 했다.
김택수에게 작곡가로서 최종 목표를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작곡이란 반복해서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고, 끊임없이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결국 시작도 끝도 제가 결정할 수 있죠. 그래서 거창한 꿈을 꾸기보단, 언제 뒤돌아봐도 스스로 떳떳한 작품을 남기는 걸 목표로 삼고 싶어요. 지쳐서 쓰러질지언정 조금의 후회도 남지 않도록요.”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