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E&S 합병 제동거는 국민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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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총서 반대 의결권 행사키로▶마켓인사이트 8월 22일 오후 4시 43분
국민연금 "SK이노 주주가치 훼손"
업계 "기업 성장성 무시한 결정
SK㈜ 주주로서 종합적 판단해야"
ISS·외국계 큰손은 합병에 찬성
국민연금공단이 SK이노베이션과 SK E&S 합병에 반대표를 던지기로 했다. 2대주주인 국민연금이 제동을 걸면서 SK의 사업 재편이 안갯속에 놓였다. 하지만 투자업계에선 “기업의 장기 성장성을 외면한 근시안적 판단”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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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이노베이션은 소액주주를 고려해 합병 비율을 산정했다는 입장이지만 국민연금은 반발하는 분위기다. SK이노베이션과 SK E&S 간 합병은 1 대 2 비율로 이뤄질 것이란 예상을 깨고 1 대 1.1917417로 산정됐다. SK그룹이 SK이노베이션 주주의 반발을 의식해 예상보다 SK E&S 가치를 낮춰 합병 비율을 산정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주주가치 훼손 우려가 크다고 주장했다. 수책위 내에서는 상장회사인 SK이노베이션의 주주가치가 비상장사인 SK E&S와의 합병으로 인해 희석될 수 있다는 게 주된 반대 사유로 꼽혔다. 국내 의결권자문사 서스틴베스트도 이 합병 비율이 SK이노베이션 일반 주주에게 불리하다며 기관투자가에 합병 반대를 권고한 바 있다.국민연금의 제동으로 다른 기관투자가도 반대 의결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커졌다. 국민연금의 판단을 추종하는 기관이 적지 않아서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반대하면 다른 기관투자가도 따라서 의결권을 행사하게 된다”며 “주총에서 해외 투자자의 표심을 잡는 게 관건일 것”이라고 전했다.
국민연금의 반대는 단순 의결권 행사뿐만 아니라 주식매수청구권에도 영향을 준다. SK이노베이션 주주들은 27일부터 다음달 19일까지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 SK이노베이션이 설정한 가격(11만1943원)보다 주가가 낮으면 국민연금도 매수청구권을 행사하게 된다. 국민연금이 보유 주식을 모두 청구하면 약 6650억원에 달하는 금액을 SK이노베이션이 마련해야 한다. SK이노베이션은 청구권에 대응하기 위해 8000억원을 마련하기로 했다. 이를 초과하면 합병이 무산될 수 있다.
운용업계에선 수책위의 이번 결정에 대해 “SK그룹 주요 계열사의 주주로서가 아니라 SK이노베이션의 단기 주주 관점에서 사안을 바라본 것”이라고 지적했다. 운용업계 한 대표는 “국민연금은 SK이노베이션의 모기업인 SK㈜의 지분 7.44%를 보유한 주주이기도 하다”며 “장기적인 사업을 바라봐야 하는 SK㈜ 주주로서의 종합적 판단이 이뤄지지 못했다”고 했다.앞서 글로벌 의결권 자문기관인 ISS와 글래스루이스는 “이번 합병으로 SK이노베이션이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마련할 수 있다”며 합병에 찬성을 권고했다. SK이노베이션의 정유업계 재무 리스크를 SK E&S의 가스 사업으로 ‘헤징(위험 회피)’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SK그룹의 사업 재편은 다방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중요한 의사결정”이라며 “단기적인 차익을 위해 반대를 결정한 것 아닌지 우려된다”고 전했다.
SK이노베이션은 주주들과의 소통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SK이노베이션은 자사 홈페이지와 네이버 포털 등에 ‘SK이노베이션-SK E&S 합병’ 사이트를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이 채널을 통해 합병으로 인한 시너지, 일반 주주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 등을 공개하고 있다.
류병화/성상훈 기자 hwahw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