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E&S 합병 제동거는 국민연금

주총서 반대 의결권 행사키로

국민연금 "SK이노 주주가치 훼손"

업계 "기업 성장성 무시한 결정
SK㈜ 주주로서 종합적 판단해야"
ISS·외국계 큰손은 합병에 찬성
▶마켓인사이트 8월 22일 오후 4시 43분

국민연금공단이 SK이노베이션과 SK E&S 합병에 반대표를 던지기로 했다. 2대주주인 국민연금이 제동을 걸면서 SK의 사업 재편이 안갯속에 놓였다. 하지만 투자업계에선 “기업의 장기 성장성을 외면한 근시안적 판단”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책위)는 22일 제10차 위원회를 열고 오는 27일 SK이노베이션 임시 주주총회에서 반대 의결권을 행사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국민연금 수책위는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관련 주요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기구다. 국민연금은 지난 6월 말 기준 SK이노베이션 지분 6.21%를 보유한 2대주주다.

SK이노베이션은 소액주주를 고려해 합병 비율을 산정했다는 입장이지만 국민연금은 반발하는 분위기다. SK이노베이션과 SK E&S 간 합병은 1 대 2 비율로 이뤄질 것이란 예상을 깨고 1 대 1.1917417로 산정됐다. SK그룹이 SK이노베이션 주주의 반발을 의식해 예상보다 SK E&S 가치를 낮춰 합병 비율을 산정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주주가치 훼손 우려가 크다고 주장했다. 수책위 내에서는 상장회사인 SK이노베이션의 주주가치가 비상장사인 SK E&S와의 합병으로 인해 희석될 수 있다는 게 주된 반대 사유로 꼽혔다. 국내 의결권자문사 서스틴베스트도 이 합병 비율이 SK이노베이션 일반 주주에게 불리하다며 기관투자가에 합병 반대를 권고한 바 있다.국민연금의 제동으로 다른 기관투자가도 반대 의결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커졌다. 국민연금의 판단을 추종하는 기관이 적지 않아서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반대하면 다른 기관투자가도 따라서 의결권을 행사하게 된다”며 “주총에서 해외 투자자의 표심을 잡는 게 관건일 것”이라고 전했다.

국민연금의 반대는 단순 의결권 행사뿐만 아니라 주식매수청구권에도 영향을 준다. SK이노베이션 주주들은 27일부터 다음달 19일까지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 SK이노베이션이 설정한 가격(11만1943원)보다 주가가 낮으면 국민연금도 매수청구권을 행사하게 된다. 국민연금이 보유 주식을 모두 청구하면 약 6650억원에 달하는 금액을 SK이노베이션이 마련해야 한다. SK이노베이션은 청구권에 대응하기 위해 8000억원을 마련하기로 했다. 이를 초과하면 합병이 무산될 수 있다.

운용업계에선 수책위의 이번 결정에 대해 “SK그룹 주요 계열사의 주주로서가 아니라 SK이노베이션의 단기 주주 관점에서 사안을 바라본 것”이라고 지적했다. 운용업계 한 대표는 “국민연금은 SK이노베이션의 모기업인 SK㈜의 지분 7.44%를 보유한 주주이기도 하다”며 “장기적인 사업을 바라봐야 하는 SK㈜ 주주로서의 종합적 판단이 이뤄지지 못했다”고 했다.앞서 글로벌 의결권 자문기관인 ISS와 글래스루이스는 “이번 합병으로 SK이노베이션이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마련할 수 있다”며 합병에 찬성을 권고했다. SK이노베이션의 정유업계 재무 리스크를 SK E&S의 가스 사업으로 ‘헤징(위험 회피)’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SK그룹의 사업 재편은 다방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중요한 의사결정”이라며 “단기적인 차익을 위해 반대를 결정한 것 아닌지 우려된다”고 전했다.

SK이노베이션은 주주들과의 소통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SK이노베이션은 자사 홈페이지와 네이버 포털 등에 ‘SK이노베이션-SK E&S 합병’ 사이트를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이 채널을 통해 합병으로 인한 시너지, 일반 주주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 등을 공개하고 있다.

류병화/성상훈 기자 hwahw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