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상상적 경합'으로 본 시청역 역주행

상상임신은 말 그대로 상상 속의 임신이다. 법률 용어인 상상적 경합(想像的 競合)도 상상임신처럼 실제 경합이 아닌데 경합처럼 보이는 것을 말한다. 독일 대륙법 용어를 그대로 가져오면 관념적 경합(Idealkonkurrenz)이라고 번역하는 게 원래 뜻에 더 가깝다.

관념 속에나 있을 법한 상상적 경합이 ‘시청역 역주행’ 사건 때문에 재소환됐다. 지난달 2일 서울 시청역 근처에서 14명의 사상자를 낸 운전자 차모씨가 구속기소되면서다. 검찰은 차씨에게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를 적용했다. 문제는 이 법의 최고형이 ‘5년 이하 금고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그친다는 점이다.이렇게 된 이유는 형법 40조가 규정한 상상적 경합에 있다. 상상적 경합은 하나의 행위가 여러 죄에 해당할 때 처벌 조항을 적용하는 논리다. 어떤 처벌을 내릴 것이냐를 놓고 경합하는 듯하지만 답은 정해져 있다. 가장 무거운 형벌을 규정한 죄에 대해서만 처벌한다. 이번 사건처럼 도로 역주행이라는 하나의 행동으로 도로교통법과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을 위반했지만 더 중한 처벌조항이 있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만 적용한다.

반론도 있다. 사고 운전자의 행위를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으로 볼 수 있어서다. 차씨는 당시 인도에 있던 보행자 12명을 친 뒤 승용차 2대를 잇달아 들이받았다. 여러 행위로 복수의 죗값을 물을 수 있다면 상상적 경합이 아니라 실체적 경합으로 바뀐다. 실체적 경합이 되면 가중처벌을 받는다. 이번 사고엔 가장 무거운 죗값으로 정해진 형의 2분의 1까지 가중할 수 있다. 5년 금고형에 2분의 1이 더해져 7년6개월형으로 법정 최고형이 올라간다.

여전히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다는 지적이 있다. 9명을 사망하게 한 죗값치고 약하다는 얘기다. 특례법을 제정해서라도 엄벌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지만 반대도 많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때도 다중인명사고 가해자에게 최대 100년까지 선고할 수 있는 특례법 입법이 추진됐으나 결과만 놓고 처벌한다는 반대 의견에 부딪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번엔 엄벌해야 한다는 법 감정과 과잉 처벌이라는 경계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까.

정인설 논설위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