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은 알지도, 열지도 못했던 비상구…'안전 실종' 아리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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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비상구, '정규직'만 열 수 있어…대피로와 반대로 열리기도
불법파견된 근로자들, 비상구 존재조차 몰라…"얼마나 위험한지 몰랐을 것"노동자 23명의 목숨을 앗아간 경기 화성시 일차전지업체 아리셀 화재 사고는 군납 비리와 무리한 제조공정 등 외에도 '총체적인 안전관리 부실'로 빚어진 참사로 드러났다.비상구는 제대로 설치되지 않았고, 심지어 일부 비상구는 출입증을 소지한 '정규직'만 출입할 수 있었다.
불법으로 파견돼 현장에 투입된 근로자들은 비상구가 어디인지, 자신들이 어떤 위험에 노출됐는지도 몰랐다.
이는 결국 20명이 넘는 생명을 앗아간 비극으로 이어졌다.◇ 대피로와 반대로 열리는 비상구…'정규직'만 열 수 있는 곳도
23일 경기남부경찰청과 고용노동부 경기지청의 수사현황 브리핑에선 지난 6월 24일 화재가 발생한 아리셀 공장이 사실상 '안전 공백' 상태였음을 보여줬다.
위험물질을 취급하는 아리셀에선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과 산업안전보건기준 등에 따라 적정한 비상구가 설치돼야 하고, 근로자들에게 안전교육이 실시돼야 하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경찰에 따르면 이번 화재 발생 장소에서는 총 3개의 출입문을 통과해야 비상구에 도달할 수 있는데, 일부는 피난 방향이 아닌 발화부 방향으로 열리도록 돼 있었다.또 비상구는 항상 열려 있어야 하지만, 일부 문에는 보안장치가 설치돼 있어 아이디 카드를 소지한 '정규직'만 출입할 수 있었다.
다만 대부분 비정규직이었던 이번 화재 희생자들의 경우 아이디 카드가 없어 탈출을 못한 상황은 아니었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경찰 관계자는 "당시 오전 10시 30분 3초에 최초 폭발이 발생하고 10시 30분 40초에 마지막으로 대피한 사람이 확인된다"며 희생자들은 탈출 시도 흔적 없이 고립돼 사망했다고 설명했다.그러면서 "발화지점에서 양쪽 비상구까지 60m, 23m뿐이라 이 골든타임 37초 동안 누군가 대피 안내만 했었어도 상당수 희생자를 구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노동부가 이번 화재가 발생한 3동을 제외한 아리셀 공장 나머지 10개 동에 대해 벌인 산업안전보건 특별감독에서도 비상구 부적정 설치와 안전교육 미실시 등 65건의 법 위반 사항이 확인됐다.
노동부는 아리셀의 총체적인 안전 부실에 경영책임자인 박순관 대표의 책임이 있다고 보고 산안법과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외에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도 함께 적용했다.
2022년 1월 처음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업장에서 근로자 사망 등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사고 예방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업주·경영책임자를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하는 법이다.
노동부는 이전에도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해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한 사례가 몇 차례 있지만 발부된 적은 없어서, 이번에 박 대표가 구속되면 첫 사례가 된다.◇ '불법파견'도 사실로…비상구 어딨는지도 교육 못 받아
노동당국의 조사에선 불법파견 혐의도 인정됐다.
이번 사고로 사망한 23명 중 20명은 비정규직으로, 인력공급업체 소속이었다.
아리셀은 인력공급업체와 도급 계약 형태로 근로자를 공급 받았는데, 노동당국은 아리셀이 사실상 이들 근로자에게 지휘·명령을 한 것으로 보고 도급이 아닌 '파견'이라고 결론지었다.
파견법에 따르면 근로자 파견사업을 하려면 일정 조건을 갖춰 노동부 장관의 허가를 받아야 하며, 파견 업종은 "제조업의 직접생산공정업무를 제외하고 전문지식·기술·경험 또는 업무의 성질 등을 고려하여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업무"로 제한돼 있다.
아리셀에 인력을 보낸 메이셀과 전신 한신다이아의 경우 파견사업 허가업체가 아닌 데다, 근로자들이 종사한 검수·포장 업무도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업무여서 명백한 불법이다.
이 같은 불법파견도 참사 피해를 키운 요소였다.
파견 근로자들은 제대로 된 안전교육을 받기는커녕 비상구가 어디인지도 몰랐고, 자신들이 얼마나 위험한 공정에 투입됐는지도 알지 못했다.
경찰은 "인력공급업체를 통한 근로자 채용과 작업내용 변경 시마다 사고발생 시 긴급조치 및 대피요령 등에 관한 교육이 이뤄져야 하지만, 이뤄지지 않았다"며 "메이셀 근로자 대다수는 비상구의 존재조차 인지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실제로 화재 당시 3동 2층엔 정규직 근로자 20명과 비정규직 23명이 있었는데, 사망자 23명 중 20명이 비정규직이었다.
사고 현장에 있던 비정규직 근로자 중 단지 3명만 생존한 것이다.
경찰은 희생자들에 대해 "이분들은 얼마나 위험한지 (상황을) 알지 못했다"고 했고, 노동부 관계자도 "폭발이 발생하면 대피해야 한다는 경각심이 없다 보니 한자리에 있다가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노동부의 이번 파견법 조사 과정에서는 근로자 321명에 대한 임금체불도 확인됐다.아울러 아리셀이 2022년 발생한 하청업체 근로자 손가락 부상을 산업재해로 처리하는 대신 합의금을 주고 은폐한 사실도 확인됐다.
/연합뉴스
불법파견된 근로자들, 비상구 존재조차 몰라…"얼마나 위험한지 몰랐을 것"노동자 23명의 목숨을 앗아간 경기 화성시 일차전지업체 아리셀 화재 사고는 군납 비리와 무리한 제조공정 등 외에도 '총체적인 안전관리 부실'로 빚어진 참사로 드러났다.비상구는 제대로 설치되지 않았고, 심지어 일부 비상구는 출입증을 소지한 '정규직'만 출입할 수 있었다.
불법으로 파견돼 현장에 투입된 근로자들은 비상구가 어디인지, 자신들이 어떤 위험에 노출됐는지도 몰랐다.
이는 결국 20명이 넘는 생명을 앗아간 비극으로 이어졌다.◇ 대피로와 반대로 열리는 비상구…'정규직'만 열 수 있는 곳도
23일 경기남부경찰청과 고용노동부 경기지청의 수사현황 브리핑에선 지난 6월 24일 화재가 발생한 아리셀 공장이 사실상 '안전 공백' 상태였음을 보여줬다.
위험물질을 취급하는 아리셀에선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과 산업안전보건기준 등에 따라 적정한 비상구가 설치돼야 하고, 근로자들에게 안전교육이 실시돼야 하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경찰에 따르면 이번 화재 발생 장소에서는 총 3개의 출입문을 통과해야 비상구에 도달할 수 있는데, 일부는 피난 방향이 아닌 발화부 방향으로 열리도록 돼 있었다.또 비상구는 항상 열려 있어야 하지만, 일부 문에는 보안장치가 설치돼 있어 아이디 카드를 소지한 '정규직'만 출입할 수 있었다.
다만 대부분 비정규직이었던 이번 화재 희생자들의 경우 아이디 카드가 없어 탈출을 못한 상황은 아니었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경찰 관계자는 "당시 오전 10시 30분 3초에 최초 폭발이 발생하고 10시 30분 40초에 마지막으로 대피한 사람이 확인된다"며 희생자들은 탈출 시도 흔적 없이 고립돼 사망했다고 설명했다.그러면서 "발화지점에서 양쪽 비상구까지 60m, 23m뿐이라 이 골든타임 37초 동안 누군가 대피 안내만 했었어도 상당수 희생자를 구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노동부가 이번 화재가 발생한 3동을 제외한 아리셀 공장 나머지 10개 동에 대해 벌인 산업안전보건 특별감독에서도 비상구 부적정 설치와 안전교육 미실시 등 65건의 법 위반 사항이 확인됐다.
노동부는 아리셀의 총체적인 안전 부실에 경영책임자인 박순관 대표의 책임이 있다고 보고 산안법과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외에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도 함께 적용했다.
2022년 1월 처음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업장에서 근로자 사망 등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사고 예방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업주·경영책임자를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하는 법이다.
노동부는 이전에도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해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한 사례가 몇 차례 있지만 발부된 적은 없어서, 이번에 박 대표가 구속되면 첫 사례가 된다.◇ '불법파견'도 사실로…비상구 어딨는지도 교육 못 받아
노동당국의 조사에선 불법파견 혐의도 인정됐다.
이번 사고로 사망한 23명 중 20명은 비정규직으로, 인력공급업체 소속이었다.
아리셀은 인력공급업체와 도급 계약 형태로 근로자를 공급 받았는데, 노동당국은 아리셀이 사실상 이들 근로자에게 지휘·명령을 한 것으로 보고 도급이 아닌 '파견'이라고 결론지었다.
파견법에 따르면 근로자 파견사업을 하려면 일정 조건을 갖춰 노동부 장관의 허가를 받아야 하며, 파견 업종은 "제조업의 직접생산공정업무를 제외하고 전문지식·기술·경험 또는 업무의 성질 등을 고려하여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업무"로 제한돼 있다.
아리셀에 인력을 보낸 메이셀과 전신 한신다이아의 경우 파견사업 허가업체가 아닌 데다, 근로자들이 종사한 검수·포장 업무도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업무여서 명백한 불법이다.
이 같은 불법파견도 참사 피해를 키운 요소였다.
파견 근로자들은 제대로 된 안전교육을 받기는커녕 비상구가 어디인지도 몰랐고, 자신들이 얼마나 위험한 공정에 투입됐는지도 알지 못했다.
경찰은 "인력공급업체를 통한 근로자 채용과 작업내용 변경 시마다 사고발생 시 긴급조치 및 대피요령 등에 관한 교육이 이뤄져야 하지만, 이뤄지지 않았다"며 "메이셀 근로자 대다수는 비상구의 존재조차 인지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실제로 화재 당시 3동 2층엔 정규직 근로자 20명과 비정규직 23명이 있었는데, 사망자 23명 중 20명이 비정규직이었다.
사고 현장에 있던 비정규직 근로자 중 단지 3명만 생존한 것이다.
경찰은 희생자들에 대해 "이분들은 얼마나 위험한지 (상황을) 알지 못했다"고 했고, 노동부 관계자도 "폭발이 발생하면 대피해야 한다는 경각심이 없다 보니 한자리에 있다가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노동부의 이번 파견법 조사 과정에서는 근로자 321명에 대한 임금체불도 확인됐다.아울러 아리셀이 2022년 발생한 하청업체 근로자 손가락 부상을 산업재해로 처리하는 대신 합의금을 주고 은폐한 사실도 확인됐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