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공방(漢詩工房)] 날마다 좋은 날, 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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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날마다 좋은 날

임보

비가 온다 하면
파전 거리 장만하고날이 갠다 하면
낚싯대 손질하고

바람 분다 하면
처마 끝에 풍경 달고

눈이 온다 하면
유리창 닦아 놓고[태헌의 한역]
日日是好日(일일시호일)

欲雨卽備葱煎材(욕우즉비총전재)
將晴先修釣魚竿(장청선수조어간)
告風簷端掛風磬(고풍첨단괘풍경)
報雪拭窓除汚斑(보설식창제오반)

[주석]
* 日日(일일) : 날마다. / 是好日(시호일) : 좋은 날이다.
* 欲雨(욕우) : 비가 오려고 하다. / 卽(즉) : 곧바로. 한역(漢譯)의 편의를 위하여 원시에는 없는 말을 역자가 임의로 보탠 것이다. / 備(비) : ~을 갖추다, ~을 마련하다. / 葱煎材(총전재) : 파전 재료, 파전 거리.
* 將晴(장청) : <장차> 날이 개려고 하다. / 先(선) : 먼저. 한역의 편의를 위하여 원시에는 없는 말을 역자가 임의로 보탠 것이다. / 修(수) : ~을 수리하다, ~을 손질하다. / 釣魚竿(조어간) : 낚싯대.
* 告風(고풍) : 바람을 알리다, 바람이 불 것이라고 알리다. / 簷端(첨단) : 처마 끝. / 掛(괘) : ~을 걸다, ~을 달다. / 風磬(풍경) : 풍경.
* 報雪(보설) : 눈을 알리다, 눈이 내릴 것이라고 알리다. / 拭窓(식창) : 창을 닦다. / 除(제) : ~을 제거하다, ~을 없애다. / 汚斑(오반) : 얼룩. ※ “拭窓除汚斑(식창제오반)”은 창을 닦아 얼룩 없앤다는 뜻인데, 원시의 “유리창 닦아 놓고”를 역자가 임의로 번역한 것이다.[한역의 직역]
날마다 좋은 날

비가 오려고 하면 파전 거리 장만하고
날이 개려고 하면 미리 낚싯대 손질하고
바람 분다 하면 처마 끝에 풍경 달고
눈이 온다 하면 창 닦아 얼룩 없애고

[한역노트]
역자는 애초에 시(詩)도 시지만, 시의 내용을 귀결시킨 시의 제목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시의 제목 '날마다 좋은 날'의 한역(漢譯)에 해당하는 '日日是好日'은 ≪운문광진선사광록(雲門匡眞禪師廣錄)≫이라는 불교 관련 서적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설령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우리가 심심찮게 사용하고 있는 우리말인 '날마다 좋은 날'을 굳이 불교와 결부시킬 필요는 없을 듯하다. '日日是好日'을 전혀 모르고도 '날마다 좋은 날'을 누구나, 또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상호(商號)로 사용하는 예도 있고, 기독교계에서도 사용하기도 한다는 사실은 그러한 측면을 잘 뒷받침해주고 있는 셈이다.

역자는 이 칼럼을 준비하면서 '日日是好日'에 대해 좀 더 깊이 조사해보고자 이리저리 검색하는 과정에서 아래와 같은 글귀를 우연히 마주하게 되었다.

日日是好日(일일시호일) 날마다 좋은 날
時時是好時(시시시호시) 때마다 좋은 때
人人是好人(인인시호인) 사람마다 좋은 사람
事事是好事(사사시호사) 일마다 좋은 일

역자가 다각도로 확인해본 결과, 전체 네 구절 가운데 아래 세 구절은 어느 한 사람이 특정 시기에 마음먹고 작성한 것이 아니라, '日日是好日'이라는 이 한 구절에 몇 사람의 패러디가 더해져 마침내 완성된 일종의 집체창작(集體創作)이었다. 그 옛날의 민요와 비슷한 방식으로 만들어진 이 네 구절은 한 편의 시로 보아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이 구절들이 들려주는 말처럼 우리가 맞이하는 날이 늘 좋은 날이고, 보내는 때가 늘 좋은 때이며, 만나는 사람이 늘 좋은 사람이고, 하는 일이 늘 좋은 일이라면, 무엇이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있겠는가! 현실 세계에서 그럴 수만 있다면,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지상(地上)이 천국(天國)이나 천당(天堂)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천상(天上)의 세계가 실제로 지상에서 구현되도록 할 수도 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역자는 그것은 재력(財力)이나 기술(技術)이 아니라 마음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얘기하자면, 마음 하나만으로도 얼마든지 '날마다 좋은 날'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뜻이다. 역자의 애창곡 가운데 <너와 나의 고향>이라는 오래된 대중가요가 하나 있는데, 그 노랫말에 “미워도 한 세상 좋아도 한 세상, 마음을 달래며 웃으며 살리라.”고 한 대목이 보인다. 어떤 세상에서 살던 마음을 잘 달래며 웃으면서 살겠다는 뜻의 이 노랫말은 결국 우리에게 '마음 다스리기'라는 화두를 던져준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시인은 이 시의 주제로 볼 수도 있을 '마음 다스리기'라는 문제와 관련하여, 생각하기에 따라 싫어할 수도 있는 것으로는 ‘기상(氣象) 조건’을 얘기하였고, 그럴 경우 마음을 다스릴 방도(方途)로는 본인이 좋아하는 ‘할 일’을 거론하였다. 당연한 얘기지만 시인이 언급한 몇 가지 기상 조건은 그 일례(一例)로 든 것에 불과하다. 그에 따른 할 일 역시 마찬가지로 이해된다. 어쨌거나 시인과 같은 입장을 견지한다면 그 어떤 악조건 속이라도 할 일은 있는 법이고, 그 일을 통해 얼마간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면 마침내 마음을 다스릴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꼭 어떤 ‘할 일’이 있어야만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생각의 전환만으로도 마음을 다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짚신 장수와 나막신 장수 아들을 둔 어느 어머니가 날마다 걱정을 하다가 날마다 즐거워할 수 있게 된 것이 생각의 전환 때문이라는 사실은, 우리가 이미 충분할 정도로 익혀온 것이다.

시인이 이 시에서 거론한 파전과 낚시와 풍경(風磬) 소리와 깨끗한 유리창이 누군가에게는 별것이 아닐 수 있어도, 시인에게는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다. 자신을 즐겁게 해줄 수 있는 것들로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어떤 일을 하는 도중이나 일을 마친 후에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면, 누구나 웃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즐거움을 느껴 웃을 수 있는 날이라면 그날이 바로 좋은 날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웃으며 살자”를 다소 거칠게나마 이 시가 제시한 화두로 이해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정작 우리가 웃을 수 있으려면 우리의 마음이 긍정적인 생각으로 채워져 있어야 한다. 부정적인 생각 속에서는 맑은 웃음이 만들어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가령 몇 사람이 무리를 지어 한여름 땡볕 아래서 길을 걷다가 각자의 생수를 반쯤 마셨다고 가정해보자. 이 순간에 보이는 반응들이 저마다 똑같지는 않아, 생수가 반 밖에 안 남았다고 하는 자도 있을 것이고, 생수가 아직 반이나 남았다고 하는 자도 있을 것이다. 긍정적으로 생각한 후자의 마음이, 적어도 전자의 마음보다는 여유가 있을 것임은 자명하다. 웃음은 바로 이런 여유 속에서 피는 꽃이다. 누구나 동의할 수 있겠지만 긍정적인 생각들이 쌓인 “마음의 힘”은 실로 막강하다.

'마음의 힘'은, 만사(萬事)는 마음 먹기에 달렸다는 뜻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불교계의 오래된 화두에서도 확인된다. 짚신 장수와 나막신 장수의 어머니가 내보인 걱정도 즐거움도 기실 이 마음이 만들어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날마다 좋은 날'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 마음을 다스려야 할 것이고, 그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긍정의 힘'을 깊이 긍정해야 할 것이다.

역자는 4연 8행으로 이루어진 원시를 4구의 칠언고시로 한역하였다. 이 과정에서 일부 구에서는 원시에는 없는 말을 임의로 보태기도 하였고, 일부 구에서는 원시를 약간 변형시켜 한역하기도 하였다. 짝수 구마다 압운하였으므로 이 시의 압운자는 ‘竿(간)’과 ‘斑(반)’이 된다.

2024. 8. 27.<한경닷컴 The Lifeist> 강성위(hansh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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