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떠난 남편 선물인데"…반려 식물 열풍에 요즘 뜨는 곳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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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집사'와 함께 우는 이들"반려 식물 병원까지 직접 찾아오신 분들은 살리려는 의지가 2~3배는 강한 분들이죠. 이분들한테 식물은 가족 이상의 의미일 수 있어요."
서울 은평구 '반려 식물 클리닉' 직접 가보니
식집사와 울고 웃는 '식물 의사' 전문 치료사들
"끝까지 살리고 싶은 마음…가슴 짠한 사연도"
26일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반려 식물 클리닉'. 말 그대로 식물의 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식물 전용 병원이다. 4년 차 반려 식물 치료사 김은희(48) 씨는 병원 한쪽에 마련된 선반 위에 '입원' 중인 반려 식물을 가리키며 이같이 말했다.이곳에서 일하는 치료사들은 식물을 가족처럼 여기는 이른바 '식집사'(식물과 집사의 합성어)들에게는 '식물 의사'로 통한다. 이들은 식집사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죽어가는' 반려 식물을 살리는 일을 한다.
김 치료사는 "여기 들어온 식물들을 '아이들'이라고 부른다"며 "가만히 보고 있으면 꼭 나한테 말을 거는 것 같다. 어디가 아프고, 지금 열심히 낫고 있다고 전하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반려 식물을 통해 감정적 위로와 성장하는 재미를 느끼는 '식집사'가 늘면서 반려 식물 '전용 병원'을 찾는 이들도 부쩍 늘었다. 이에 따라 치료와 입원을 담당하는 식물 치료사들 역시 밀려드는 방문객을 맞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식물 치료사 문현숙(67) 씨는 "예약자가 하루에 3~4명 정도다. 예약 없이 무작정 반려 식물을 들고 오신 분들도 있지만 차마 돌려보낼 수 없어 모두 봐 드린다"며 "특히 봄엔 30분 단위 예약 시간이 온종일 꽉 찰 정도로 정신이 없다"고 했다.
"손 떨던 식집사와 함께 울었다"…'식물 의사'가 뭐길래
지난해 4월부터 운영 중인 은평구 반려 식물 클리닉엔 밀려드는 반려 식물 치료를 담당하는 9명의 식물 전문 치료사가 근무 중이다. 일부 치료사는 이곳에서 상주하고, 일부 치료사는 본업과 병행하며 담당 요일에만 출근한다.이들은 단순히 취미로 꽃과 식물을 좋아하는 정도의 수준은 넘어선 이들이다. 도시 농업 전문화 과정을 밟고, '식물 보호 기사' 등 각종 자격증을 갖춰 치료사로 채용됐다.치료사들은 클리닉을 찾은 식집사의 반려 식물을 진찰하고 직접 치료한다. 당장 치료가 어려워 병원에 입원한 식물의 상태를 수시로 점검하고 완치해 '퇴원시키는 것'까지가 이들의 역할이다.
이날 오전에도 두 명의 예약자가 자신의 반려 식물을 가지고 클리닉을 방문했다. 식집사인 40대 최 씨는 8~9월에 붉은 열매가 달리는 쌍떡잎식물 '산호수'의 진찰을 맡겼다. 그는 "줄기 일부가 화분을 나와 바닥을 길 정도로 과하게 길어졌고, 열매 색도 이상하다"며 "요즘 이것 키우는 재미로 사는 데 불안하다"고 토로했다.식물 상태를 진단한 김 치료사는 "반려 식물을 키우는 공간의 온도 등 여러 요인에 따라 줄기가 길어질 수 있어 큰 문제는 아니다"라며 능숙하게 줄기 몇 가닥을 잘라냈다. 이어 "열매 역시 아직 여물지 않은 것이고 수분 상태도 양호하다"며 "일단 오늘 분갈이를 한 뒤 상태를 지켜보자"고 최 씨를 안심시켰다.다양한 이들이 클리닉을 찾다 보니 가슴이 찡한 사연도 있다. 김 치료사는 지난주 관엽식물인 '칼라데아 진저' 치료를 의뢰한 40대 여성 식집사를 떠올렸다.
그는 "남편이 이 반려 식물을 선물하고 3일 후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남편 영혼이 깃들었다고 생각한 식물이 말라가자 놀라서 클리닉을 찾아오셨다"며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펑펑 우시는 모습을 보고 같이 울었다"고 회상했다.
이들은 각양각생 식집사들의 사연을 알기에 더욱 열정을 갖고 임한다. 반려 식물을 살리기 위해 클리닉을 방문한 이들에게 실망감을 주지 않겠다는 사명감이 생긴다는 것.
안타까운 것은 많은 식집사들이 식물이 회생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태에 이르러서야 클리닉을 방문한다는 것이다. 진단 결과가 심각할 경우 병원 내 온실에서 며칠간 식물 상태를 점검하는 '입원 치료'까지 강행하지만, 회생을 장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문 치료사는 "현재도 20여개 이상의 반려 식물이 병원에 입원해있다"며 "최대한 노력하지만, 80%는 살리기 어려운 상태다. 그럴 땐 정말 가슴이 찢어진다"고 했다.
그는 "과습이나 건조한 상태 모두 뿌리 문제므로 앞만 봐선 그 원인을 정확히 모른다"며 "일단 병원에 가지고 와 정확한 집단을 받아봐야 한다"고 부연했다.
"정서적 교감 필요한 현대인…반려 식물 열풍 지속될 것"
반려 식물 문화는 급속히 확산하고 있다. 한국발명진흥회 지식재산평가센터에 따르면 국내 실내 농업 관련 시장 규모는 2021년 1216억원에서 매년 연평균 75% 성장하고 있다. 오는 2026년엔 규모가 1조7519억원에 달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서울시는 이러한 수요에 맞춰 종로·동대문·은평·양천·광진구에 전문 치료사가 상주하는 반려 식물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반려 식물을 키우는 문화가 본격적으로 퍼지자 시작한 사업으로, 인기가 높아 올해 하반기엔 영등포 등 4개소를 추가로 열 예정이다.
서주봉 은평 반려 식물 클리닉 센터장은 "반려 식물에 대한 관심이 큰 만큼 '전문 병원'도 전문성을 갖추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높은 수요에 맞춰 비정기적으로 '찾아가는 클리닉'도 운영하는 데 반응이 아주 좋다. 앞으로도 의미 있는 역할을 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1인 가구가 점차 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외로움 등 부정적인 감정을 반려 식물을 통해 해소하려는 소비문화가 자리 잡은 상황"이라며 "특히 식물은 빠르게 크는 것이 눈에 보일뿐더러 반려동물보다 키우기도 쉽다. 정서적인 교감에 대한 욕구가 줄어들지 않는 이상 반려 식물 열풍은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성진우 한경닷컴 기자 politpe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