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향해 걸어나가는 찰리와 '찰리들'에게 축복을

[arte] 최승연의 뮤지컬 인물 열전

뮤지컬
찰리, 자신의 두 발로 서서 세상을 향해 돌진하다

뮤지컬 <비밀의 화원>이 2023년 초연 이후 1년 만에 재연으로 돌아왔다. 원작은 보통 아동소설로 이해되는 프랜시스 버넷의 동명 소설(1911)이다. 하지만 뮤지컬은 아동극으로 다뤄지지 않는다. 대신, 각색의 범위를 넓혀 수용자의 연령대를 폭넓게 확장했다.
뮤지컬 '비밀의 화원'(2024) 공연 장면 / 사진. ⓒ국립정동극장
각색에는 전략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뮤지컬 <비밀의 화원>은 매우 명민하다. 무엇보다 공연의 ‘본질’을 놓치지 않는다. 뮤지컬은 ‘성장과 치유’라는 테마를 말하기 위해 ‘놀이성’을 확대했다. 극의 배경은 1950년대 영국 요크셔의 성 안토니오 보육원이며, 이 보육원에서 살고 있는 에이미, 비글, 찰리, 데보라의 이야기를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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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은 이들이 보육원을 떠나기 며칠 전, 그러니까 이들의 후원자가 결정되는 마지막 오픈 데이를 앞둔 시점에서 시작된다. 불투명한 미래를 향해 떠나야 하는 네 명의 아이들은 마지막으로 연극 놀이를 하고, 낡은 소설책 <비밀의 화원>은 이들에 의해 다시 살아 움직인다.그런데 1950년대 영국의 보육원이라니, 아무래도 참신한 소재는 아니다. <비밀의 화원>은 이미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로 제작된 적이 있으며(1991), ‘보육원’ 또는 ‘입양된 아이들’이라는 소재 역시 뮤지컬로 간혹 다뤄졌다. 19세기 영국 보육원과 고아를 다루는 뮤지컬 <올리버>(1960), 화재 사건에 연루된 입양된 아이들의 이야기인 한국 뮤지컬 <블랙 메리 포핀스>(2012)가 대표적이다.

고아가 주인공인 <애니>(1977), <키다리 아저씨>(2012)도 있다. 스릴러 장르인 <블랙 메리 포핀스>를 제외하면 고아가 후원자를 만나 해피엔딩을 이룬다는 공통점을 보인다.
뮤지컬 '비밀의 화원'(2024) 공연 장면 / 사진. ⓒ국립정동극장
최종병기 찰리하지만 뮤지컬 <비밀의 화원>은 좀 다르다. 일단 공연은 클리셰를 향해 걸어가지 않는다. ‘고아는 후원자로 인해 구원된다’는 공식을 의도적으로 피한다는 측면에서 그렇다. 마치 최종병기처럼 활용되는 인물 ‘찰리’가 핵심이다.

찰리는 예상되는 해피엔딩의 흐름을 굴절시키고 작품의 주제를 담는다. 공연 초반부터 찰리는 아이들과 함께 있지만 다른 정서와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는 연극 놀이가 유치하다며 싫어했다. 친구들은 곧 뿔뿔이 헤어져야 한다는 상황을 안타까워하고 그래서 연극 놀이에 더 열정을 보이지만 찰리는 그들을 모두 외면한다. 한 가지 특이한 건, 그가 놀이하는 친구들을 곁에서 지켜보고 친구들 역시 그런 찰리를 의식한다는 것이다. 특히 에이미와 데보라는 찰리가 연극 놀이에 참여하도록 여러 번 독려하기까지 한다.

조금 다르게 말하면, <비밀의 화원>은 ‘찰리의 냉담함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법하다. 사실 찰리는 그 누구보다도 활기차고 긍정적인 아이였으니 말이다. 과거 <비밀의 화원>을 가장 처음 읽은 사람도, 비밀 연극 놀이를 제안한 사람도 찰리였다. 심지어 찰리는 소설 속 울새 모형을 만든 장본인이었다. 친구들은 찰리의 제안을 따라, 고아라서 배제되고 무시될 때마다 연극 놀이를 하며 ‘마법’과 같은 위로를 받았다.
뮤지컬 '비밀의 화원'(2024) 공연 장면 / 사진. ⓒ국립정동극장
콜린으로부터 벗어나기

하지만 정작 찰리는 곧 마법을 의심하고 믿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연극 놀이에 냉담한 부정적인 아이로 변한다. 이러한 변화는 그가 구원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버리면서 찾아온다. 반복되는 후원 불발로 찰리가 갖게 된 ‘고아 의식’은 자신의 현재를 객관화하고 낭만적 삶의 허위를 보게 만든다. 이로써 ‘보육원의 착한 아이’였던 찰리는 오픈 데이를 망치는 ‘자존심 강한 나쁜 아이’가 된다.

이제 <비밀의 화원>은 찰리를 통해 진짜 해피엔딩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그것은 바로 찰리와 아이들이 자기 삶을 책임질 수 있는 방법을 깨닫는 것이다. 타인에게 전적으로 의지함으로써 구원받는다는 ‘마법’ 대신, 거절에 익숙해짐으로써 삶을 용기로 채우는 진짜 ‘마법’이 이들을 성장시킬 것이라는 믿음이 펼쳐진다.

공연은 이를 놀이로 해결한다. 다시 연극 놀이에 참여하게 된 찰리가 ‘자신을 믿고 스스로 일어서는’ 콜린을 연기함으로써 진짜 해피엔딩을 향한다는 메타성이 공연을 절묘하게 만든다.
뮤지컬 '비밀의 화원'(2024) 공연 장면 / 사진. ⓒ국립정동극장
콜린을 통해 주체화에 한 발짝 다가간 찰리의 모습은 보편적인 울림을 갖는다. 콜린은 외부의 힘으로 내면화된 찰리의 의존적 자아로 해석될 수 있다. 비록 ‘할 수 있다’라는 가사의 반복이 공연의 정서적 층위를 과도하게 자극하지만, 자신 안의 콜린을 극복하고 단단한 모습으로 성장하는 찰리는 <비밀의 화원>의 미덕을 잘 보여주는 인물임이 틀림없다. 세상을 향해 두 발을 내딛는 찰리(들)에게 큰 축복이 있기를.
뮤지컬 '비밀의 화원'(2024) 공연 장면 / 사진. ⓒ국립정동극장
최승연 뮤지컬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