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산부인과가 중절수술 영업하는 씁쓸한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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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 위헌 후 병원이 낙태 홍보“저출생으로 경영난을 겪는 지방 산부인과들이 낙태로 영업을 확장하는 것 같다.”
국회가 조속한 대체 입법 나서야
조철오 사회부 기자
‘36주 낙태’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은 산부인과 의사가 신생아 수준의 태아를 죽인 배경을 이렇게 분석했다. 경찰은 36주 태아 낙태 경험담을 유튜브에 올린 20대 임신부와 낙태 수술을 해준 인천 A산부인과 70대 의사 등을 살인 혐의로 지난달 입건했다.수사 초기 경찰은 영상 조작을 의심했다. 설마 의사 면허를 내걸고 살인 행위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본 것. 그러나 수사 결과 사실로 드러나며 충격을 줬다.
낙태 시장은 이미 양지로 올라온 상태다. 취재 과정에서 다수의 브로커를 쉽게 만날 수 있었다. 브로커는 ‘임신 10주 100만원…1주 지날 때마다 수술비가 10만원씩 오른다’는 식으로 값을 흥정했다. ‘원치 않은 임신’ ‘중절 상담’ 등 오픈 채팅방에선 매일 수백 개의 문의가 쏟아진다. 상담자는 주로 10대 청소년과 20대 남녀였다.
만삭 임신부의 낙태 상담도 적지 않다. A산부인과는 ‘임신 30주 이상’ 낙태 홍보 글을 온라인에 수시로 게재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방은 물론 수도권 병원까지 합세해 임신 말기 낙태 수술 홍보에 열을 올렸다.낙태가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한 것은 헌법재판소가 낙태죄를 폐지한 2019년 4월부터다. 이후 장기간 입법 부재, 법원의 잇따른 무죄 판결 등 영향으로 상당수 산부인과가 낙태로 사업 영역을 넓혔다.
유례없는 저출생 현상도 병원의 낙태 호객 행위를 부추긴 꼴이 됐다. 2015년 1.24명이던 합계출산율은 최근 0.6명까지 추락했다. 출생아 수는 2013년 43만6600명에서 지난해 22만9970명으로 반토막 났다. 분만병원은 2022년 470곳으로 20년 전인 2003년(1371곳)에 비해 65.8% 급감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의사는 “병원이 망할 바엔 낙태 수술이라도 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위기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헌재는 당초 국회에 2020년 말까지 대체 입법을 할 것을 주문했지만 여전히 감감무소식이다. 어느 주령의 태아까지 생명으로 볼 것인지를 놓고 의견이 갈리고 있다. 지난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6건의 법안에 따르면 임신 14주, 임신 24주, 전면 허용 등으로 다양하다. 국회가 눈치싸움에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노력을 경시하면서 후속 입법은 지지부진하다. 국회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무분별한 낙태를 막기 위한 입법 노력에 나서주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