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칸 채우기식' 이력서 그만…한 줄만 써도 붙는 스펙 따로있다

2024 JOB 리포트
빽빽한 이력서는 옛말…스펙 다이어트 시대

'빈칸 채우기식' 이력서 그만
한 줄만 써도 붙는 스펙 따로있다

이력서에 빈칸 불안한 취준생
경력 쌓을 시간에 봉사·공모전
인사담당자들 "채용 도움 안돼"

다양한 활동보다 전문성 중요
지원 직무 연관된 활동·자격증
상세하게 써내 역량 보여줘야
취업준비생이 기업 입사지원서에서 요구하는 스펙을 채우느라 진땀을 빼고 있지만 정작 채용 여부를 판가름하는 스펙은 따로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른바 ‘스펙 미스매치’로, 좁은 취업문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오버(over)스펙’이 아니라 ‘온(on)스펙’ 전략을 잘 활용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일각에서는 취준생이 불필요한 스펙을 쌓지 않도록 기업들이 입사지원서 항목을 줄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래픽=전희성 기자

취준생들 “이력서 빈칸 불안해”

최근 한 대기업 입사를 지원한 대학생 A씨는 입사지원서를 처음 봤을 때 한숨이 절로 나왔다. 대학 생활 중 쌓은 스펙만으론 입사지원서 빈칸을 채워 넣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A씨는 “이력서에 있는 항목을 빈칸으로 제출하면서 많이 불안했다”며 “내가 인사담당자라고 해도 내용이 좀 더 많은 지원자의 서류가 눈에 띌 것 같다”고 말했다.

재단법인 교육의봄이 지난 2~5월 매출 기준 상위 1000대 기업 중 150곳의 입사지원서를 분석한 결과 출신학교, 외국어 점수, 자격증, 학점 등 전통적으로 중시하던 스펙 외에도 공모전 포함 수상 이력, 봉사활동 경험 등을 요구하는 곳이 10곳 중 6~7곳에 달했다. 해외 경험 항목이 있는 기업도 40%가 넘었다.

특히 수상 이력과 학내·외 활동을 요구하는 기업 비중이 70%에 달해 과거보다 크게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2014년 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 조사에선 기업 10곳 중 1~3곳만 해당 스펙을 요구했었다.당장 전문성을 길러야 할 시간에 불필요한 스펙을 쌓느라 시간과 비용을 낭비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선희 교육의봄 연구팀장은 “대기업일수록 스펙을 강조하는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난다”며 “취준생으로선 입사지원서에 있는 항목 모두를 다 준비해야 된다고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봉사·수상 업무엔 도움 안 돼”

입사지원서 항목은 빼곡하지만 기업들이 해당 스펙을 모두 중요하게 보는 것도 아니다. 지난 6월 교육의봄이 취준생·인사담당자 각 50명을 대상으로 채용에 영향을 주는 스펙을 물은 결과, 취준생의 96%는 수상 이력이 채용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인사담당자는 42%만 수상 이력이 중요하다고 했다. 대내외 활동도 취준생은 76%가 ‘영향이 있다’고 봤고, 인사담당자는 30%만 동의했다.

취업에 성공한 재직자의 인식도 인사담당자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5월 코멘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재직자는 업무에 가장 필요한 스펙으로 자격증(83.4%)과 인턴 경험(81.3%)을 꼽았다. 영어 성적(40%), 수상 이력(25.3%), 봉사활동(12.5%)이 도움이 된다는 응답은 많지 않았다.오버스펙 대신 온스펙 전략으로 취업에 성공한 사례도 늘고 있다. 올해 금융 대기업에 입사한 B씨는 취업 준비 기간에 공모전이나 봉사활동에는 전혀 시간을 투자하지 않았다. 유일한 대외 활동은 금융 관련 동아리 생활이었고, 자격증도 투자자산운용사, 재경관리사, 국내·국제 재무위험관리사(FRM) 등 금융 관련 자격증 취득에 집중했다.

대외 활동은 다양한 분야가 아니라 직무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활동을 상세히 기술하는 것도 전략이다. 정보기술(IT)기업 10여 곳에 이력서를 냈으나 번번이 고배를 마신 C씨는 최근 이력서를 수정하고 효과를 톡톡히 봤다. 유명 IT기업에 입사한 C씨는 “입사지원서 항목을 다 채우지 못했지만 직무 관련 동아리 활동 경력을 매우 상세하게 썼다”며 “이력서를 수정하자마자 합격 연락을 준 곳이 현 직장”이라고 했다.

“입사지원서 항목 줄이자” 캠페인도

기업 인사담당자들은 입사지원서를 빼곡하게 채우는 것보다 직무와 관련 있는 역량을 보여주는 게 합격 열쇠라고 입을 모은다. 한 중견기업 인사담당자는 “예전부터 써왔던 입사지원서 양식을 쓰고 있어 정작 1차적으로 서류를 걸러낼 땐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항목도 있다”고 말했다.정량적 지표로 파악하기 어려운 자질은 자기소개서를 통해 강조할 필요가 있다. 김동현 티오더 HR 총괄은 “대기업, 스타트업 상관없이 (채용) 트렌드가 많이 변했다”며 “예전엔 필요한 요건이 규격화돼 프로파일처럼 나왔지만 요즘엔 사업도, 외부 환경도 변하고 있어 규격화되지 않은 것들 속에서 나타나는 역량과 자질이 더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기업 입사지원서 항목을 간소화하자는 ‘스펙 다이어트’ 캠페인도 벌어지고 있다. 취준생은 스펙 쌓기 부담을 덜고 기업도 직무 역량에 집중한 인재를 채용하자는 취지다. 캠페인을 주도하고 있는 교육의봄은 올해 기업 100곳의 참여를 끌어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현재 스펙 다이어트 캠페인에 동참한 기업은 한솔홀딩스 한솔홈데코 한솔제지 한솔로지스틱스 고운세상코스메틱 한국신용데이터 티오더 등이다.

김대영 한경닷컴 기자■ 잡리포트 취재팀

백승현 좋은일터연구소장·경제부 부장
곽용희 경제부 기자·이슬기 경제부 기자
권용훈 사회부 기자·김대영 한경닷컴 기자 kd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