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를 숨기기 위해 억지로 결혼한 차이콥스키 [WSJ 서평]

차이콥스키의 제국(Tchaikovsky's Empire)
사이먼 모리슨 지음
예일대 출판부
368쪽│35달러
러시아를 대표하는 작곡가 중 하나인 차이콥스키는 마치 드라마와 같이 극적인 인생을 살았다. 그는 알코올 중독과 불면증, 우울증 등에 시달렸고, 공식적으론 이성애자였지만 실제로는 동성애자인 것으로 알려졌다. 혐오와 차별의 시대에 구설에 오르는 것을 피하기 위해 한 결혼 생활 역시 불행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 프린스턴대의 음악학자 사이먼 모리슨이 쓴 <차이콥스키의 제국>은 차이콥스키의 극적인 인생보다 음악 자체에 초점을 맞춘 전기다. 통상적으로 예술가 개인의 비극적인 삶으로부터 예술이 나온다는 인식과 달리, 모리슨은 인생의 폭풍에 휘둘리는 낭만주의 예술가의 전형에 회의적인 시선을 던진다. 저자는 "차이콥스키는 인생의 굴곡과 개인적 위기에 휘둘리지 않도록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며 음악을 만들어 냈다"고 설명한다.▶▶▶[관련 기사] 차이콥스키가 펑펑 울며 작곡한 비창…'음표로 쓴 유서'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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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콥스키는 1840년 러시아의 안락한 중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집안에서 접한 러시아 민속문화와 푸슈킨의 동화는 이후 차이콥스키 오페라의 근간을 형성했다. 공무원이 되기 위해 훈련을 받았던 그는 예술적 재능이 빛을 발하기 시작하자 러시아음악협회에서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안톤 루빈스타인 밑에서 공부했다. 이후 1878년까지 모스크바 음악원의 교수로 일했다.

차이콥스키는 혜성과 같이 등장하지 않았다. 그의 초기 오페라는 실패했고, 처음 두 교향곡도 의미 있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올바른 형식을 찾는 데 다소 어려움을 겪었던 이 젊은 작곡가는 1875년 내놓은 첫 번째 피아노 협주곡을 통해 비로소 천재성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이 곡은 러시아 민족주의의 상징으로 굳어졌고, 20세기 들어 피아니스트 반 클라이번에 의해 다시금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모리슨에 따르면 차이콥스키는 조국에 대해 양가감정을 품고 있었다. 조국은 그를 '러시아적인 모든 것의 상징'으로 여겼고, 차이코프스키는 궁정의 기대에 부응해 제국주의적 웅장함을 극대화한 오페라와 발레 등을 작곡했다.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3세는 차이콥스키의 오페라 '예브게니 오네긴'을 특히나 좋아했다. 하지만 차이콥스키는 동시에 유럽과 미국 등을 오가며 국제적인 삶을 살기도 했다. 심지어 그의 작품 중 몇몇은 프랑스적인 감성을 담고 있다.

차이콥스키의 음악적 유산을 설명하는 핵심은 발레다.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속의 미녀', '호두까기 인형' 등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공연되는 발레 레퍼토리들이다. 차이콥스키는 신고전주의 양식의 드라마틱하고 접근하기 쉬운 곡을 풍성하게 편곡함으로써, 자신의 영웅인 모차르트를 추모했다.

'1812년 서곡'은 차이콥스키의 작품 중 평가가 엇갈리는 곡이다. 이 노래는 1880년 모스크바의 구세주 그리스도 대성당 완공을 기념하기 위해 작곡한 곡이다.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군을 격퇴한 역사를 음악으로 표현한 작품이기도 하다. 차이콥스키는 스스로 이 곡에 대해 '시끄럽다'고 혹평하기도 했다. 모순적이게도 러시아인들은 그의 발레 작품 이상으로 이 곡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각종 국가적 기념 행사나 이벤트, 광고 배경 음악 등에 아직까지 종종 쓰인다. 정리=신연수 기자

이 글은 WSJ에 실린 마이클 오도넬의 서평(2024년 8월 24일) 'Echoes of an Imperial Composer'을 번역·편집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