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녀들이 몰래 들어가 숨은 꽃봉오리… [고두현의 아침 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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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내에 갔다가 돌아오는 둑길에는
이준관
읍내에 갔다가 돌아오는 둑길에는
새떼들도 밟지 않은 저녁놀이 아름답구나.
사과 속에서, 여름의 촌락(村落)들은,
마지막 햇볕을 즐기며 천천히 익어간다.
연한 풀만 가려 뜯어먹던 암소는 새끼를 뱄을까.
암소가 울자
온 들녘이 다정다감한 어머니로 그득하다.
지붕 위에 초승달 뜨고,
오늘 저녁, 딸 없는 집에서는
저 초승달을 데려다가 딸로 삼아도 좋으리라.
게를 잡으러 갔던 아이들은
버얼겋게 발톱까지 게 새끼가 되어 돌아오고,
목책이 낮아,
목책 밖으로 자꾸 뛰쳐나가기만 하던 하늘은
조금씩, 조금씩 어두워져 돌아온다.
처녀들이 몰래 들어가 숨은 꽃봉오리는
오늘 저녁,
푸른 저녁 불빛들에게 시집가도 좋으리라. -----------------------------------번거로운 일상을 잠시 잊고 평화로운 들길을 한번 감상해 볼까요. 이 시를 쓰게 된 배경을 알고 나면 마음이 한결 둥글어질지 모릅니다. 이 아름다운 시의 배경은 뜻밖에도 장인어른의 죽음이었습니다.
“지난 6월 초 건강하던 빙장어른이 갑자기 작고하셨다. 그 빙장어른의 49재가 마침 여름방학과 겹치는 때여서 아예 식구들을 데리고 시골로 갔다. 죽음처럼 슬픈 게 어디 또 있겠는가. 그러나 죽음은 죽은 자의 몫일 뿐, 죽음과 무관하게 세상은 마냥 밝게 빛났다. 산 자의 몫인 생은 여전히 아름답고 활기가 넘쳤다. 아이들은 외할아버지의 죽음에는 아랑곳없이 들녘으로 개구리, 여치, 잠자리를 잡으러 뛰어다녔다. 그들의 녹색으로 빛나는 생 어디에도 깊이 음각된 슬픔은 보이지 않았다.” 시인은 이렇게 말하고는 우리에게 다시 묻습니다. 과연 죽음이 우리의 생과 무관하기만 한 것일까? 죽음이 있기에 우리 생이 더 가치 있고 소중하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그러고는 조곤조곤 답합니다.
“여름 저녁놀은 정말 아름다웠다. 산 자에게만 허락되는 이 축복받은 시간들, 살아 있음의 이 황홀함, 그런 정서적인 울림이 컸기에 여름 저녁은 실제보다 더 곱고 아름다웠으리라. 둑길의 저녁놀, 암소의 느릿한 울음, 조용히 저녁의 열기 속에 휩싸여 있는 여름의 촌락, 낮은 목책들, 지붕 위에 뜬 초승달, 그리고 개펄에 싸라기별이나 드나들 만한 게 구멍을 파고 사는 게 새끼들을 잡아 가지고 오는 아이들의 긴 그림자…. 이런 밑그림들이 이 시를 구성하고 있다.”
시인의 말처럼 ‘어두운 쪽에서 보면 밝은 쪽이 더 선명하게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죽음이나 슬픔 같은 것들을 생각하고 있는 시인에겐 산 자만이 지켜볼 수 있는 생동하는 삶이 더없이 아름답게 보였겠지요. 그러기에 이 시는 더없이 밝은 분위기로 충일해 있습니다. 이 시를 쓰면서 시인은 다시금 생각합니다. 생의 빛나는 부분들을 사랑하며 노래하면서 살아 있음의 기쁨과 환희를 더 즐기고 싶다고. 고통이나 허무, 고뇌, 이런 것들도 우리 삶의 가치로운 부분이지만 그 이상으로 기쁨과 아름다움, 사랑도 소중하기에 더 건강하고 밝은 쪽에 눈길을 주고 그것을 노래하고 싶다고 말입니다.
그는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동시로 등단한 뒤, 1974년 ‘심상’ 신인상 시 부문에도 당선했습니다. 한국동시문학회장을 지낸 이력에서 알 수 있듯이 맑고 투명한 동심을 노래한 작품이 많습니다. 올해 봄에는 시집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로 한국시인협회상을 받았습니다. 동료 시인들이 최고의 시인에게 주는 명예로운 상이지요.
그 시집 표제시에 “나는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주지도 못했고/ 가족들이 건널 다리가 되어주지도 못했다/ 그러나 나는 다리를 건널 때면/ 성자의 발에 입을 맞추듯/ 무릎을 꿇고 다리에 입을 맞춘다/ 아직도 험한 세상 다리가 되고 싶은/ 꿈이 남아 있기에”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이처럼 그는 ‘성자의 발에 입을 맞추듯/ 무릎을 꿇고 다리에 입을 맞추’는 자세로 시를 씁니다. 내친김에 ‘여름밤’이라는 맑은 시 한 편을 더 감상해 봅니다. 여름밤
여름밤은 아름답구나.
여름밤은 뜬눈으로 지새우자.
아들아, 내가 이야기를 하마.
무릎 사이에 얼굴을 꼭 끼고 가까이 오라.
하늘의 저 많은 별들이
우리들을 그냥 잠들도록 놓아주지 않는구나.
나뭇잎에 진 한낮의 태양이
회중전등을 켜고 우리들의 추억을
깜짝깜짝 깨워놓는구나.
아들아, 세상에 대하여 궁금한 것이 많은
너는 밤새 물어라.
저 별들이 아름다운 대답이 되어줄 것이다.
아들아, 가까이 오라.
네 열 손가락에 달을 달아주마.
달이 시들면
손가락을 펴서 하늘가에 달을 뿌려라.
여름밤은 아름답구나.
짧은 여름밤이 다 가기 전에(그래, 아름다운 것은 짧은 법!)
뜬눈으로
눈이 빨개지도록 아름다움을 보자.
■ 고두현 시인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오래된 길이 돌아서서 나를 바라볼 때』 등 출간. 김달진문학상, 유심작품상 등 수상.
이준관
읍내에 갔다가 돌아오는 둑길에는
새떼들도 밟지 않은 저녁놀이 아름답구나.
사과 속에서, 여름의 촌락(村落)들은,
마지막 햇볕을 즐기며 천천히 익어간다.
연한 풀만 가려 뜯어먹던 암소는 새끼를 뱄을까.
암소가 울자
온 들녘이 다정다감한 어머니로 그득하다.
지붕 위에 초승달 뜨고,
오늘 저녁, 딸 없는 집에서는
저 초승달을 데려다가 딸로 삼아도 좋으리라.
게를 잡으러 갔던 아이들은
버얼겋게 발톱까지 게 새끼가 되어 돌아오고,
목책이 낮아,
목책 밖으로 자꾸 뛰쳐나가기만 하던 하늘은
조금씩, 조금씩 어두워져 돌아온다.
처녀들이 몰래 들어가 숨은 꽃봉오리는
오늘 저녁,
푸른 저녁 불빛들에게 시집가도 좋으리라. -----------------------------------번거로운 일상을 잠시 잊고 평화로운 들길을 한번 감상해 볼까요. 이 시를 쓰게 된 배경을 알고 나면 마음이 한결 둥글어질지 모릅니다. 이 아름다운 시의 배경은 뜻밖에도 장인어른의 죽음이었습니다.
“지난 6월 초 건강하던 빙장어른이 갑자기 작고하셨다. 그 빙장어른의 49재가 마침 여름방학과 겹치는 때여서 아예 식구들을 데리고 시골로 갔다. 죽음처럼 슬픈 게 어디 또 있겠는가. 그러나 죽음은 죽은 자의 몫일 뿐, 죽음과 무관하게 세상은 마냥 밝게 빛났다. 산 자의 몫인 생은 여전히 아름답고 활기가 넘쳤다. 아이들은 외할아버지의 죽음에는 아랑곳없이 들녘으로 개구리, 여치, 잠자리를 잡으러 뛰어다녔다. 그들의 녹색으로 빛나는 생 어디에도 깊이 음각된 슬픔은 보이지 않았다.” 시인은 이렇게 말하고는 우리에게 다시 묻습니다. 과연 죽음이 우리의 생과 무관하기만 한 것일까? 죽음이 있기에 우리 생이 더 가치 있고 소중하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그러고는 조곤조곤 답합니다.
“여름 저녁놀은 정말 아름다웠다. 산 자에게만 허락되는 이 축복받은 시간들, 살아 있음의 이 황홀함, 그런 정서적인 울림이 컸기에 여름 저녁은 실제보다 더 곱고 아름다웠으리라. 둑길의 저녁놀, 암소의 느릿한 울음, 조용히 저녁의 열기 속에 휩싸여 있는 여름의 촌락, 낮은 목책들, 지붕 위에 뜬 초승달, 그리고 개펄에 싸라기별이나 드나들 만한 게 구멍을 파고 사는 게 새끼들을 잡아 가지고 오는 아이들의 긴 그림자…. 이런 밑그림들이 이 시를 구성하고 있다.”
시인의 말처럼 ‘어두운 쪽에서 보면 밝은 쪽이 더 선명하게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죽음이나 슬픔 같은 것들을 생각하고 있는 시인에겐 산 자만이 지켜볼 수 있는 생동하는 삶이 더없이 아름답게 보였겠지요. 그러기에 이 시는 더없이 밝은 분위기로 충일해 있습니다. 이 시를 쓰면서 시인은 다시금 생각합니다. 생의 빛나는 부분들을 사랑하며 노래하면서 살아 있음의 기쁨과 환희를 더 즐기고 싶다고. 고통이나 허무, 고뇌, 이런 것들도 우리 삶의 가치로운 부분이지만 그 이상으로 기쁨과 아름다움, 사랑도 소중하기에 더 건강하고 밝은 쪽에 눈길을 주고 그것을 노래하고 싶다고 말입니다.
그는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동시로 등단한 뒤, 1974년 ‘심상’ 신인상 시 부문에도 당선했습니다. 한국동시문학회장을 지낸 이력에서 알 수 있듯이 맑고 투명한 동심을 노래한 작품이 많습니다. 올해 봄에는 시집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로 한국시인협회상을 받았습니다. 동료 시인들이 최고의 시인에게 주는 명예로운 상이지요.
그 시집 표제시에 “나는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주지도 못했고/ 가족들이 건널 다리가 되어주지도 못했다/ 그러나 나는 다리를 건널 때면/ 성자의 발에 입을 맞추듯/ 무릎을 꿇고 다리에 입을 맞춘다/ 아직도 험한 세상 다리가 되고 싶은/ 꿈이 남아 있기에”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이처럼 그는 ‘성자의 발에 입을 맞추듯/ 무릎을 꿇고 다리에 입을 맞추’는 자세로 시를 씁니다. 내친김에 ‘여름밤’이라는 맑은 시 한 편을 더 감상해 봅니다. 여름밤
여름밤은 아름답구나.
여름밤은 뜬눈으로 지새우자.
아들아, 내가 이야기를 하마.
무릎 사이에 얼굴을 꼭 끼고 가까이 오라.
하늘의 저 많은 별들이
우리들을 그냥 잠들도록 놓아주지 않는구나.
나뭇잎에 진 한낮의 태양이
회중전등을 켜고 우리들의 추억을
깜짝깜짝 깨워놓는구나.
아들아, 세상에 대하여 궁금한 것이 많은
너는 밤새 물어라.
저 별들이 아름다운 대답이 되어줄 것이다.
아들아, 가까이 오라.
네 열 손가락에 달을 달아주마.
달이 시들면
손가락을 펴서 하늘가에 달을 뿌려라.
여름밤은 아름답구나.
짧은 여름밤이 다 가기 전에(그래, 아름다운 것은 짧은 법!)
뜬눈으로
눈이 빨개지도록 아름다움을 보자.
■ 고두현 시인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오래된 길이 돌아서서 나를 바라볼 때』 등 출간. 김달진문학상, 유심작품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