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자재마트, 골목상권 새 강자로 뜨자…전통시장 "여기도 규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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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 반사이익'…식자재마트 빅3, 10년새 매출 4배로“삼겹살 100g에 100원, 선착순!”
일요일인 지난 25일 인천 십정동 세계로마트24 간석점에서는 미끼 상품을 내세운 호객행위가 한창이었다. 인근 대형마트의 의무휴업일인 이날 식자재마트에서는 ‘100원 삼겹살’은 물론 소불고기 세 근(한 근 600g)을 1만원도 안 되는 가격에 팔았다. 120대 규모의 주차장이 오전부터 가득 차 도로 한편을 대기 차량들이 메웠다. 길 건너 홈플러스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프랜차이즈형 식자재마트가 대형마트 규제의 반사이익을 보며 골목상권을 휘어잡고 있다. 소상공인 입김으로 만들어진 규제가 새로운 골목상권 ‘공룡’을 탄생시켰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통시장을 살리겠다는 정부의 대형마트 규제가 예상치 못한 풍선효과를 낳자 상인들은 식자재마트도 규제 대상에 넣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 규제 사각에서 급팽창한 식자재마트
30일 인천 부평구의 한 대표 식자재마트에서 계란(특란) 한 판 가격은 4980원으로 인근 대형마트(6990원)와 전통시장(7500원)보다 훨씬 저렴했다. 국내산 생삼겹살 한 근 정가도 1만800원으로 각각 2만2500원, 1만5000원인 대형마트와 전통시장보다 쌌다.식자재마트는 이 같은 ‘미끼 상품’ 전략으로 소비자를 끌어들이고 있다. 식자재마트 관계자는 “원래 식자재마트는 중소기업 잡화와 자영업자 대상 농산물이 주력이었는데 사세가 커지다 보니 일반 소비자에게도 매우 저렴한 가격에 농산물을 팔게 됐다”고 했다.대형마트와 달리 ‘규제 무풍지대’에 있는 것도 식자재마트가 급성장한 배경이다. 대형마트에 적용되는 의무휴업과 출점 입지 규제 등은 이들에는 남의 일이다. 정부가 소상공인과의 상생 명분으로 2010년 전통시장 반경 1㎞ 이내엔 3000㎡ 이상 마트 출점을 제한했고, 2012년엔 대형마트에 월 2회 휴업을 의무화했지만 식자재마트는 적용 대상이 아니다.
영업시간도 장점이다. 현행법상 밤 12시부터 오전 10시까지 영업이 금지된 대형마트와 달리 식자재마트는 ‘24시간’ ‘연중무휴’로 영업할 수 있다. 인천 가좌동 주민 김평수 씨(66)는 “바로 앞에 홈플러스가 있지만 식자재마트가 주차도 편리하고, 물건도 싸서 1년 전부터 애용하고 있다”고 했다.인천 주요 지역에선 식자재마트가 사실상 상권을 장악했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석바위시장, 축산물도매시장, 열우물전통시장 반경 1㎞ 이내에만 대형 식자재마트 다섯 곳이 영업 중이고, 이달 초 부평역 인근에도 프랜차이즈 매장이 들어섰다.
폐점한 대형마트 자리에 식자재마트가 들어서기도 한다. 2018년 홈플러스 동김해점과 2021년 롯데마트 구리점이 폐점하자 빈자리를 식자재마트가 채웠다.
○ 식자재마트도 규제하라는 시장 상인들
전통시장 상인들은 ‘식자재마트와 가격 경쟁이 되지 않는다’며 규제를 촉구하고 있다. 작년 4월 인천 부평구에선 세계로마트 새 매장 개점을 놓고 이를 반대하는 상인들의 시위가 수차례 열렸다. 이들은 “세계로마트가 3000㎡ 입점 제한 규제를 피하려 ‘쪼개기 개점’을 추진한다”고 주장했다. 이병관 열우물전통시장 상인회장은 “인근 전통시장 점포들이 식자재마트 입점 이후 매출이 반토막 났다는 얘기가 파다하다”고 전했다.충북 제천, 경남 밀양, 대구 등에서도 식자재마트가 들어서 ‘골목상권을 침해한다’는 논란이 일었지만, 현행법상 규제할 근거가 없어 유야무야됐다.
전문가들은 식자재마트를 규제한다고 전통시장이 되살아날 가능성이 크지 않은 만큼 전통시장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게 우선이라고 지적한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식자재마트가 번성한 것은 동네 구멍가게와 슈퍼가 사라지면서 대형화하고, 경쟁력을 갖춰 시장에서 살아남은 결과”라며 “이런 곳을 건드리면 또 다른 탁상행정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안정훈/김다빈 기자 ajh632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