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프리즘] 용산 "아쉽다"가 더 아쉬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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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 독립성 침해' 논란 불러김중수 전 한국은행 총재의 별명은 ‘동결 중수’였다. 4년 재임하는 동안 기준금리를 마흔 번 동결하고 여덟 번만 조정해 붙여진 별명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 전까지 역대 최장기간 동결 기록 보유자였다. 그렇다고 그의 성격이 우유부단한 것은 아니다. 김 전 총재는 “금리 동결도 중요한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부동산 안정이 인하 선결 조건
서정환 부국장
2013년 4월 청와대 경제·금융상황점검회의(서별관 회의) 불참은 그의 진면목을 제대로 보여준 사례다. 글로벌 경기 회복 지연으로 수출이 둔화하고 내수도 얼어붙을 때였다.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해 정부·청와대 인사들은 금리 인하를 강하게 압박했다. 그는 “중요한 시기에 중앙은행 총재는 중앙은행에 있어야 한다”며 회의에 빠졌다. 그 다음주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는 6개월 연속 동결을 결정했다. 한 달 뒤 금리를 내렸지만 기자간담회에서는 “통화정책 결정은 독립적으로 이뤄져야 하며 정부 요구에 따라 움직이는 게 아니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지난달 금통위는 기준금리를 현 수준인 연 3.5%로 동결했다. 작년 2월부터 13회 연속 동결이며 횟수와 기간에서 최장이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내수 진작 측면에서 보면 아쉬움이 있다”고 했다. 금통위의 고유 권한이라는 전제를 달았지만 ‘한은이 뭐 하고 있냐’는 불만 섞인 말이다.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금리 인하 환경이 조성돼 있다”며 군불을 지펴온 터라 더욱 그렇다. 다음날 중앙은행 독립성 침해 논란에는 “오히려 독립성이 있으니까 결정이 나오고 나서 뒤늦게 아쉽다는 입장 표명을 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한은은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을 목적으로 통화신용정책을 수행한다고 법에 명시하고 있다. 경기 둔화 조짐에도 금리를 내릴 수 없었던 건 부동산시장 과열로 인한 금융 불안 우려 때문이란 해석이 많다. 서울 아파트 가격은 23주 연속 상승했다. 5대 시중은행 주택담보대출은 지난달에만 8조8700억원 급증했다. 두 달 연속 월간 최대 증가폭이다. 이런 상황을 초래한 책임은 정부와 금융당국에 있다. 아파트 공급 대책은 신뢰를 얻지 못했고 불안한 국민은 부랴부랴 ‘영끌’에 나섰다. 무주택자를 위한 디딤돌대출, 버팀목대출 등 저금리 정책상품은 ‘빚내서 집 사라’고 부채질했다.
과거에도 한은과 정부·정치권은 통화정책을 놓고 이따금 충돌했다. 기재부가 주로 “인하하라”고 선제공격했다. 고환율 정책 신봉자인 강만수 전 기재부 장관이 2008년 그랬고 2015년 최경환 전 장관도 마찬가지였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때는 홍남기 당시 장관이 금리를 내리라고 한은을 압박했다. 강 전 장관은 최근 인터뷰에서 “금리 결정은 정부의 고유 권한”이라며 “금통위에 권한을 위임했지만 한은법 92조2항은 ‘최종적으로 대통령이 결정한다’고 규정했다”고 했다. 악법도 법이니 따라야 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이 조항은 중앙은행 독립성을 침해할 소지가 있어 한은법 개정 얘기가 나올 때마다 1순위로 거론되는 조항 중 하나다. 윤석열 대통령의 인생 책 <선택할 자유>에서도 ‘독립적인 중앙은행이 통화정책을 정치적 목적으로 오용하는 것을 막는 최고의 보호 수단이다’라고 적고 있다.
정부는 불필요한 입장 표명으로 독립성 침해 논란을 자초하기에 앞서 부동산시장 과열을 잡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보다 더 강력한 무언의 압력은 없다. 대통령실 발언이 훗날 혹시나 있을 경기 침체의 책임을 한은에 떠넘기기 위한 구실을 만들려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