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르익은 계절을 여행하다, 영주

영주, 가을의 여유와 풍요를 알리는 축제의 도시
가을의 영주는 어느 때보다 풍요롭다. 넘실대는 황금물결 위로 더없이 높은 하늘이 펼쳐지고, 산야에 흐드러진 오곡백과가 손짓한다. 깊어지는 계절을 맞은 이들의 마음은 한껏 여유롭다. 이맘때의 영주가 축제로 들썩이는 이유다. 느긋함과 결실의 축복이 가득한 도시, 영주의 가을에 안길 시간이다.
부석사 무량수전 동쪽 3층 석탑 앞에서 내려다본 풍경. 사진=도진영

가을옷 갈아입는 천년고찰

희미하게 남은 여름의 푸릇함에 가을빛이 들기 시작했다. 길 양옆에 정답게 도열한 은행나무가 반겨주는 이곳은 영주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석사다. 매년 늦가을이면 일주문에서 천왕문에 이르기까지 500m 남짓한 은행나무 길에 단풍의 향연이 펼쳐진다. 은행잎이 황금비처럼 쏟아지고, 노란 양탄자가 소복이 깔린 길이 마치 극락세계로 향하는 듯하다.
계단식으로 지어진 천년고찰 부석사. 사진=도진영
부석사는 해발 1000m에 이르는 산세를 두르고 계단식으로 지어졌다. 여러 차례 계단을 오르다 보면 사찰 내에서 가장 전망 좋은 안양루에 닿는다. ‘안양(安養)’이 곧 ‘극락(極樂)’을 의미하니, 현존하는 극락에 닿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조 건축물로 손꼽히는 무량수전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한층 특별하다. 한 폭의 수묵화 같은 산세가 너울대고 어깨를 나란히 한 경내 건물이 단아한 아름다움을 더한다. 국보 5점, 보물 8점, 경상북도 지정문화유산 2점 등 수많은 국가 유산을 보유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발 닿는 곳마다 역사적 가치가 흐른다.
높은 당도와 아삭한 식감으로 사랑받는 영주 사과가 무르익고 있다. 사진=도진영
부석사의 은행나무 길 너머 펼쳐진 사과밭에선 영주 사과가 빨갛게 옷을 갈아입는다. 전국 최고의 일조량과 소백산의 깊은 맛을 품은 영주 대표 특산물이다. 오랜 전통을 지닌 영주 사과 축제는 지난해부터 ‘영주장날 농특산물 대축제’로 다시 태어났다. 건강한 영주의 농특산물을 양껏 맛볼 수 있는 축제의 장으로, 가을이 깊어진 11월 초 펼쳐진다.

소백산의 보물

금선정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금계저수지. 산책로를 갖춰 산과 계곡, 호수가 한눈에 담기는 풍광을 감상하며 걷기 제격이다. 사진=도진영
한반도 백두대간에서 뻗어 내려온 줄기가 영주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소백산. 웅장하면서도 수려한 자태를 따라 희방사, 희방폭포, 부석사, 소수서원 등 수많은 명소가 자리한다.관광자원뿐만이 아니다. 소백산 기슭의 풍부한 유기물과 한랭한 기후는 영주의 명물 풍기인삼을 만들어낸다. 1500년의 자생역사와 500여 년의 재배 역사를 자랑하는 풍기인삼은 뛰어난 효능으로 사랑받아 왔다. 조직이 튼실하고 향이 진한 데다 유효 사포닌 함량이 높아 인체의 여러 기능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 왕실에서 풍기인삼만을 고집했다는 기록을 사기에서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품질을 갖췄다. 사진=도진영
가을이면 어김없이 향긋한 인삼 향이 영주를 뒤덮는다. 인삼의 맛과 영양이 절정에 달하는 10월 5~13일, 국내 인삼 재배의 발상지인 풍기읍 일원에서 ‘2024 경북영주 풍기인삼축제’가 열린다. 영양 만점 풍기인삼으로 만든 요리를 맛보고, 양질의 인삼을 합리적인 가격에 구매하고 싶다면 놓치지 말자.

축제 기간이 아니더라도 영주인삼박물관, 풍기인삼시장, 풍기인삼홍삼센터 등 풍기읍 일대에서 지역 농민이 정성껏 재배한 인삼을 언제든 만날 수 있다.
각종 산림치유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국립산림치유원. 사진=도진영
‘비단 물결에 신선이 노니는 곳’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선경을 자랑하는 금선정. 사진=도진영
인근에는 함께 둘러보기 좋은 여행지가 산재했다. 숲속에서 명상·수(水) 치유·아쿠아스파·산책 등 산림치유 프로그램을 체험하며 묵어가기 제격인 국립산림치유원, 기암괴석과 노송, 비단 같은 물결이 어우러진 금선정 등에서 가을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처럼

물 위에 떠 있는 섬, 무섬마을 전경. 사진=도진영
내성천과 영주천이 마을 앞에서 만나 태백산과 소백산 줄기를 끼고 마을의 삼 면을 태극 모양으로 돌아나간다. 꽃봉오리 같은 마을 형세가 마치 물 위의 섬 같다고 해 붙은 이름 수도리(水島里). 우리말로는 무섬마을이다.

100년 역사의 고택 16채를 비롯해 조선 후기 사대부 가옥으로 이루어진 이 마을에는 선비의 고장 영주의 매력이 고스란히 담겼다. 옹기종기 늘어선 고택에서 사진을 남기고, 마을 곳곳의 카페·식당에서 잠시 쉬어가며 조상의 자취와 숨결을 느낄 수 있다.
과거 마을과 바깥세상을 잇는 유일한 길이었던 무섬마을 외나무다리. 사진=도진영
가을볕에 반짝이는 내성천 위로는 길이 150m, 폭 30cm의 외나무다리가 수려한 곡선을 이루고 있다. 1983년 수도교가 놓이기 전까지 300여년간 마을과 외부를 이어주는 유일한 통로였다. 사람 한 명이 겨우 다닐 정도로 좁아 마주 오는 이를 피해 갈 ‘비껴다리’가 곳곳에 놓일 정도지만, 차례를 양보하는 순간마저 낭만으로 다가오는 공간이다. 섬과 육지를 잇는 다리처럼 매년 10월이면 ‘영주 무섬외나무다리축제’가 열려 영주의 과거와 현재를 이어준다.
선비촌 입구를 지키고 선 늠름한 장승들. 꼿꼿한 선비정신을 이어받은 듯하다. 사진=도진영
고매한 선비정신이 서린 명소 중 하나로 영주 선비촌을 빼놓을 수 없다. 조선시대 전통가옥과 공간을 복원한 곳으로, 고즈넉한 옛길을 거닐며 옛 생활상을 체험할 수 있다. 한옥 숙박 체험과 전통문화체험 등을 상시 운영하며, 오는 10월까지 체험 콘텐츠 ‘선비의 하루’를 통해 전통주 주조, 힐링 프로그램, 캠핑 체험 등을 경험할 수 있다.

박소윤 한경매거진 기자 park.so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