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원 받던 냉장고 요즘 30만원"…철거업계 '반쪽짜리 호황'

자영업자 폐업 급증에 철거업계 '창업 러쉬'

경쟁만 치열해지고 매출 부진
신규 개업 감소에 중고 집기 판매 어려워
자영업자는 철거비용 부담에 폐업 망설여
2일 서울 서대문구의 한 폐업한 옷가게. 내, 외부 정리가 안 된 상태로 문만 굳게 닫혀 있다./김다빈 기자
경기침체 장기화로 자영업자 폐업이 늘면서 인테리어 철거, 원상복구, 폐기물 처리 등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가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경영상황은 녹록치 않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폐업업체에서 받은 중고 상품을 구매할 신규 창업자가 생겨나야 하는데, 자영업 신규 창업은 줄고 있어서다.

○자영업자 '줄폐업'에 철거업체 '창업 러쉬'

3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올해 8월까지 새로 등록된 건설폐기물처리업체는 411곳으로, 전년 같은 기간(250곳)에 비해 64.4% 증가했다. 신규 폐기물업체는 2021년 같은 기간엔 200곳, 2022년엔 222곳 등으로 매년 소폭 늘다가, 올들어 더욱 많이 생겨났다. 건설폐기물처리업체란 철거업체와 건설폐기물의 중간처리, 수집, 운반업 등을 포함하는 수치다. 고물가와 경기침체 영향으로 생업을 포기한 자영업자들이 늘면서 철거업계에 진입하는 신규 업체도 늘었다는 분석이다. 올해 서울시 2분기 폐업 점포는 6290개로 지난 1분기(5922개)보다 6.2% 증가했다. 전국적으로도 자영업자 폐업 상황은 심각하다. 국세청 집계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폐업 신고를 한 사업자는 98만6000명으로, 관련 통계를 집계한 2006년 이후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서대문구의 한 골목가에 각종 철거업체 광고 전단이 붙어 있다./김다빈 기자

○신규 개업 감소에 '반쪽짜리 호황'

그러나 철거업계는 오히려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새로운 가게의 개업이 줄어들면서 철거 과정에서 나온 중고 집기들을 판매할 곳이 부족해진 탓이다. 경남 양산에서 철거업체를 운영하는 박모 씨(55)는 "요즘은 새로 여는 가게가 없어 물건이 창고에 쌓이기만 한다"며 "4년 전엔 중고 냉장고를 100만 원에 팔았지만, 지금은 30만 원에 팔리면 다행"이라고 하소연했다.실제로 새롭게 자영업에 뛰어드는 사람은 갈수록 줄고 있다. 국세청 집계 결과 신규 자영업자 수는 2020년 151만9000명에서 △2021년 145만7000명 △2022년 135만1000명 △2023년 127만5000명으로 매년 감소하고 있다.

새 세입자를 구하기 어려울 거라고 예상한 건물주들이 철거를 미루는 일도 적지 않다. 한 철거업계 관계자는 "신규 입점이 안 될 것을 알고 상가를 방치하는 건물주들이 많다”며 “업체를 불러 견적만 내보고 세입자 보증금에서 그만큼 제한 뒤 실제 공사는 진행하지 않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철거비 부담에…"폐업 망설여져요"

폐업을 고민하는 자영업자들에게 철거비가 걸림돌이 될 때도 많다. 서울 서대문구에서 중식당을 운영하는 40대 이모 씨는 "25평 매장에 철거 견적이 900만원 정도 나왔다"며 "당장 돈을 구하기가 어려워 쉽게 폐업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폐업에 드는 평균적인 비용은 1558만원이다. 이 중 폐기비용과 원상복구 비용이 평균 848만원에 달한다. 철거업체들은 '문의는 늘었지만 실제 계약은 적다'고 입을 모은다. 대전에서 철거업체를 운영하는 윤모 씨(32)는 "10건의 문의가 들어오면 실제 철거로 이어지는 것은 많아야 3건"이라며 "자영업자들 대부분 여러 업체에 견적 문의를 넣고 한 군데를 고르는 등 경쟁도 치열해졌다"고 말했다.

김다빈 기자 davinc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