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류업' 100일…금융업 웃고 제조업 울고

공시 이후 업종별 주가 성적

9건 본공시 중 5개 금융사 올라
메리츠·키움, 주주 환원에 탄력
DB하이텍은 지배구조에 '발목'

밸류업 확대…연말 전망 밝아
정부가 올 들어 추진 중인 ‘밸류업(기업 가치 제고) 정책’에 발맞춰 첫 공시가 나온 지 100일째가 됐다. 금융회사를 시작으로 제조업체도 앞다퉈 밸류업 공시를 하고 있지만 주가는 엇갈리고 있다. 주도주가 사라진 장세에서 밸류업 관련주를 향한 관심이 커지고 있어 연말까지 전망은 밝다는 평가가 나온다.

메리츠금융·키움證 ‘레벨업’

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5월 27일 KB금융의 밸류업 예고 공시를 시작으로 이날까지 32건의 공시가 나왔다. 이 중 예고 공시와 이행 현황 공시를 제외하면 총 9건의 본 공시가 있었다. 본 공시 이후 메리츠금융지주(12.11%), 우리금융지주(11.7%), 미래에셋증권(4.14%), 키움증권(8.66%) 등 5개 금융사 주가는 상승했다. 코스닥시장 상장사인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 주가는 32.83% 올라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반도체 위탁생산 업체 DB하이텍(-5.29%)과 현대자동차(-4.04%)는 오히려 주가가 내렸다. 2분기 실적 악재가 겹친 콜마그룹 지주사 콜마홀딩스는 23.49% 폭락했다.

금융사들의 주가 상승은 경쟁적으로 쏟아낸 주주환원책과 발 빠른 실행의 결과라는 분석이 많다. 메리츠금융지주는 3월 5000억원 규모의 자사주 신탁계약을 체결했고, 상반기에 2500억원어치 이상의 자사주를 매입했다. 지난달 26일엔 최고 종가(9만5300원)에 도달하기도 했다. 주가가 최근 한 달에만 15.36% 오른 키움증권도 내년 3월까지 발행주식 총수의 4.1% 상당을 소각할 계획이다. 미래에셋증권도 오는 11월까지 자사주 1000만 주를 매입해 소각하기로 했다.반면 ‘실적 피크아웃’(정점 통과 후 하락)과 원화 가치 상승에 따른 수출 경쟁력 약화 우려 등이 제기된 현대차 등 제조업 상장사들은 공시 초기 상승폭을 모두 반납했다. 지배구조 불안정성이 대두되는 DB하이텍처럼 고질적 문제가 주가 발목을 잡는 사례도 있다.

“밸류업 지수·ETF가 모멘텀”

다만 지난달 말부터 지역난방공사 포스코퓨처엠 LG 등 폭넓은 업종에서 예고 공시가 쏟아지며 밸류업 관련주 자체의 관심이 다시 환기되고 있다. 이들 기업은 공시에 별다른 내용을 포함하지 않았음에도 공시 후 주가가 6.35~13.84% 상승했다. 전체 공시의 59%(19건)가 지난달에 발표됐을 정도로 움직임도 빨라졌다.

증시에 특별히 인기를 끄는 투자처가 사라졌다는 점도 밸류업 관련주를 향한 기대를 키운다. 유명간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이달 상장사 실적 전망치 변화가 대부분 크지 않은 상황”이라며 “11월까지 미국 대선으로 인한 불확실성이 상존하고 있어 자동차, 은행, 보험 등 배당수익률이 높은 밸류업 업종에 우호적 환경이 찾아왔다”고 평가했다.정부가 예고한 정책 발표도 시점마다 주가 상승 동력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한국거래소는 이달 ‘KRX 코리아 밸류업 지수’를 발표할 계획인데, 편입 종목을 중심으로 한 차례 주가 랠리가 펼쳐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증권사들은 현대차와 금융주 등을 편입 종목으로 예상하고 있다. 임상국 KB증권 연구원은 “금리 하락 및 주요 지수 상승 둔화 추세와 맞물려 현대차 키움증권 등이 수혜를 볼 것”이라고 말했다.

이시은 기자 s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