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커제 9단도 못 막았다…'세계 유일' 바둑학과 결국 폐과

“명지대 바둑학과에 진학하려고 바둑고에 입학했는데…갑자기 학부가 사라져 당황스럽네요.”

전남 순천의 한국바둑고에 다니는 3학년 조은진양(19)은 어릴 적부터 유일한 목표였던 ‘바둑학과 진학’이 무산되자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다. 바둑고 재학생 약 40명 중 10~15명이 세계 유일의 명지대 바둑학과로 진학하는데, 명지대는 지난 5월 폐지를 발표 후 당장 내년부터 신입생을 안 받겠다고 밝혔다. 당장 진로를 택해야 하는 조양과 같은 학교의 또래 친구들은 매우 혼란에 빠진 상황이다.‘마인드 스포츠’의 대표인 바둑이 명지대 바둑학과 폐지를 계기로 생태계가 급속도로 무너지는 실정이다. 지난해 아시안게임에서 남자 단체팀이 금메달을 획득하는 등 한국은 세계 바둑강국으로 꼽히지만, 실상은 쇠락의 길로 들어섰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중간 징검다리 역할을 하던 대학의 폐과를 막기 위해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냈지만 기각당하며 업계가 비상에 걸렸다.

◆바둑 중고교도 어렵다 “명맥 이을 수 있나”

4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바둑고는 현 총정원 100명 중 재학생은 70명 정도다. 남은 약 30명은 모집 미달 등 여러 이유로 채우지 못하는 등 최근 몇 년 동안 신입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한국바둑고는 국내 유일의 바둑 특성화 교육기관이다. 중·고교를 함께 운영한다. 프로기사 13명을 배출할 만큼 명실상부 한국 바둑의 산실과도 같다. 명지대 바둑학과와 함께 한국 바둑의 명맥을 잇고 있는 교육기관이다. 그러나 그 징검다리가 사라지면서 당장 내년 신입생 모집에 비상에 걸렸다. 바둑고 관계자는 “보통 명지대 진학을 목표로 입학한다”며 “갑작스럽게 수능 준비로 방향을 튼 아이들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바둑이 젊은 층에 외면당한 현실은 몇 년 전부터 나타났다. 명지대는 경영 악화, 젊은 층 외면, 소비층의 노령화 등 다양한 이유로 지난 3월 폐과를 결정했다. 첫 논의는 2022년에 시작했다. 당시 조훈현, 이창호, 신진서 9단 등 국내 프로기사들과 중국의 커제 9단 등 외국 기사들까지 반대 서명에 동참할 정도로 업계가 화들짝 놀랐다. 남치형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와 학생 등 69명이 “대학 입학전형 시행계획 효력을 정지해달라”며 가처분 신청했지만 지난 7일 서울고등법원에서 항고마저 기각됐다.명지대 바둑학과는 교육·미디어·행정·마케팅 등 바둑 전문가를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운영한다. ‘바둑문화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일선에 보급하자’는 취지로 각종 교육과 연구가 진행하고 했지만, 폐과 결정을 계기로 사실상 ‘올스탑’ 됐다.

◆짧고 자극적인 ‘쇼츠’ 유행…“긴 호흡은 재미없다”

유튜브 등 15초 내외의 짧고 자극적인 영상으로 대표되는 ‘쇼츠’가 유행을 타고 보편화되는 시대로 변하면서 ‘마인드스포츠’의 양상도 달라지는 상황을 맞게 됐다. 같은 아시안게임 종목인 ‘e스포츠’는 산업이 커지는 것과 대조된다. ‘스타크래프트’ ‘롤’ 등 게임 산업이 커지면서 젊은층들의 압도적 관심을 받고 있다.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롤드컵) 결승전이 열린 작년 12월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 거리 응원 행사장이 마련된 모습. /사진=김범준 기자
올해 부산컴퓨터과학고와 부산 대양고의 경우 개설한 e스포츠학과의 첫 신입생 모집했다. 이곳을 포함해 현재 전국에 총 6개의 고등학교가 운영 중이다. 앞으로 개설이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교육청 관계자는 “최근 중고등학교에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e스포츠 학과를 설립하려는 시도를 많이 한다”고 말했다. 대학에서도 오산대, 호남대, 국제대, 신구대 등 전국 대학들도 스포츠학과를 개설한 후 최대 5.39:1 등 높은 경쟁률을 보이는 상황과 대조된다.

바둑 생태계는 약 10년 전부터 ‘국수전’ 폐지를 기점으로 점점 위축돼 갔다. 국수전은 1956년 시작된 한국 최초의 바둑 대회다. 2017년 기아자동차의 후원 중단으로 대회가 폐지됐다. 모든 바둑기사가 참가할 수 있는 대회는 현재 GS칼텍스배 프로기전 등 8개에 불과하다. 전성기 시절인 1980~1990년대 대회는 약 15개 이상과 비교했을 때 대회 수가 반토막 난 것이다. 반면 중국에서는 현재 약 20개의 대회가 해마다 열리는 것과 대조된다.남치형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도 “한국 바둑의 위상 높아 독일, 브라질, 루마니아 등지에서 해외 유학생들이 꾸준히 학교의 문을 두드렸다”며 “한국도 다시 바둑 유행을 타고 활성화될 수 있는 만큼 각종 자구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철오/정희원 기자 top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