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성수품 가격, 2021년보다 낮게 한다더니…데이터 정리도 안해

“2021년 수준으로 관리하겠다”더니
물가당국, 그해 데이터도 별도 정리 안해

농산물 성수품, 마늘 빼고 다 올라
수산물은 ‘기준점’도 없어
"명절 앞두고 여론 의식했나" 비판도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2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올해 추석을 2주 앞둔 시점에서 주요 성수품 가격이 대부분 2021년 동일 시점보다 높게 형성된 것으로 조사됐다. 정부는 “추석 전 3주간 주요 성수품 가격을 '고물가 이전 시기'인 2021년 가격보다 낮은 수준으로 관리하겠다”고 공언했지만, 물가 당국은 당시 가격 데이터를 정리조차 해놓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4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2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추석 민생안정 대책’을 발표하면서 “추석 성수품 가격을 고물가 시기 이전인 2021년보다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겠다”고 약속했다.

농산물 성수품, 마늘 빼고 다 올라

구체적인 물가 기준에 대해 물가 당국인 기획재정부는 “소비자물가지수를 산출할 때 부여되는 가중치에 따라 20대 주요 성수품의 소매가격을 가중평균한 값이 2021년보다 낮도록 관리하겠다는 의미”라며 "관리 기간은 추석 전 3주간"이라고 부연했다. 20대 성수품은 배추, 무, 사과, 배, 양파, 마늘, 감자,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계란, 밤, 대추, 잣, 오징어, 고등어, 명태, 갈치, 조기, 마른 멸치를 말한다. 기재부는 성수품 품목별 가격 기준에 대해 "농산물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유통정보(KAMIS), 임산물은 임산물유통정보시스템, 축산물은 축산물품질평가원 축산유통정보, 수산물은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에서 공시한 자료를 기준으로 삼겠다"고 덧붙였다.

이날 기재부가 제시한 사이트에서 올해 추석 2주 전인 지난 3일 기준 주요 성수품 가격과 2021년 추석 2주 전이었던 9월 7일 가격을 비교한 결과 대부분 품목의 가격이 높았다.
이날 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 유통정보(KAMIS)와 농산물 유통 종합정보시스템 '농넷'에 따르면 농산물 성수품 가운데 배추와 무, 사과, 양파, 감자 가격이 3년 전보다 높았다.

지난 3일 배추(상품) 1포기 가격은 6604원으로, 3년 전 같은 시점이었던 2021년 9월 3일(5437원)보다 21.5% 올랐다. 무(상품) 1개는 3651원으로 3년 전(2062원)보다 77.1% 상승했다. 이들 품목은 지난해 추석 2주전이었던 2023년 9월 15일보다도 가격이 높았다. 올해 초 ‘금(金) 사과’ 논란이 있었던 사과(상품·홍로)는 10개당 2만5715원으로 3년 전(2만4668원)보다 4.2% 상승했다. 배(상품·신고)는 10개당 3만2042원으로 3년 전(3만1141원)보다 약 900원 올랐고, 양파(상품)는 1㎏당 2045원에서 2067원으로 소폭 상승했다. 감자(상품)는 100g당 311원으로 3년 전(306원)과 큰 차이가 없었다. 깐마늘(상품)은 1㎏당 1만274원으로 3년 전(1만2031원)보다 가격이 떨어졌다.추석 차례상에 빠지지 않고 오르는 임산물도 마찬가지였다. 임산물유통정보시스템에 따르면 밤은 1㎏당 8400원으로 3년 전(7800원)보다 7.7% 올랐고, 피잣은 같은 기간 1㎏당 1만7000원에서 6만2450원으로 3.7배 뛰었다.

축산물 가격은 비교적 안정적이었다. 축산물품질평가원 축산유통 정보에 따르면 지난 3일 소고기 가격은 안심(1+등급) 100g당 1만3684원으로 2021년 동일 시점(1만6272원)보다 15.9% 낮았다. 돼지고기도 목심 100g 기준 2444원으로 3년 전(2571원)보다 낮았다. 닭고기는 육계 1㎏당 5927원으로 3년 전(5155원)보다 높았지만, 계란은 특란 30구 기준 6673원으로 3년 전(6598원)과 큰 차이가 없었다.
지난달 30일 서울 양천구의 한 대형마트에서 고객들이 장을 보는 모습. 뉴스1

수산물 성수품은 비교 기준조차 모호해

수산물 성수품 가격은 올해 가격을 2021년과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수산물의 경우 일별 가격 데이터가 별도로 공개되지 않아서다. KMI는 월별로 고등어와 갈치, 오징어, 참조기, 명태, 마른멸치 등 대중성 어종의 소비자가격 동향을 밝히지만, 일별 또는 주별 가격은 공표하지 않는다.

추석 명절을 앞두고 여론을 의식해 무리한 목표를 내세운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 3년간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소매가격을 인위적으로 2021년보다 낮게 관리하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기재부는 이번 추석 민생안정대책을 발표하면서 '2021년 수준'을 명시했지만 실제로는 각 성수품의 당시 소매가격 데이터를 정리조차 해놓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기재부 관계자는 "당시 가격을 별도로 정리하지 않았을 뿐, KAMIS나 임산물유통정보시스템 등 관련 사이트에서 과거 가격자료를 볼 수 있다"며 "수산물 가격 동향은 해수부를 통해 받고 있다"고 말했다.

성수품 품목별로 3년 전 가격과 일일이 비교할 이들이 많지 않은데다, 품목별로도 가격 기준이 많다 보니 안이한 행정을 벌였다는 지적도 나온다. 예를 들어 소고기 중에서도 안심 가격이 2021년보다 높게 형성되더라도, "가격 비교 기준 부위는 '등심'"고 설명하면 비판을 모면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추석 명절을 앞두고 각종 할인 효과가 더해지면 성수품 소매 가격이 2021년보다 낮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이광식 기자 bume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