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중고차는 어디로…'전기차' 사들이더니 벌어진 일

남반구로 몰리는 휘발유 중고차
안전 규정 미비…환경도 양극화 심화
중고차 부품 도난이 대기 오염으로 이어져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선진국을 중심으로 전기차 판매가 늘며 오래된 휘발유 자동차들이 선진국을 떠나 저개발국으로 향하고 있다. 국가 간 중고차 안전 규정이 상이하다 보니 무분별하게 수출된 가솔린 자동차가 결과적으로는 기후 변화 완화 노력을 훼손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유엔환경계획(UNEP)이 지난 6월 발간한 '중고차와 환경'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310만대에 달하는 중고 승용차 및 소형 트럭이 남반구 저개발국가로 수출됐다. 주요 생산지는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한국이다. 2015년~2022년 사이에는 최소 2300만대가 넘는 중고차가 수출됐다. 수출된 중고차의 주요 생산지 중에서는 일본이 34.5%로 1위를 차지했고, 유럽연합(EU)이 31.1%, 미국이 23.9%, 한국이 10.5%를 차지했다.

선진국에서 생산된 중고차들은 저소득 국가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 2017년부터 2022년 사이에 이들 4개국에서 생산된 중고차를 수입한 비중은 아프리카가 33%로 가장 높았다. 중앙아시아 및 동유럽 지역이 24%, 아시아·태평양 지역이 16%, 중동 지역이 15%, 남미지역이 12%로 그 뒤를 이었다. 이달 초 루마니아에서는 8월 한 달 동안 신차 1대가 등록될 때마다 중고차 3대가 수입됐다는 통계가 발표되기도 했다.

선진국에서 밀려난 휘발유 차량이 저소득 국가로 옮겨가고, 선진국은 전기차를 사들이며 전 세계적으로는 '차량 양극화'가 생기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교통포럼은 지난해 12월 발간한 연구보고서에서 "선진국 경제가 전기차로 전환함에 따라 원치 않는 내연기관 차량이 신흥 국가들에 더 많이 수출될 수 있으며, 자국 내 전기차 전환을 막을 수 있다"고 밝혔다.개발도상국들은 오래된 자동차를 수입하면서 오히려 공기 질이 더 악화하고, 결과적으로는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을 낮추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UNEP에 따르면 개발도상국으로 수출되는 대부분의 차량은 매우 노후해 주행 시 위험할 뿐만 아니라 대기 오염을 일으키고, 에너지 효율이 낮다. 또한 국가 간 중고차 거래에서는 안전 수칙을 눈감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OECD 국제교통포럼은 "대부분 국가는 도로 주행이 불가능하거나 오염이 심한 차량의 거래에 상당한 제한을 두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수출국에서 안전 규정을 준수해 수입됐다고 하더라도, 수입국에서 자동차 배기가스 정화 장치인 촉매변환기만을 훔쳐 파는 일도 발생하기도 한다. 현지 매체 아프리카 뉴스 보도에 따르면 아프리카에서 중고차 수입량이 가장 많은 5개국 중 하나인 서아프리카 국가 배냉에서는 촉매변환기 도난을 방지하기 위해 보안경비원이 중고 차량이 판매 단지로 옮겨질 때까지 감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UNEP는 "2020년에는 81개 국가가 중고 수입 차량에 관한 규제 조치가 매우 약했고, 양호한 규제를 시행하고 있는 국가는 47개 국가에 불과했다"면서도 "그 이후로 중고차 규제를 개선한 국가의 수가 눈에 띄게 많아졌다"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12월까지 중고차 규제 조치가 부족한 나라는 57개국에 불과하며, 71개국이 양호한 수준의 규제를 채택하고 있다. UNEP는 "중고차 문제에 대해 수출국과 수입국 모두 공통의 책임을 지고 있다"며 "중고 차량의 품질을 개선하기 위해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세민 기자 unija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