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 시술로 낯설어진 제 몸을 파고들어 안무로 만들었죠"

[인터뷰] 난임시술로 탐구한 몸을 무대로 가져온 안무가 김보라

국립현대무용단
10월 17일부터 19일까지 서울 LG아트센터 공연
안무가 김보라 "신작은 낯선 몸을 탐구하는 여정"
예술가들은 일상의 어떤 것에든 '영감'받아 자신만의 예술로 소화해낸다.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으며 한국 현대무용계를 이끌고 있는 대표 안무가 김보라(42)도 그렇다. 3년전 난임 시술을 받았던 경험을 통해 자신의 신작 '내가 물에서 본 것(what I sense in the matter)'을 발표한다. 13명의 국립현대무용단원들과 함께 호흡을 맞춘 이 작품은 다음달 17일부터 19일까지 서울 마곡동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5일 서울 서초동 연습실을 방문해 미리 살펴본 김보라의 신작은 과거 그가 사회에 던졌던 메시지처럼 커다란 파장을 마음에 남겼다. 무용수들은 서로의 몸을 느끼고 어루만지는 것을 넘어서 살가죽을 잡아당기고 귀와 코를 들추어보는 등 무용이라고 부르기에는 '낯선 움직임'을 이어갔다.
달걀 한 판을 머리에 이고 중심을 잡으면서 날계란을 깨지지 않게 바닥에 굴리는 여러 무용수들 앞에, 한 무용수가 기이한 몸짓으로 무대 위 계란을 빠르게 피하며 뛰어다녔다. 균형과 불균형의 조화가 숨막히게 다가올 무렵 "이런 건 다 필요없다"는 식으로 다른 무용수가 튀어나와 날계란 하나를 집어 던져버린다. 다양한 행위력을 갖는 인간, 비인간의 요소들이 개입되는 보조생식기술의 현장을 빗댄 것처럼 보였다.
인터뷰 중인 안무가 김보라 / 사진 제공. ©국립현대무용단
연습을 마친 안무가 김보라는 "저의 무용은 낯선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이라며 싱긋 웃었다.
공연 제목에 등장하는 단어 물은 마시는 물(water)이 아닌 물질(matter)이라는 의미다. 물성, 그리고 문제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감각을 통해 마주한 물질로서의 몸, 그리고 거기서 오는 문제들을 풀어나가는 과정이 이번 공연의 핵심이다.

"3년 전, 시험관 시술을 경험하면서 제 몸이 생경하게 느껴졌어요. 7살때부터 무용을 했기에 내가 내 몸을 잘 안다고 생각했었는데, 낯선 느낌이 들었죠. 이런 생각의 근원은 무엇인지 파고들고 싶었어요. 안무가로서 몸에 대한 질문을 다시 던져야한다는 사명감도 생겼고요."그는 임신이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몸이 아프지 않으면서도 병원에 가야만 하는 점, 의사들이 경고하는 수많은 부작용의 가능성을 감내해야만 했던 점 등이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줬다고 했다.
"의료 현장에서 여성의 몸은 대체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그러다가 인간의 몸이라는 것이 개인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이르렀어요. 제도적이고 사회적인 것, 그리고 수많은 물질들(이미 임플란트, 철심, 렌즈 등으로)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존재라는 것을요. 안무를 구상할 때도 이 복잡성을 보여주기 위해 무용수들과 많이 대화하고 워크샵도 가졌어요."

무용수들이 안무가의 경험에 공감해줬을까? 그는 외려 지지를 얻었다고 했다. "제작진, 무용수 모두 몸을 갖고 있어서요. 모두가 들여다봄직한 보편적 주제라는 점을 깊이 공감해줬어요. 저의 경험은 그저 몸을 탐구하게 된 동기일 뿐이고 안무를 만들어가면서 무용수들이 새롭게 발견하는 몸, 또 제가 안무자로서 돌이켜 생각해볼 수 있는 몸을 관객에게 보여주고자 합니다. 무대를 보며 같이 탐구해주셨으면 해요."김보라는 이번 무대를 위해 안무 외 다양한 부분에도 힘을 줬다. 무대 바닥은 차가운 스틸로 구성할 예정이다. 낯선 신체, 낯선 감각을 무용수들에게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라고 했다. 또 음악이 아닌 '사운드'를 입혀 무용수들의 동작에 의미를 부여할 계획이다.

"관객들은 처음에 객석에서 클래식 음악을 가장 크게 듣게 되는데 무대 위 무용수들은 연습실의 잡음, 병원의 의료 기기음들을 크게 듣게 돼요. 어느 순간에는 그 소리들이 섞여들어가면서 객석과 무대의 경계가 서서히 없어지도록 할 생각입니다."

이 역시 그의 경험이 빚어낸 연출이다. 병원 복도에서 차례를 기다릴 때 서정적인 클래식 음악이 들렸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마음은 '임신에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에 불안만이 가득했다고.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클래식 음악은 희미하게 들리고 의료 기기음, 차가운 금속의 소리만이 들리더라고요. 그 당시 청각의 기억을 더듬어서 사운드를 더욱 완성도있게 만들고 있어요."
인터뷰 중인 안무가 김보라 / 사진 제공. ©국립현대무용단
그렇다면 몸이란 대체 어떤 것일까. "답을 내리긴 어렵겠지만, 관객분들은 자신의 몸이 하나지만 그것을 단일한 몸으로 규정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은연중에 깨닫게 될 거에요. 제 공연을 통해 다중적인 우리의 몸을 이해하고 인간중심주의를 넘어 다양한 생각(예를들면 포스트휴머니즘)을 받아들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해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