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대선 흔드는 적대국…'러 여론조작' 첫 적발

美, 북·중·러·이란 개입 차단

美, 러 방송사 RT 간부 2명 기소
"여론 조작 콘텐츠 제작·유포"

"트럼프캠프 해킹도 이란 소행"
SNS·AI 이용한 심리戰 늘어
미국의 유명 우파 유튜버 등 인플루언서들이 러시아 정부 자금을 받아 미국 내 분열을 일으키는 콘텐츠를 제작한 것으로 나타났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한 여론을 바꾸고 미국 대선에 영향을 미치려는 러시아 측의 구체적인 개입 혐의가 적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 법무부는 4일(현지시간) 자국 우파 인플루언서를 고용해 1600만 회에 달하는 조회 수를 올린 소셜미디어 영상을 제작하도록 한 혐의로 러시아 국영 방송사 러시아투데이(RT: Russia Today) 직원인 옐레나 아파나스예바 등 2명을 기소했다고 발표했다. 이들은 자금 세탁 및 외국 대리인 등록법(FARA) 위반 공모 혐의를 받는다. 미국 재무부는 이와 관련해 마르가리타 시모노브나 시몬얀 RT 보도국장, 옐리자베타 유르예브나 브로드스카이아 부보도국장 등 개인 10명과 기관 2곳을 신규 제재 대상 명단에 올려 미국 방문을 금지하고 관련 자산을 동결했다. 연방수사국(FBI)은 관련 도메인 32개를 폐쇄했다.법무부가 공개한 기소장에 따르면 이들은 대선을 앞두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선전 내용을 미국에 전파하기 위해 테네시주에 법인을 설립해 주요 우파 인플루언서들과 계약을 맺고 반(反)이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등을 비판하는 내용 등을 담은 콘텐츠 제작을 유도했다.

미국 매체 NPR과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해당 법인은 2022년 보수 성향의 캐나다 유튜버 로런 첸과 리엄 도노번이 설립한 테네시주 테넷미디어다. 이 회사는 베니 존슨, 팀 풀, 데이비드 루빈, 로런 서던 등 우파 미디어에서 유명한 인물과 계약을 맺었다. 이민자들이 갱단을 만들고 있다거나, 온라인 검열이 문제라거나,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소수자를 공격하는 내용 등 자신들이 원하는 콘텐츠 제작을 지원하는 계약이다. 베니 존슨은 지난 7월 밀워키에서 열린 공화당전당대회(RNC)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아들 에릭 트럼프를 인터뷰하는 등 중량감 있는 활동을 하는 인물이다.

해당 인플루언서들은 이런 프로젝트가 러시아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몰랐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관련 계약서에서 러시아가 언급된 적은 없다. 하지만 테넷미디어 뒤에는 RT가 있었다. RT 소속 코스티안틴 카라시니코프는 테넷미디어 콘텐츠를 편집하고 이를 틱톡, X 등 소셜미디어 계정에 보내는 일을 감독했다. 아파나스예바는 가짜 투자자 에두아르드 그리고리언 등을 내세워 구체적인 활동 방법을 지시했다. 이들은 해외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전자제품 구입 등의 명목으로 1000만달러(약 133억원)를 테넷미디어에 전달해 유튜버와의 계약금과 제작비로 쓰게 했다.국무부는 RT 모기업 로시야세고드냐와 리아노보스티, TV노보스티, 럽틀리, 스푸트니크 등 다른 러시아 언론사의 미국 지사를 외국정부기관으로 지정했다. 미국 내 주요 러시아 관영 매체가 언론기관이 아니라 러시아 정부기관이라는 뜻이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성명에서 RT가 “미국 선거에 영향을 미치고 민주주의를 약화시키려는 크렘린궁의 메시지를 전달”할 목적으로 미국 민간 기업과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RT는 2017년 미국 상원 출입 자격을 박탈당한 데 이어 2022년 제재를 받고 미국 법인 RT아메리카를 폐쇄했다.

앞서 미국 정부는 이란 해커들이 조직적으로 미국 대선 캠프에 접근한 정황을 확인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 캠프는 고위 관계자들 계정이 해킹당했다며 이란을 배후로 지목했다. 미국 당국은 러시아·중국·이란·북한 등 적대국이 소셜미디어와 인공지능(AI)을 적극 활용해 심리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판단한다. 이날 워싱턴DC에서 개최된 제5차 한·미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 후 양국 발표에는 “(북한 등) 일부 국가의 허위 정보에 공동 대응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