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SKY 지역비례로 뽑으면 교육 불평등 해소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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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선우 한국경제신문 기자
지난달 말 나온 한국은행의 ‘입시경쟁 과열 대응방안’ 보고서가 많은 화제를 모았습니다. 중앙은행이 교육 문제에 목소리를 낸 데다 상위권 대학 신입생을 지역별 학령인구 비율에 맞춰 뽑자고 과감하게 제안했기 때문이죠.

보고서에 담긴 내용 자체가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입시 과열과 사교육비 부담으로 인해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 학업 성적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점은 굳이 증명하지 않아도 될 만큼 이미 상식이 됐습니다. 한은의 문제 제기가 신선한 것은 지금의 대입 제도가 과연 기회의 균등이라는 가치를 충족시키고 있느냐를 되묻고 있는 부분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인재가 제대로 육성되지 못하는 ‘잃어버린 인재(Lost-Einsteins)’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경제는 기회비용을 많이 따지는 분야입니다. 답지에만 오르고 선택되지 못한 대안들이 어느 정도 비용을 치르게 하는지 살펴보는 거죠. 그런 점에서 ‘잃어버린 인재’는 기우라기보다 우리 사회가 주목해볼 부분이란 생각을 갖게 합니다.

이와 관련해 지구 반대편 미국에선 흑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시정정책(Affirmative Action)이 연방대법원의 위헌 판결로 폐지됐습니다. 지난 60여 년간 이어진 인위적이고 무리한 차별시정이 또 다른 차별을 낳았다는 반성이 일어난 겁니다. 흑인 등에 대한 대학 입학 정원 할당을 폐지하면서 반사효과로 아시아계 입학생이 늘었습니다. 교육에서 기회균등과 차별금지라는 두 가지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4·5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입시 과열이 인구집중·집값상승 불러
교육 기회균등 더 필요하다는 제언 많아

연합뉴스
이번 한국은행 보고서는 부모 경제력, 거주 지역 등 학생을 둘러싼 사회경제적 배경이 대학입시를 좌우하는 불편한 진실을 다시 드러냅니다. 교육 기회의 불평등이 심화하면 경제적 부와 사회적 지위가 대물림되고, 그 속에서 ‘잃어버린 인재(Lost-Einstein)’가 늘어나 한국 경제의 장기 성장을 방해할 수 있다는 게 한은의 문제의식입니다. 상위권 대학에 들어가려고 수도권에 인구가 몰리고 집값이 상승하는 구조적 사회문제도 입시 경쟁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한은으로선 금리정책을 하나 결정하려고 해도 수도권 부동산 가격이 신경 쓰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깨기 위해 ‘지역별 비례선발제’와 같은 과감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낸 겁니다. 지금도 각 대학들은 지역균형전형 등 보완 수단을 시행 중이지만, 좀 더 확대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한은은 “서울대 19학번 가운데 수시 지역균형선발 전형으로 입학한 학생들의 평균 학점이 정시 일반전형으로 입학한 학생보다 높았다”며 주장의 근거도 들었습니다.

부모 경제력이 입시 좌우

우리 사회에서 교육을 받을 기회가 평등하게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여러 통계로 확인됩니다. 먼저 부모의 경제력이 좌우하는 사교육의 존재입니다. 통계청 자료에서 작년 고등학생의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를 살펴보면 월소득 200만원 미만의 저소득층은 38만원을 쓴 반면, 월소득 800만원 이상의 고소득층은 2.6배 많은 97만원을 지출했습니다. 거주 지역의 차이도 큽니다. 서울의 1인당 사교육비는 104만원으로, 읍면 지역(58만원)보다 1.8배 많았습니다.이런 차이가 상위권 대학 진학률 격차로 이어진다고 한은은 설명합니다. 2005년 중학교 1학년 때 비슷한 잠재력(수학 성취도 점수)을 보인 학생들이 소득 상위 20%(5분위)에 속하는 경우, 5년 뒤 상위권 대학에 진학하는 비율이 하위 20%(1분위)보다 5.4배 높게 나왔다는 겁니다. 거주지로 봐도 비슷합니다. 2018년 전국 일반고 졸업생 중 서울 출신은 16%에 불과했지만, 서울대 진학생 가운데선 32%를 차지했죠. 보고서는 2010년 소득 상위 20%와 하위 80% 간 상위권대 진학률 격차 중 75%는 학생 잠재력 이외의 ‘부모 경제력 효과’의 결과로 추정된다고 결론짓습니다. 또 2018년 서울과 비서울 간 서울대 진학률 격차 중 92%는 거주 지역 효과(부모 경제력+사교육 환경)에 기인한다고 덧붙였죠.

기회균등, 얼마나 보장해야 할까

하지만 교육 기회의 불평등이 계속 심화돼왔는지는 확인하기 쉽지 않습니다. 변수용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교수는 교육 성취(대학 진학 등) 측면에서 지난 50년간 불평등이 심화됐다는 증거는 발견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다만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을수록 학생의 읽기 점수(PISA, 국제학업성취도평가 기준)가 비례해 높아지고, 이 곡선의 기울기가 2000년보다 2018년에 더 가팔라졌다고 밝힙니다. 부모 경제력 때문에 학생의 읽기 성적의 격차가 더 벌어졌다는 얘기죠.교육 불평등 문제는 기회의 균등 외에 평가의 투명성과 공정성 측면에서도 제기됩니다. 쉽게 말해 지금의 대입전형 제도가 얼마나 공정한가와 관련된 논란입니다. 대표적으로 2017년 수능 절대평가제를 도입하면서 수능의 변별력 약화, 학생부 위주 전형의 비율 상향, 특히 학생부종합전형의 불공정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컸습니다. 학종을 두고 이른바 ‘금수저 전형’ ‘깜깜이 전형’이란 비판이 많았죠.

한은 보고서는 지역별 비례선발제를 검토하자고 제안하는데요, 이에 동의하는 교육 전문가도 적지 않습니다. 2022년 서울대 경제학부 박사 논문(‘한국의 경제 및 교육의 기회불평등 분석’, 오성재)에서도 “현 대입 제도의 경우, 기회균등 전형은 그 규모가 상당히 미흡하다. 상위권 대학을 중심으로 기회균등 전형을 대폭 확대해야 실질적 기회균등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지금도 서울대는 2025학년도에 3497명(정원 내 전형 기준)을 모집하면서 수시와 정시의 지역균형, 기회균형 전형에 모두 820명, 전체의 23.4%를 뽑습니다. 이 비율을 얼마나 더 높여야 공정한 대입전형 제도라고 평가받을 수 있을까요?

NIE 포인트

1. 선진국의 교육 불평등 정도는 어떤지 살펴보자.

2. 사교육이 제공하는 장점은 무엇인지 알아보자.

3. 한국의 사교육 경쟁을 줄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친구들과 토론해보자.

'잃어버린 인재' vs '차별금지'
어느 한쪽도 가볍게 볼 수 없죠

연합뉴스
‘잃어버린 인재(Lost-Einsteins)’란 경제적·교육적 불평등 때문에 재능 있는 인재가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기회의 창을 열지 못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한국의 아인슈타인으로 커나갈 잠재적 인재를 잃게 되면 혁신의 기운이 감소하고 경제성장 속도도 느려질 수밖에 없어요. 이는 계층 상승을 할 수 있는 정도를 뜻하는 ‘개천용지수’와도 통합니다. 양질의 교육을 받을 기회가 균등하게 주어지지 않으면 대학 진학과 취업 등에서 격차가 벌어지고, 이는 다음 세대에서 계층을 상승시킬 가능성을 줄이게 됩니다.

역차별 낳은 ‘결과의 평등’

그러나 상위권 대학 신입생을 지역 비례선발제로 뽑자는 한국은행의 제안은 ‘기회의 평등’이 아닌, ‘결과의 평등’을 보장하자는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대학 진학은 ‘출발점’이긴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명문대를 나왔다는 사실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이점이 많기 때문이죠.

‘결과의 평등’을 강조하다 보면 어떤 문제가 나타날 수 있는지 미국의 선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작년에 위헌 결정으로 폐지된 ‘차별시정정책’(또는 소수인종 우대 정책, Affirmative Action)이 대표적입니다. 이는 미국 대학입시(SAT)에서 같은 점수를 받더라도 흑인, 히스패닉 등 소수인종이 가산점을 받아 원하는 대학에 입학할 수 있도록 한 제도입니다. 그런데 현실에선 각 대학이 소수인종의 입학 비율을 아예 정해놓고 신입생을 뽑았습니다. ‘기회의 평등’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진보적 발상이 ‘결과의 평등’으로 과도하게 흐른 거죠.

1960년대 케네디 대통령 시절에 도입한 이 정책은 교육 분야에서 자유와 평등을 어떻게 구현할 것이냐는 관점에서 수많은 논쟁을 낳았습니다. 이 정책이 소수인종에게 ‘성공의 사다리’ 역할을 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스스로 이뤄낸 성과조차 인종에 의한 특혜로 평가절하받는 부작용이 일었어요. 그래서 “인종적 온정주의는 차별만큼이나 해롭다”는 얘기도 나왔습니다. 미국에선 2006년, 2013년 등 세 차례에 걸쳐 “아시아계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차별받고 있다”며 위헌심사가 제청됐지만, 합헌 판정으로 제도가 유지됐습니다. 이게 작년에 위헌 판정을 받은 겁니다. 미국 헌법(수정헌법 제14조)은 인종에 따른 분류를 금지하고 있으므로 폐기해야 한다고 연방대법원은 밝혔죠. 미국에선 대법원의 보수 성향 판사가 9명 중 6명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나온 판결이란 시각도 있습니다. 아무튼 지난달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이 발표한 올해 신입생 통계에서 아시아계 신입생은 작년보다 7%포인트 증가한 47%를 차지했습니다. 흑인은 15%에서 5%로, 히스패닉은 16%에서 11%로 줄어들었죠.

한은이 제기한 지역 비례선발제도 크게 보면 미국의 차별 시정 정책과 비슷합니다. 비록 학업성취도(학점)에서 기회균등 전형 출신이 뛰어났다고 하지만, 지금의 균등전형보다 숫자가 늘어나면 미국에서 나타난 편견과 질시, 오해와 역차별 등 여러 문제가 우리에게도 생겨날 수 있어요. ‘잃어버린 인재’를 막자며 ‘결과의 평등’까지 보장할 거냐, 미국처럼 차별금지의 가치를 존중할 거냐는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조기개입 나서는 선진국들

교육 불평등을 해소하는 문제는 교육 기회를 균등하게 제공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선진국에선 이와 관련한 제도적 장치를 발전시켜왔어요. 미국은 1960년대 존슨 대통령 당시 ‘빈곤과의 전쟁(The War on Poverty)’을 시작하면서 저소득 가정의 교육 불평등에 대처하기 위한 헤드 스타트(Head Start) 프로그램을 도입했습니다. 저소득 가정 아동의 사회성, 학습능력, 건강, 영양상태 등을 개선해 이들을 일반 가정의 아동과 동일선상에서 출발할 수 있도록 조기에 개입하는 제도입니다. 영국에서도 조기에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 아이들이 발달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는 공감대가 확산하면서 1997년 슈어 스타트(Sure Start)라는 국가적 시스템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교육 선진국인 스웨덴은 모든 아동이 지역이나 소득수준에 관계없이 원하는 학교에 입학할 수 있도록 지원하며, 교육비 부담을 줄여주는 교육비 상한제도 시행하고 있습니다. 가구당 보육비 지출이 가구 수입의 3%를 초과하지 않도록 해 저소득 가정을 돕는 겁니다.

NIE 포인트

1. 헌법상 평등권 조항을 찾아보고, 개별 법률은 어떻게 보장하는지 공부해보자.

2. 미국의 차별시정정책이 60년간 미국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알아보자.3. 기회의 평등, 결과의 평등 가운데 무엇이 더 중요한지 토론해보자.

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