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김혜경·정경심 때도 "논두렁" 찾더니…文 수사에 또 [이슈+]

文 수사 본격화하자, 野 인사들 '노무현' 거론
"제2의 논두렁" "이쯤 가면 막 하자는 거지요?"
김정숙 옷값·김혜경 의전·정경심 표창장 때도
정치·사법적 곤경 처할 때마다 盧 언급 반복
사진=뉴스1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정치권에 또 소환됐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 딸 다혜씨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하면서다. 세상을 떠난 지 15년이 넘게 지났는데도, 민주계열 정당 관계자들은 사법부의 압박이 들어올 때마다 재차 노 전 대통령을 소환하고 있다. 이에 "정작 본인들이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사자 명예훼손을 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까지 나온다.

검찰이 문 전 대통령을 뇌물 수수 피의자로 적시해 수사에 나서자 야권은 "제2의 논두렁 시계 보도"라면서 노 전 대통령 사례를 재차 거론했다. '논두렁 시계 보도'는 2009년 한 방송사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노 전 대통령 부부에게 준 스위스 명품 시계를 권양숙 여사가 논두렁에 버렸다'는 내용을 보도한 것을 말한다. 이를 두고 전형적인 '망신 주기' 보도라는 비판이 나왔는데, 문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 역시 비슷한 취지로 기획됐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문재인 정부 당시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이성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6일 "'논두렁 시계 수사 2탄'으로 생각한다"며 "검찰은 노 전 대통령에 먼지 털이식 수사를 하고 모욕을 줘서 결국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했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지난 2일 "문 전 대통령과 가족에 대해 제2의 '논두렁 시계' 공세가 시작될 것"이라고 했다. 압수수색을 받은 문 전 대통령의 딸 다혜씨는 지난 3일 "이쯤 가면 막 하자는 거지요?"라고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을 옮기면서 노 전 대통령을 입방아에 올렸다.

이 가운데 여권에서는 야권에서 자신들이 억울하다는 취지로 '논두렁 시계' 사건을 끌어들이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나왔다.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지난 6일 라디오에서 "야권에서는 입만 열면 '노무현 논두렁 시계' 이야기하면서 없는 죄 뒤집어씌우는 것처럼 얘기하는데, 이 사건은 이인규 전 검사장이 회고록에 썼고, 그에 대해 유가족들이 전혀 반론을 제기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과거) 노 전 대통령이 당시 이 전 검사장에게 '이 부장, 검찰 시계는 (공소장에서) 뺍시다'라고 말했고, 그게 대검에 전부 녹화가 돼 있다는 것이다. 이어 검찰에서 공소사실에 포함시키지 않으려고 하니까 외부로 유출이 돼 '논두렁에 버렸다'라는 소문이 퍼졌다는 게 이 전 검사장의 주장"이라며 "2억원이 넘는 시계를 받은 게 맞는 사건인데, 자꾸 억울한 것처럼 이야기 안 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왼쪽부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배우자 김혜경씨, 문재인 전 대통령 배우자 김정숙 여사,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배우자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 / 사진=연합뉴스
민주계열 정당에서 자신들에게 불리한 이슈가 터질 때마다 노 전 대통령을 끄집어내는 일은 반복돼 왔다. 대선을 앞둔 2022년 당시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의 배우자 김혜경씨의 '과잉 의전' 논란이 불거지자, 몇몇 민주당 의원들은 페이스북에 "노 대통령 진영 사저 아방궁, 노무현 명품시계 논두렁 기사를 연상케 한다"는 내용의 글을 공유했다. 또 김씨의 낙상 사고를 놓고 허위 사실이 유포됐던 2021년에는 서영교 민주당 의원이 "노 전 대통령을 고통스럽게 했던 논두렁 시계와 같은 사건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가짜뉴스를 엄단할 것"이라고 했다.

2022년 문 전 대통령의 배우자 김정숙 여사의 옷값 논란이 불거졌을 때도 어김없이 노 전 대통령이 소환됐다. 고민정 민주당 의원은 당시 "이런 기사가 왜 하필 이때 나오나. 노무현 대통령 때 권양숙 여사, 이런 사건들이 떠오르지 않을 수가 없다"고 했다. 윤호중 당시 민주당 의원은 "논두렁 시계 같은 가짜뉴스를 마구 퍼뜨리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방송인 김어준씨도 "왜 이런 주장과 뉴스가 갑자기 폭주하나. 논두렁 시계 시즌2의 간을 보는 것이냐"고 했다.

2020년에는 조국 대표의 배우자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가 동생에게 '내 목표는 강남 빌딩을 사는 것'이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낸 사실이 법정에서 공개되자, 정 전 교수 변호인단은 "설마 했는데 논두렁 시계 사태가 다시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2021년에는 당시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이 정 전 교수의 표창장 위조 의혹을 두고 "정 교수 사건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이라며 "노 전 대통령 논두렁 시계와 같은 역할을 했던 것"이라고 했다.여권에서는 정치적 또는 사법적 곤경에 처할 때마다 노 전 대통령을 언급하는 행태를 이젠 멈춰야 한다는 촉구가 나온다. 김종혁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지난 4일 유튜브와 라디오에서 "민주당에 있는 분들은 자기들이 수사를 받거나 어려운 일을 당하면 꼭 노 대통령을 소환하는데, 정말로 낡은 상투적인 선전 선동 수법"이라며 "제발 노 전 대통령을 자기들 범죄 막으려고 할 때 끄집어내서 사용하지 말길 바란다. 노 전 대통령 사자 명예훼손을 본인들이 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