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인공지능 시대 인간의 슈퍼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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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미 테일트리 대표오래전 독일 지인의 집에서 매우 행복한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내가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은 별이 하늘을 사랑하는 것과 같다.” 삐뚤빼뚤한 별 몇 개와 어두운 밤하늘이 그려진 배경에 적힌 이 독일어 시는 그 집 큰아들인 여섯 살 요하네스가 엄마 모니카에게 준 선물이라고 했다. 어린이가 이런 시를 썼다니. 모니카는 이 시를 완전히 잊었을지 모르지만, 요하네스의 천재성은 두고두고 기억날 수밖에 없었다.
놀랍게도 이 같은 천재성은 요하네스만의 것이 아니다. 모든 인간은 천재적인 창의력을 지니고 태어난다. 창의력 분야에서 저명한 조지 랜드가 1968년 미국 항공우주국(NASA) 의뢰로 만든 테스트에 따르면 4~5세 어린이 98%가 천재적인 수준의 창의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곤두박질치듯 사라진다고 한다. 30세가 넘은 사람 중 겨우 2%만이 어린이 수준의 창의력을 유지한다고 한다.이는 정답을 찾도록 길들여진 교육 시스템에서 비롯됐다. 현재 학교 시스템은 산업혁명 시기에 확립돼 생산성을 높이는 것에 최적화된 기계적 교육 방식이다. 이 교육 방식은 몇백 년 동안 별다른 혁신 없이 유지돼 왔다. 게다가 요즘은 온라인 콘텐츠가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 지극히 자극적이고 과장됐거나 거짓이라는 문제점이 있다.
세상을 살면서 익히는 대부분의 지식·기술은 우리가 태어났을 때 0에서 시작한다. 0에서 시작해서 중간이라도 가기 위해 우리는 부단히 노력한다. 공부, 악기, 운동 등 습득하는 거의 모든 것이 그렇다. 그래서 어린 시절 ‘업스킬링(upskilling)’을 위해 쉴 새가 없다. 어른이 되면 그렇게 익힌 스킬을 가지고 또 정신없이 일하며 먹고살기 바쁘다.
얼마 전 제인이라는 열 살짜리 꼬마가 이런 말을 했다. “모든 어린이는 마음속에 네모난 상자를 가지고 있어요. 그 상자에는 놀라운 것(wonder)이 가득 차 있죠. 이 상자가 있으면 호기심이 생겨서 배울 수 있지만 어른들은 이 상자를 가지고 있지 않아요. 그래서 맨날 일만 하고 아무것도 배우지 못해요.”
제인의 말에 나는 소름이 끼쳤다. 그 통찰력이 놀라웠다. 지금 우리는 사람보다 훨씬 더 빠르게 수학을 풀어내고 음악과 영화를 만들며 다른 수많은 일을 척척 해내는 인공지능(AI)이 인간 세계를 잠식할 것을 두려워한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 우리는 무엇에 집중해야 할까. 우리 본연의 호기심, 모험심, 창의력을 이용해서 우리 스스로가 진심으로 행복해할 열정 분야를 찾는 게 아닐까. AI가 나보다 훨씬 효율적이고 완벽하게 일 처리를 하더라도, 내가 사랑하는 일이라면 나는 그 일을 하고자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