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피제發 노사갈등…줄소송에 신음하는 기업

지난해 소송 213건…1년 새 두 배나 급증

2022년 대법 첫 '무효 판결' 이후
"유·무효 따져보자" 소송 줄이어
쟁점따라 엇갈린 판결…혼선 가중

고용안정과 달리 갈등 양산하자
임피제 도입 재고하는 기업 늘어
정년연장 논의 속 실효성 논란도
일정 연령에 도달하면 임금을 감액하는 임금피크제 관련 법정 분쟁이 급증하고 있다. 대법원이 2년 전 ‘합리적인 이유 없이 연령만으로 임금을 깎는 임금피크제는 무효’라는 판단을 내리자 제도의 정당성에 문제를 제기하며 임금 차액을 돌려달라는 근로자의 소송이 줄을 잇고 있어서다.

법원은 사건마다 엇갈린 판단을 내리는 가운데 고령자 고용 안정을 위해 도입된 임금피크제가 노사 갈등의 원인으로 고착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년 새 두 배 늘어난 임금피크제 소송

6일 한국경제신문이 대법원 판결문 열람시스템을 전수조사한 결과 지난해 임금피크제 관련 소송은 선고일자 기준 213건으로 전년(111건) 대비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특히 1심 사건은 같은 기간 80건에서 187건으로 크게 늘었다. 새롭게 법원에 접수된 사건이 특히 많이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올해 전체 사건도 이미 89건에 달해 연간 기준으로 2022년 수준을 웃돌 것으로 전망된다.대법원은 2022년 5월 정부 산하 연구원 근로자가 “임금피크제로 받지 못한 임금 차액을 돌려달라”며 낸 소송에서 임금피크제에 대한 첫 무효 판결을 내렸다.

당시 대법원은 △도입 목적의 타당성 △대상 근로자의 불이익 정도 △임금 삭감에 대한 조치 △임금피크제로 감액된 재원 사용 목적 등에 따라 합리성이 인정되지 않으면 고령자고용법상 연령 차별에 해당한다는 판례를 내놓았다. 그러자 다른 노동조합과 퇴직 근로자도 잇따라 임금피크제 무효를 주장하며 소송에 나섰다.

노동 전문 변호사들은 “소송의 90%는 회사 측이 승소하고 있다”며 무분별한 소송은 실익이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는 연장 자체로 보상 성격이 있기 때문에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법원에서 연령 차별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다만 정년연장형이더라도 임금 삭감 폭이 지나치게 클 경우 임금피크제 효력을 인정하지 않은 하급심 판례도 나오고 있어 기업들이 예의 주시하고 있다.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를 운용하는 하나증권은 올해 5월 근로자가 제기한 임금피크제 관련 소송에서 승소했지만 최근 쟁점이 비슷한 다른 소송에선 연장 근무에 대한 보상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패소했다.

대부분 기업에서 취업규칙을 통해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는 만큼 임금피크제가 취업규칙의 불이익한 변경에 해당하는지도 쟁점이 되고 있다. 작년 5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를 받지 않은 취업규칙의 불이익 변경은 무효라는 새로운 판례를 선언하면서 이런 쟁점의 소송도 늘어나는 추세다. 최진수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근로자 측에서도 재판 과정에서 절차적 하자를 부각하는 사례가 많다”고 했다.

○“노사 갈등 새 불씨 될라” 우려도

임금피크제는 2013년 법률 개정으로 정년을 60세로 연장하면서 수반된 조치다. 하지만 시행 초기부터 고령 근로자의 고용 안정을 돕는다는 당초 취지와 달리 노사 갈등의 불씨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임금피크제 폐지를 고려하는 기업도 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고용노동부에 따르면 300명 이상 사업체 가운데 임금피크제를 운용하는 사업체 비율은 2019년 54.1%에서 2022년 51%로, 100명 이상 사업체는 같은 기간 41.8%에서 39%로 줄었다.

최근 정부의 국민연금 의무가입 상한 연령 상향 검토 등으로 정년 연장 논의가 급물살을 타면서 임금피크제 실효성에 대한 논란도 불거지고 있다. 김희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노·사·정 공감대 속에 추진된 임금피크제가 경직된 노동법제도와 법원 판결로 그 취지가 몰각되고 오히려 노사 갈등의 원인으로 전락하고 있다”며 “평균수명 증가와 급격한 고령화를 고려해 현실에 맞는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경진/곽용희 기자 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