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돌 맞은 광주비엔날레 … 공간을 울리는 소리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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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회 광주비엔날레, 3개월 대장정 돌입
공간과 소리의 결합으로 팬데믹 이후 시대 조명
전세계 30개국 72명 작가, 다양한 설치작품 선보여
부리오 "보는 것만큼 듣는 것도 중요한 전시"

올해는 프랑스에서 온 유명 비평가이자 큐레이터인 니콜라 부리오가 예술감독을 맡으며 일찌감치 주목을 받았다. 그는 2014 타이베이비엔날레와 2019 이스탄불비엔날레의 총감독을 맡은 ‘비엔날레 전문가’로 통한다.

부리오는 세계 각국을 돌며 다양한 공간에서 소리를 주제로 작업을 펼칠 작가들을 찾아다녔다. 현장 조사를 위해 지난 올해 5차례나 광주를 찾아오기도 했다. 8월부터는 광주에 살며 매일 설치작업과 구상에 몰두했다.
올해 비엔날레를 찾은 이들은 모두 생존 작가들이다. 과거가 아니라 ‘동시대 미술’을 보여주고자 한 부리오의 의도가 담겼다. 개막일 현장을 찾은 부리오는 "작은 주거 공간부터 거대한 지구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존재하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라며 "공간을 통해 팬데믹, 환경오염 등 전할 이야기가 많다"고 말했다.전세계 작가들 모여 광활한 공간을 수놓다
1, 2관에서는 ‘부딪힘 소리’를 주제로 전시를 꾸몄다. 인간으로 가득 찬 세상 속에서 사람들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를 작품으로 나타냈다. 관객들은 도시의 소리가 들리는 어두운 터널을 통해야만 전시관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이 터널은 나이지리아 아티스트 에메카 오그보의 작품이다. 고국인 라고스 거리에서 녹음한 소음을 재생시켜 밀집된 도시의 삶과 모습을 소리로 전달한다.밀집된 도시 속 부서지고 산업화된 자연을 표현한 작품들도 놓였다. 먼지로 뒤덮힌 피피터 부겐후트의 설치작품 '맹인이 맹인을 인도한다'가 그것이다. 벨기에 작업실에서 작품을 만든 후 완성작을 해체해 광주에 가져왔다. 현장에서 직접 조립해야 비로소 작품이 완성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대미를 장식할 4관과 5관은 '처음 소리'를 주제로 우주의 거대함과 분자의 미세함에 주목했다. 우주와 분자 모두 인간의 눈으로 볼 순 없지만 세상을 움직이는 존재라는 공통점에 주목했다. 비앙카 봉디의 신작 '길고 어두운 헤엄'은 전시장 안에 광활한 소금 사막을 심었다. 계단과 의자를 세워 관객이 작품 위로 올라서도록 했다.지금까지 주로 소금물을 이용해 작품을 선보여 온 봉디가 자신의 방식대로 우주를 표현한 것이다.생물의 기원, 환경 파괴, 자연 등을 설치작품으로 선보이는 '대지의 작가' 마르게리트 위모는 이번 비엔날레를 위해 신작 '휘젓다'를 제작했다. 빛을 이용한 대형 설치작업을 통해 미생물과 세균의 세계를 표현했다. 이날치 밴드와 협업해 드럼과 판소리를 결합한 사운드를 함께 들려준다.
전시장 밖에서도 만나는 예술세계
빈 집과 파출소 등 공공건물 8곳에 12명의 작가가 소리를 기반으로 한 작품들을 펼쳐놓는다. 양림동은 일제강점기에 저항한 이들이 모여 살던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광주의 근대문화유산을 비엔날레 전시 공간으로 바꾼 것이다.
옛 한옥집을 꾸민 한부철갤러리에는 안젤라 블록의 실험작이 놓였다. '다이내믹 스테레오 드로잉 머신'이라는 복잡한 제목을 가진 작품이다. 고요한 방에 설치된 전동 드로잉 머신이 계속해서 펜을 움직인다. 펜이 지나간 벽지에는 보라색 선이 끊임없이 그려진다.
펜을 움직이는 힘은 다름아닌 ‘소리’. 머신에 mp3를 연결시켜 음악을 재생하면 소리 감지 센서가 음악에 맞춰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음악은 오직 기계에게만 들린다. 관객은 기계가 어떤 음악을 들으며 이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오로지 상상에 맡길 뿐이다.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