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아르헨티나 독재 경험 공통…문학의 힘은 독자를 각성시켜"

[2024 서울국제작가축제]
아르헨티나 대표 사회파 작가
"정보라, 한강, 조남주 작가 인상적"
"문학이 직접적으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긴 어렵지만, 미래의 점진적인 변화를 이끄는 계기는 될 수 있습니다."

한국문학번역원이 개최한 '2024 서울국제작가축제'에 개막식 연사로 초청받은 클라우디아 피녜이로(사진·64)는 지난 6일 서울 혜화동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아르헨티나 작가 중에선 보르헤스 이후 가장 많은 언어로 책이 번역된 피녜이로는 스릴러의 대가로 꼽힌다. 국내엔 그의 책 중 앞서 2022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최종후보에 오른 <엘레나는 알고 있다>를 비롯해 <신을 죽인 여자들> 등 두 권이 번역돼 있다. <신을 죽인 여자들>은 지난해 가장 뛰어난 범죄소설에 수여하는 대실 해밋상을 받기도 했다.
피녜이로는 소설에서 종교의 보수성과 낙태 등 당대 현실 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루는 이른바 '사회파 작가'다. 여성 인권 운동가로 활동하며 아르헨티나 내 임신중단권 보장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그는 "독자에게 마치 거울처럼 우리가 사는 사회의 문제가 뭔지 비춰주고 변화의 필요를 느끼도록 하는 게 바로 문학의 힘"이라고 말했다.

아르헨티나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군부 독재 정권을 경험했단 공통점이 있다. 피녜이로는 "독재의 경험은 어떤 형식으로든 흔적을 남긴다"며 "당시 청소년기에 겪은 두려움과 사상적으로 억압하는 분위기 등이 지금의 작품에 반영돼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아르헨티나의 현재 극우 정권이 군사 독재 시절을 극복하려는 그동안의 노력을 후퇴시키는 것 아닌지 우려스러운 지점이 있다"며 "지금 쓰고 있는 작품에 이런 문제의식이 반영돼 있다"고 덧붙였다.
피녜이로는 국내 여성 작가의 소설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그는 "정보라 작가의 <저주토끼>는 부커상 최종후보에 나란히 올랐을 때 영어 번역본으로 읽었고, 올해 스페인어로 번역된 것도 읽었다"며 "굉장히 흥미로웠고 아직 번역되지 않은 다른 작품도 기대가 된다"고 말했다. 그밖에 한강의 <채식주의자>,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 등을 인상깊게 읽었다고 전했다.

본인이 쓴 범죄소설도 국내에 소개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피녜이로는 "내가 쓰는 범죄소설은 고전적이고 전형적인 형식의 범죄소설과는 거리가 있다"면서도 "<자라의 균열>이나 <베티 부>와 같은 작품은 좀 더 추리적 요소가 가미된 소설이기 때문에 더 흥미롭게 읽는 독자도 있을 듯하다"고 말했다.
한편 올해로 13회를 맞은 서울국제작가축제는 오는 11일까지 서울 혜화동 JCC 아트센터에서 열린다. '입자와 파동'이란 주제로 열린 이번 축제엔 피녜이로를 비롯해 <오베라는 남자>를 쓴 프레드릭 배크만, 대만 최고 권위의 문학상 금장상을 받은 천쓰홍, 정보라·김기태·이기호 작가 등 국내외 작가 24명이 강연과 대담으로 독자와 만난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