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유학생 유길준의 도전정신, 오늘날에도 통하는 얘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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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다 하티건 미국 피바디에섹스박물관장 인터뷰현존하는 미국 최고(最古)의 박물관인 피바디에섹스박물관(PEM) 한국실이 새롭게 문을 연다. 개화사상가이자 정치가인 유길준(1856~1914)을 기리는 의미에서 '유길준 한국미술과 문화갤러리'란 명칭이 채택됐다. 내년 5월 15일부터 260㎡(약 79평) 규모 공간에 한국 관련 유물 50여점을 상설 전시한다.
'유길준 한국미술과 문화 갤러리' 내년 5월 개관
왜, 지금 유길준일까. 지난 3일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만난 린다 하티건 PEM관장은 유길준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조선 최초의 미국 유학생으로서 태평양을 건너던 심정은 어땠을까요. 고향에 두고 온 가족에 대한 그리움,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겠다는 꿈…. 유길준 선생의 삶을 통해 도전의 의미를 되새기고 싶었습니다."1799년 건립된 PEM은 미국 최초로 아시아 예술 및 민속 유물을 수집한 박물관이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세일럼의 무역상들이 각자 수집한 타국의 물건을 전시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현재 한국, 중국, 일본, 아메리카 원주민, 아메리카 유물 약 100만점을 소장하고 있다. 하티건 관장은 "미국에서 한국 유물을 체계적으로 소장·관리한 것은 PEM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한국과의 인연은 19세기 말부터 시작했다. 박물관의 전신인 피바디과학관의 에드워드 모스가 고종의 외교 고문이었던 묄렌도르프를 통해 한국에서 225점의 유물을 구입하면서다. 이때 자문을 해준 인물이 유길준이다. 1883년 방미 사절단으로 미국을 찾은 유길준은 1년여간 박물관이 있는 세일럼 지역에 머물렀다. 모스는 스승이자 조력자로서 유길준의 유학 생활을 도왔다.PEM은 유길준의 흔적을 간직한 유물을 여럿 수집했다. 그가 미국에 두고 간 갓과 옷, 더위를 식히기 위해 썼던 부채와 대나무 토시, 모스와 나눈 편지 등이다. 편지에는 유길준이 미국 학생들과 수학하며 느낀 감상이 적혀있다. 당일 시험 성적 등 '늦깎이 학생'이 털어놓은 서러움부터 조국의 미래에 대한 고민까지 다양하다."27세의 지식인 유길준은 10살 넘게 어린 미국인 동급생들한테도 배울 점을 찾았습니다. 한국으로 돌아간 그는 고종에게 서양식 토론 문화 도입을 건의했죠. 부패와 허례허식에 관해서도 지적했어요. 어쩌면 오늘날에도 통하는 얘기입니다."하티건 관장은 1960년 미국 스미스소니언박물관 큐레이터로 업계에 뛰어들었다. 2003부터 17년간 PEM에서 일하다가 2020년 캐나다 로열온타리오박물관으로 잠시 이직했다. 그는 "PEM에서 매일 찾았던 한국실을 더 이상 방문할 수 없게 돼 아쉬웠다"고 했다. 2021년 PEM관장으로 부임하자마자 한국실 재개관을 추진하게 된 배경이다.
PEM에 한국실이 처음 들어선 건 2003년의 일이다. 1994년 한국에서 개최한 특별전 '유길준과 개화의 꿈'의 수익금으로 건립기금을 조성했다. 여기에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후원이 더해지며 첫 삽을 떴다. 17년 전 국립민속박물관의 후원으로 한차례 리모델링을 거쳤다. 이번 재개관 과정에서 국립중앙박물관이 인력 채용을 지원하며 김지연 한국 담당 큐레이터가 합류했다.PEM의 한국 관련 소장품은 2000여점에 달한다. 대부분 한국 개화기의 민속 유물이다. 묄렌도르프가 시장에서 구입한 최초의 컬렉션을 비롯해 19~20세기 외교관과 선교사들의 수집품이 주를 이룬다. 최근 백남준 등의 미디어아트 등 한국 현대미술품으로도 소장목록을 넓히고 있다.
이번 재개관 기념전시로 한국의 설치예술가 정연두, 양숙현 등의 작품도 나란히 선보일 계획이다. 유길준의 여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영상과 설치 작품을 공개할 것으로 알려졌다.
"개회기는 한국인들한테 잊어버리고 싶은 '아픈 역사'로 다가오기도 하죠. 하지만 그 시기에도 부단히 노력한 사람들이 있었어요. 이들이 일궈놓은 문화가 현대사회로 이어지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안시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