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보 "좀비기업 청산하고 밸류업 도입해 증시 질적 성장시킬 것" [KIW 2024]

9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개막한 '코리아 인베스트먼트 위크(KIW) 2024'의 밸류업 세션에서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왼쪽부터),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 이준용 미래에셋자산운용 부회장이 대담을 진행하고 있다. 강은구 기자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 시장엔 상장사가 2600여개나 되지만 미국 나스닥 시장엔 5500여개 뿐입니다. 두 나라의 국내총생산(GDP) 격차가 15~16배 수준이라는 걸 감안하면 국내 증시엔 너무 많은 상장사가 즐비해있습니다."

9일 서울 여의도동 콘래드 호텔에서 열린 '코리아 인베스트먼트 위크(KIW) 2024'의 '밸류업 특별좌담'에 토론자로 나선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앞으로 좀비기업을 제 때 퇴출시켜 지나치게 많은 상장사 수를 조절할 것"이라며 이 같이 말했다. 이날 사회를 맡은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밸류업(기업 가치 제고) 프로그램이 성공하기 위해선 국내 증시 거래량의 약 60%를 차지하고 있는 개인 투자자의 증시 참여가 늘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이준용 미래에셋자산운용 부회장은 "일본 정부도 밸류업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단순히 주주환원에 집중하기보다 개인 주식 투자 확대를 위해 힘썼다"며 "밸류업 프로그램을 통해 국내 주식시장의 전반적인 체질을 개선하는 데 성공해야 장기투자하는 개인이 많아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 이사장은 "밸류업(기업 가치 제고) 프로그램의 본질은 기업과 투자자 사이의 심각한 정보 비대칭을 해소하는 것"이라며 "외국 기관 자금을 유치하는 데 힘 쓸 것"이라고 강조했다.

밸류업 프로그램이 성공적으로 안착한다면 증시 부양에 큰 효과가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했다. 이 부회장은 "시가총액 상위 30% 기업의 자기자본이익률(ROE)은 10~11% 수준으로 주주환원 여력이 충분하다"며 "프로그램이 원활히 작동한다면 주가 부양에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이사장도 "최근 밸류업 공시를 진행한 기업은 대부분 7~8% 이상 주가가 상승했다" 며 "밸류업 프로그램이 한국 증시에 필요하다는 방증"이라고 강조했다. 메리츠금융지주는 지난 7월 밸류업 공시 이후 7% 상승했다.

국내 주식시장 상장 주식 수가 지나치게 많다는 지적에 대해 전문가들은 공감했다. 정 이사장은 "국내 증시에는 연간 약 120개 기업이 상장되고 20여개 기업이 퇴출되는 반면 미국 증시에선 상장 기업 수가 100여 개, 퇴출 기업 수는 140여개"라고 지적했다.

'쪼개기 상장'이 증시 수급을 훼손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정 이사장은 "한국과 미국의 국내총생산(GDP)는 15~16배 차이가 나지만 미국 나스닥 시장 상장사 수는 한국의 2배 수준"이라며 "모회사가 자회사를 상장시키면서 주식 공급 수가 늘어나는 구조"라고 말했다.이어 "한국거래소는 좀비기업이 제 때 상장폐지될 수 있도록 정책을 운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 지수 편입 여부에 투자자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는 가운데, 단순히 지수 편입으로 인해 외국인 투자자의 수급이 쏠리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이 부회장은 "외국인이 한국 증시에 큰 관심이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상장 기업이 대부분 시클리컬(경기민감) 기업이라 이익 안정성이 떨어지고 시장에서 가격 결정력을 가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본질적으론 기업 경쟁력 강화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