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동 걸린 법률AI 챗봇…'제2 로톡사태'로 번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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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협 'AI대륙아주' 징계절차 강행에 파장 우려대한변호사협회가 인공지능(AI) 챗봇을 개발한 법무법인 대륙아주 징계 절차에 들어가면서 리걸테크업계에 파장이 일고 있다. 법률AI 시장 전체로 전선이 확대돼 ‘제2의 로톡 사태’로 번질 가능성이 있어서다. 법률 정보 플랫폼의 성장에 제동을 걸었던 변협이 이제 막 개화한 리걸AI 산업까지 옥죄기 시작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률AI 이제 막 시작 단계인데
변협과 갈등…서비스 속속 중단
리걸테크 산업 혁신 뒤처질 우려
로톡 이어 AI까지 표적됐지만
정부는 규제개혁 1년째 '차일피일'
국내 최초 ‘AI 법률챗봇’ 중단
10일 정보기술(IT)업계에 따르면 리걸테크 스타트업 로앤굿은 일반인 대상 AI챗봇 서비스를 최근 플랫폼에서 내렸다. 로앤굿은 지난해 5월 국내 최초로 챗GPT를 활용한 법률 AI챗봇을 공개해 주목받았던 기업이다. 민명기 로앤굿 대표는 “변협과의 갈등 가능성을 고려해 일반인 대상 AI챗봇 대신 기관에 법률AI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비즈니스 전략을 바꿨다”고 말했다. 일종의 ‘AI 변호사’로 고객들이 실제 변호사를 만나기 전 가볍게 법률상담을 받을 수 있는 서비스임에도 결국 중단했다.전날 변협 조사위원회는 대륙아주의 AI대륙아주 출시를 징계위원회 안건에 올리기로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김영훈 대한변협 회장은 “대형 로펌이 개인 변호사들이 2만~3만원에 하는 가벼운 법률상담 시장을 죽인다”고 비판해왔다. 대륙아주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일반적인 수준의 법률 정보를 제공하는 무료 챗봇으로 회사가 얻는 수익이 없다”며 “징계 절차에 차근차근 대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리걸테크업계는 변협과의 갈등이 AI 기반 법률 서비스 전체로 번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이전까진 플랫폼의 직역 침범을 두고 갈등을 빚었다면 이젠 동종업계의 자발적 혁신까지 표적이 됐기 때문이다. 주요 로펌은 스타트업의 손을 잡고 법률AI를 개발하고 있다. 리걸테크업체들도 계약서 자동 작성 등 AI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로펌들이 자사 AI 서비스를 개발하는 것을 차단하려는 게 변협의 의도”라며 “일반인 대상 AI 법률상담은 철저히 막겠다는 메시지를 낸 것”이라고 했다.로톡과 네이버 등 플랫폼에서 직역 다툼을 벌여온 변협이 AI로 전선을 확대하면서 사실상 ‘로톡 사태 2차전’이 시작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로앤컴퍼니(로톡 운영사)가 자체 추산한 변협 갈등 관련 피해액은 100억원이 넘는다. 한 리걸테크업체 관계자는 “당장은 대륙아주를 시작으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AI를 겨냥하겠지만 걸고 들자면 슈퍼로이어(로앤컴퍼니), 엘박스AI(엘박스) 같은 변호사를 대상으로 한 AI도 자유롭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들 AI서비스는 나온 지 반년도 안 된 신규 혁신 서비스다. 로앤컴퍼니에 따르면 출시 두 달 만에 변호사 3500명이 슈퍼로이어에 가입했다. 이제 막 시작된 국내 리걸AI 시장이 시작부터 장애물에 직면했다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정부는 1년째 제도 개선 ‘모르쇠’
법무부는 지난해 9월 변협의 로톡 변호사 징계가 부당했다고 판단한 후 관련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겠다고 공표했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변호사제도개선특별위원회도 구성했지만, 아직 별다른 진척이 없다. 제도 개선 검토 범위엔 플랫폼만 포함되고, 법률AI 서비스는 제외된 것으로 전해졌다. 변호사 시장에 강력한 권한을 가진 곳이 변협이다 보니 법무부가 나서서 규제 개혁을 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업계 관계자는 “이미 리걸테크의 전선이 플랫폼에서 AI로 넘어왔는데, 법무부가 뒤늦게 플랫폼 제도 개선 가이드라인을 내놓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다”며 “정부가 제도 개선을 차일피일 미루는 사이 또 다른 혁신이 가로막히고 있다”고 지적했다.최근 국회에 발의된 리걸테크진흥법 제정안도 독소 조항으로 논란이 일고 있다. 자본금과 전문인력 요건을 채워야 법률 예측 서비스를 할 수 있다는 ‘허가제’가 포함됐기 때문이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